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에만 합의, 대처방법엔 이견|「6·10 학생회담」과 3김의 입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평민·민주·공화당의 3당총재들은 8일 회담을 통해 학생들에게 6·10 남-북 학생 판문점회담 추진 연기를 요청하는데 합의함으로써 정국을 긴장 속에 몰아넣고 있는 남-북 학생회담문제에 정치권이 가닥을 잡는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3당총재들은 회담추진에 대해 반대(공화)와 신중(평민)이라는 현격한 시각차이가 있었지만 민주당 측 중재 안인「연기촉구」에 합의해 일단 야권3당은 한 목소리를 냈다는 측면에서 매우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그럼에도 3당은 통일문제의 접근방식에 여전히 미묘하고 본질적 차이를 느끼게 하는 대목도 많아 앞으로 본격논의에 들어가면 행동통일이 될지 의심스런 면도 없지 않다.
이날 회담의 합의 문은 원칙적 문제에서 합의를 본 것 일뿐 구체적 대안의 제시가 없고 일부문제, 예컨대 남-북 국회회담제외(민주·평민), 남-북 정당회담제의·평화통일협의기구설치(평민) 같은 대목에선 의견이 엇갈려 합의점을 찾지 못한데서 잘 드러난다. 이날 회담에서 각 당 총재가 밝힌 기본입장은 다음과 같다.
▲김영삼 총재=다 아는 얘기지만 최근 6·10 남-북 학생회담문제로 시국이 어려운 국면을 맞고 있다.
국민들은 통일정책을 비롯한 모든 문제를 정치권이 적극수용해서 적절한 진단과 처방을 내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특히 국민들은 판문점으로 가겠다는 학생들의 행동을 몹시 불안한 눈초리로 보고 있다. 이 같은 시점에 책임있는 정당의 대표로서 시국의 향방을 가만히 볼 수 만 없어 이 자리가 마련됐다.
현재 국회 내에 의회발전연구소가 있듯이 상설위원회를 두고 순수한 연구기관으로 권위 있는 사람들이 참석할 수 있는 부설「통일문제연구소」도 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된다.
6·10 남북학생문제만 하더라도 학생들은「판문점으로 가자」, 정부는「막겠다」고 맞서고 있는데 우리는 학생들의 순수성과 애국심은 인정하지만 학생들이 행동으로 강행할 때엔 여러 가지 불행한 사태가 예측되므로 책임있는 야권 3당대표들이 가지 말라고 저지하기 보다 연기하도록 요청해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는 어디까지나 남-북 통일문제에 대한 국민적인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정부도 결국 이 문제를 주선해야 될텐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진 뒤에 하드록 하기 위해 연기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 동안 정부는 통일문제를 정권 안보적인 차원에서 다루어 왔기 때문에 국민들은 물론 야당정치인 조차 북한에 대한 진실을 모르고 있다. 때문에 우리는 앞으로 통일문제를 한층 개방할 뿐만 아니라 정부가 갖고 있는 모든 이북의 정보도 공유되어야 하며, 그런 측면에서도 이번 학생문제는 정부가 물리적인 원천봉쇄로 맞설 것이 아니라 대화를 통해 이해를 촉구해야 할 것이며 우리도 적극적으로 학생들과 대화를 통해 이 문제를 풀어 나가야 할 것이다.
▲김종필 총재=모든 정치문제를 국회에 끌어들여 이를 수용, 국민적인 합의하에 정책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원칙을 세워야 한다. 통일문제에 관해 우리의 현주소가 어디에 있느냐가 명확하지 않다. 지난 48년부터 오늘 이때까지 남북한에 내왕한 각종 제의가 무려 1백2가지나 된다. 북에 내놓을 만한 것은 다 내놓았다.
다만 정부가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는데 힘쓰지 않았을 따름이다. 더 이상 제안할 방안이 없을 정도로 모두 나왔다. 이제부터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는 작업은 통일원이 해야 한다. 성의껏, 꾸준히, 조용히 국민과 대화하자. 국회는 이를 수렴해 통일원이 하는 일을 체크·보완·협력하고 경우에 따라 제지하는 역할 등을 해야 한다.
이 같이 두 가지 원칙을 놓고 현명한 차원에서 남-북 문제가 다뤄져야 한다. 직접 대화는 삼가고 통일원을 앞장세워 대화해야 하고 창구는 정부로 단일화해야 한다. 북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상과 현실 중 현실에 조금 치중해야 할 입장이 아닌가. 학생들에게는 상대가 상대인 만큼 삼가 달라고 촉구해야 한다.
국회 안에 중진들로 구성되는 상임위를 만들고 그곳에 연구소를 설치하는 것 등은 좋은 생각이다.
정부가 주도해서 학생들을 대 교류의상에 넣은 것은 자연스런 일이 아니겠는가. 학생들이 직접 남-북 대화를 제의하고 나선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다시 말하지만 통일원이 주체가 되어 능동적으로 나서라. 국회는 국회대로 이들의 활동을 도와주고 견제하면서 국회도 사회각계각층과 폭넓은 대화를 나누어 이를 바탕으로 통일정책을 이룩해 나가야 할 것이다.
▲김대중 총재=두분 얘기를 잘 경청했다. 공감 가는 점이 많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통일문제에 대한 기본생각을 재정립해야 할 시점에 서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 통일문제를 국민적인 과제로 정면으로 다루어 나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물론 통일이 용이한 문제라고는 보지 않는다.
그러나 남-북간의 평화정착교류를 위한 노력은 전면적·공개적으로 진행되어야 하며 더 이상 이를 막으면 부작용만 생길 뿐이다. 선거를 통해 국민의 민주적 역량도 강화되었고 정부도 남-북 교류에 찬성하고 있지 않은가. 이제는 평화정착·교류문제를 중요한 국가적 과제로 삼아 처리해 나감으로써 한반도 평화통일에 대한 기초작업을 진전시켜 통일에 대한 국민적 욕구도 만족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우리가 무엇인가 하면서 학생들을 설득해야지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설득할 수는 없지 않으냐. 그렇게 해서는 설득도 되지 않는다.
국민 중 다수가 안정을 바라는 것은 사실이지만 통일을 외면하거나 통일에 대한 노력부족을 용인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상당수의 국민은 통일문제에 관하여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학생들이 주장하는 남-북 회담내용은 과격하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남-북 종단여행·체육대회 등 소박한 내용이다. 그런데 왜 정부가 교류 자체는 찬성하면서 대화도 해보지 않고 물리적으로 이를 탄압하려는 모순되는 자세를 취하는지 모르겠다.
정부는 학생들을 만나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어 나가야 할 것이다. 학생들은 어제 성명을 통해 정부가 구체적인 남-북 교류계획을 밝히고, 구속자를 석방하고, 수배자의 수배를 해제하며, 학생들의 교류계획을 방해하지 않으면 그들의 6·10남북회담을 연기할 용의가 있다고 했다. 학생들도 무작정 밀어붙이는 것은 아니다.
정부의 현재 방법으로 해결이 되겠는가. 이 문제를 그대로 두면 많은 희생이 초래될 위험이 있다.
우리가 학생들에게 아무 대안 없이 무작정 하지 말라고 하면 학생들이 그만두지도 않을뿐더러 우리를 정부와 똑같이 볼 것이다. 우리도 학생과 접촉, 정부와의 대화를 주선해 주자.
그리고 통일문제를 협의해 나가기 위해 원내 4당 협의체를 만드는 것에는 찬성하며 이 협의체에 부속되는 연구기관을 두는 것도 좋다. 그러나 이 기구에서는 통일정책만을 다루는 것이 좋겠다.
지금 현재 국민적인 통일기구라고 하여 민족통일국민협의회·평화통일정책자문회의 등 이 막대한 예산까지 써 가며 존재하고 있는데 이 기구는 독재정권을 강화하는데 기여했고 여당의 외곽세력화 할 뿐이었다. 따라서 이기구들을 폐지, 정치권이 원내에 통일기구를 두는 것과 병행하여 국민은 국민대로 통일문제를 논의할 수 있도록 국민적인 통일기구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 기구에는 통일에 대해 관심을 갖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며 모든 사람이 참여한다 하더라도 공산주의에 유리한 통일논의는 나오지 않을 것이며, 나온다 하더라도 지지를 받지 못할 것이다.
통일논의가 처음에는 신기하게 느껴지더라도 확대 지속되면 신기하지 않게 생각되며 일반적인 문제처럼 자유롭게 다루어지는 시기가 올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