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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인만 출석 … 구인장 반납 … 법원·검찰 유례없는 상황에 고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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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구속전 피의자심문(영장심사)에 불출석하겠다는 이명박(MB·77) 전 대통령을 어찌할 것인가’.

MB측, 영장심사 불출석 거듭 강조 #충돌 우려해 구인장 재발부 안할 듯 #서면심사 땐 오늘 밤늦게 결과 나와

21일 검찰과 법원은 이 같은 ‘숙제’를 놓고 하루 종일 혼선을 빚었다. 검찰은 이 전 대통령에 대한 구인장을 법원에 반환했고, 법원은 22일 오전 10시30분으로 예정됐던 영장심사 일정을 취소했다.

발단은 지난 20일 이 전 대통령이 영장심사에 불출석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이 전 대통령 측은 “검찰에서 충분히 진술했다며 법원에 불출석사유서를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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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장심사는 법원이 구속영장의 요건이 적법한지를 피의자심문 등을 통해 판단하는 제도다. 피의자로서는 일종의 ‘방어권’을 행사하는 절차다. 지난해부터 재판 일정을 보이콧하고 있는 박근혜(66) 전 대통령도 영장심사에는 출석했다. 그러자 검찰은 21일 구인장을 집행할지를 놓고 고민을 거듭했다. 구인장은 법원이 피의자를 정해진 일시·장소에 출석하게끔 하는 통보서다. 이 전 대통령 구인장에 적힌 장소는 서울중앙지법 321호 법정이었다.

결국 검찰은 이날 오후 4시쯤 구인장을 집행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전직 대통령이란 점을 고려한 조치로 해석됐다. 자칫 자택에 머무르는 이 전 대통령을 구인하다가 돌발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했다고 한다. 최진녕 변호사는 “이 전 대통령이 ‘정치 보복’을 주장하는 상황에서 물리력을 행사하면 검찰도 부담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후 이 전 대통령 측 변호인은 “변호인단만 영장심사에 참석하겠다”는 의견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그리고 법원은 오후 5시 “22일 오전 영장심사는 열리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영장심사가 취소된 것을 두고 법조계에선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형사소송규칙 제96조에 따르면 피의자가 출석을 거부할 경우 피의자 없이 심문 절차를 진행할 순 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처럼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된 피의자가 영장심사에 불출석하거나 검찰이 구인장을 반환한 사례가 드물기 때문에 법원에서도 고심을 거듭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영장심사의 대원칙은 구속의 필요성을 판단하기 위해 판사가 피의자를 직접 심문하는 것”이라며 “형사소송규칙은 의무 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피의자가 출석하지 않는다면 영장심사 일정을 취소할 수도 있다”고 전했다.

대신 법원은 “22일 중으로 세 가지 검토안 가운데서 결정을 내리겠다”고 알렸다.

법원이 밝힌 세 가지 안은 구인장을 재발부해 심문 기일을 다시 잡거나 변호인과 검찰 측만 참석한 상태에서 심사를 진행하는 방안이다. 또 서류심사만으로 구속영장 발부 여부를 결정하는 안도 제시됐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이 불출석 의사를 명확히 했고 검찰이 구인장을 반환한 만큼 구인장 재발부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법조계의 관측이다. 일각에선 서류심사에 무게가 쏠린다고 전망한다. 법원 관계자는 “만약 변호인과 검사만 참석하는 영장심사가 열릴 경우 22일 이후로 기일이 잡힐 것”이라며 “서면심사로 결정되면 22일 밤, 혹은 23일 새벽에 심사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고 전했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변호인과 검사만 참석해 영장심사를 할 경우 향후 유력 인사의 영장심사에서 형평성 논란 등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전 대통령 측은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변호인만 심사에 참석하는 게 우리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 전 대통령은 영장 발부 여부가 결정될 때까지 서울 논현동 자택에서 머물 것으로 보인다.

손국희·정진우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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