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만드는 세상] “오늘은 또 누가 … 학대 아동 60명 돌보며 매일 긴장합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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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아동학대를 표현한 일러스트. [일러스트 굿네이버스 황윤지 작가 재능기부]

아동학대를 표현한 일러스트. [일러스트 굿네이버스 황윤지 작가 재능기부]

올해 두 살인 아이는 눈시울이 붉어진 엄마에게 각티슈에서 휴지를 꺼내 건넸다. 아이의 행동은 이미 몇 번이나 그래온 듯 자연스러웠다. “하나(가명)야, 엄마 이제 안 울어. 그만 줘.” 아이는 엄마를 따라 하려는 듯 남은 휴지를 자신의 눈가에 갖다 대고 비볐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아이의 동그란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아동보호기관 직원의 긴 하루 #해마다 느는 아동학대 사고에 #한 명이 사례 60건 이상 관리 #자다가도 신고받고 뛰쳐나가

서울 B아동보호전문기관 직원이 과거 아동학대가 있었던 가정을 방문해 부모와 상담하고 있다. [김정연 기자]

서울 B아동보호전문기관 직원이 과거 아동학대가 있었던 가정을 방문해 부모와 상담하고 있다. [김정연 기자]

지난달 14일 오후 서울 A지역 아동보호전문기관 직원 이문규(가명)씨와 함께 김은미(가명·30)씨 집을 방문했다. 김씨의 남편은 화가 나면 아이와 아내에게 쉽게 손찌검을 했다. “시끄러워 잠을 잘 수가 없다”며 남편이 칭얼대는 아이에게 주먹을 휘두르던 지난달 11일 김씨는 집을 나왔다. 아니 도망쳤다. 김씨의 사정을 들은 구청 직원이 경찰과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신고했다. 그날 이후 남편은 구속됐고 이씨는 김씨 모녀의 상황을 꾸준히 챙기고 있다.

최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아동학대 발생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아동학대 사고로 30명이 사망했다. 전체 학대 아동은 2만1524명이었다. 5년 전인 2013년(6796명)에 비해 3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해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아동학대 사고 건수에 비해 아동보호전문기관 수는 5년간 8개소 증설되는 데 그쳤다. 전국에는 총 60개의 아동보호전문기관이 있다. 기관들은 지자체뿐 아니라 굿네이버스·세이브더칠드런 등의 민간단체들이 위탁 운영한다. 기관 내에서는 학대 의심 신고가 경찰 등을 통해 들어오면 즉시 출동하는 현장조사팀, 사고 이후 교육·상담 등을 제공하는 사례관리팀으로 나뉜다. 지역 차이가 있지만 보통 하루에 2~3건 이상 새 사건이 접수된다. 서울 A·B지역 아동보호전문기관 두 곳의 동의를 구해 직원들의 일상을 동행했다.

아동보호전문기관 사무실 안에 있는 놀이치료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장난감들이 진열돼 있다. 기관에서 아이들은 놀이치료나 미술치료 등을 받는다. [김정연 기자]

아동보호전문기관 사무실 안에 있는 놀이치료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장난감들이 진열돼 있다. 기관에서 아이들은 놀이치료나 미술치료 등을 받는다. [김정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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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직원들은 일과의 절반 이상을 밖에서 보냈다. 신고 전화를 받고 바로 출동하거나 사후 가정방문 등 재학대 방지 차원에서 나가야 하는 외근이 많아서다. 직원들은 사무실에서 문서 작업을 하다가도 전화벨이 울리면 언제든 나갈 준비를 했다. 이날 B지역 기관에 간 기자가 상담실·놀이치료실·미술치료실 등 시설 안내를 받고 있을 때도 상담실장 한지호(가명)씨의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자리를 피해 한참 전화를 받고 온 한씨는 “그동안 상담해온 피해 아동 어머님이신데 자해를 하다 ‘칼이 잘 안 든다’며 전화를 하셨다. 일단 진정시키고 근처 지구대에 연락해놨다. 한동안 잘 지내시는 것 같더니…”하며 한숨을 쉬었다.

사례가정을 방문상담 하러 가는 윤미진(가명)씨의 손에는 상담용 휴대전화와 당직용 휴대전화 두 개가 있었다. 전화는 수시로 울려댔다. 다행히 응급 전화는 없었다. “응급 콜은 주로 밤이나 새벽에 많이 온다. 그땐 자다가도 뛰쳐나가야 한다”며 그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상담가정은 언덕 끝에 있는 연립주택이었다. 집 앞에 한 중년 남성이 마중 나와 있었다. “아버님, 멋지게 차려입으셨네요. 종현(가명)이는요?” 윤씨가 친숙하게 말을 걸자 그는 “학원 가서 7시는 돼야 들어온다”고 말했다. 일용직을 전전하던 종현이의 친부 조영민(가명)씨는 술만 마시면 초등학생인 아들을 폭행했다. 술에서 깨면 조씨는 전날 일을 기억하지 못했다.

학대 아동들이 미술치료 시간에 그린 그림. 전체적으로 어두운 분위기가 강하다. [사진 굿네이버스]

학대 아동들이 미술치료 시간에 그린 그림. 전체적으로 어두운 분위기가 강하다. [사진 굿네이버스]

1년 전 신고 접수 후 윤씨가 조씨를 처음 찾아갔을 때 조씨는 “내가 내 자식 키우는 일에 당신이 무슨 상관이냐, 경찰이라도 되냐”며 그를 문전박대했다. 그러나 윤씨의 끈질긴 설득으로 아동학대 예방, 분노조절 교육 등을 꾸준히 받은 조씨는 1년 가까이 아들과 트러블 없이 지내고 있다. 술도 줄였다. “얼마 전에 아이가 ‘내가 잘못해도 아빠는 날 사랑해?’ 묻더라고. 내가 그랬어요. ‘네가 아무리 잘못하더라도 널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게 아빠야.’” 상담 도중 조씨가 꺼낸 이야기에 윤씨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아동학대 신고가 들어온 가정의 부모들은 대부분 직원을 극도로 경계한다. 이씨는 “한 번은 현장에서 명함을 건네니 사례자가 ‘나 지금 가방에 칼 있으니 건들지 마라’고 위협을 했다. 입사 초반에 힘들어서 울 때도 잦았다”며 “아동학대 사례 관리에 대한 의무는 있지만 가족들의 참여를 강제할 수 있는 구체적인 법 조항이 없어 실제로 거부하는 대상자들에 대해 직원들이 개입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고 털어놨다.

학대 아동들이 미술치료 시간에 그린 그림. 전체적으로 어두운 분위기가 강하다. [사진 굿네이버스]

학대 아동들이 미술치료 시간에 그린 그림. 전체적으로 어두운 분위기가 강하다. [사진 굿네이버스]

수십·수만 개의 어려움 속에서 찾아오는 한 번의 보람으로 직원들은 이 일을 계속해 나간다. “응급 현장에서 아이를 격리해 시설에 데려다준 적이 있어요. 시설에 도착해서 ‘선생님은 이제 가봐야 해’라고 하니 제 손을 꼭 잡고 있던 아이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어요. 그 모습을 보면서 ‘내가 아무리 고생스러워도 이 일을 놓을 순 없겠구나’ 싶었죠.” A지역 기관 현장조사팀에서 일하고 있는 최미진(가명)씨의 말이다.

아동학대 특례법에 따르면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아동학대 상황 발생 후 아동의 안전 확보와 재학대를 방지하기 위해 피해 아동 및 가족들에게 상담·교육·치료 등 필요한 자원을 제공해야 한다. 현재 아동보호전문기관 사례관리팀 직원 1명이 맡는 사례 수는 보통 60건 이상이다. 한 사례는 최소 6개월 이상 관리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야근이 일상이고 언제든 ‘비상대기’ 상태다.

20년 넘게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일해온 김정미 굿네이버스 아동권리사업본부장은 “큰 아동학대 사건이 터질 때마다 정부는 추가 대책들을 내놓지만 인력과 예산은 늘 제자리걸음 수준이다”며 “현장조사부터 사례관리까지 촘촘하게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 번 아동학대가 발생하더라도 재학대를 예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아동학대 8.5%는 ‘재학대’

이미 아동학대가 일어난 가정에서 또다시 학대가 일어나는 것을 소위 ‘재학대’라고 한다. 재학대는 생명과 직결되는 심각한 아동학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재학대 예방이 아동학대 예방과 조기발견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2016년 재학대 건수는 1591건으로 전체 아동학대 사례 중 약 8.5%를 차지했다.

홍상지·김정연 기자 hong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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