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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 이래 24년 최장집권 … 푸틴, 유라시아 차르까지 노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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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8일 모스크바의 한 기표소에서 투표를 마치고 나오고 있다. [AP=연합뉴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8일 모스크바의 한 기표소에서 투표를 마치고 나오고 있다. [AP=연합뉴스]

18일(현지시간) 치러진 러시아 대선의 당선자는 블라디미르 푸틴(66) 대통령이다. 투표함을 열지 않아도, 아니 투표가 시작되기 전부터 누구도 의심하지 않은 결과다. 러시아 선관위는 19일 오전 10시 잠정 개표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2000년 첫 당선 이후 대통령 세 차례, 총리를 한 차례 역임한 푸틴은 이로써 2024년까지 집권하게 된다. 소련 시절 이오시프 스탈린의 31년 독재(1922~53) 이후 최장 통치다.

러 대통령 네 번째 당선 확실

선거를 눈앞에 두고 영국에서 발생한 러시아 출신 이중 스파이 독살 기도 사건으로 서방과 러시아 간 외교 전쟁이 불붙었지만 푸틴은 꿈쩍도 않았다. 오히려 지난 14일 2014년 러시아가 전격 합병한 크림반도를 방문했다. 서방의 제재를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과시다. 푸틴은 크림 합병을 “역사적 정의를 바로 세운 것”이라고 주장하며 자신의 통치 3기(2012~2018) 성과를 자축했다.

대선일인 3월 18일은 푸틴이 크림자치공화국을 러시아연방에 합병한다고 선언한 지 꼭 4년째 되는 날이다. 당시 푸틴은 “오랫동안 러시아 영토였던 크림반도가 소련 붕괴 당시 우크라이나에 귀속된 것은 역사적 불의”라고 주장했다. 이후 우크라이나 내 친러·반러 대립이 격화하고 미국과 유럽 등의 경제제재가 4년 이상 계속됐지만 푸틴은 이를 ‘반서방 러시아 민족주의’를 고취하며 자신의 지지율을 높이는 계기로 삼았다.

옛소련권 결속시키는 푸틴주의 강화

지난 14일 크림반도 세바스토폴 에서 열린 크림반도 합병 4주년 기념 행사에서 푸틴 대통령의 연설에 환호하는 시민들. [EPA=연합뉴스]

지난 14일 크림반도 세바스토폴 에서 열린 크림반도 합병 4주년 기념 행사에서 푸틴 대통령의 연설에 환호하는 시민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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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3기의 특징은 ‘푸티니즘(Putinism·푸틴주의)’이 러시아의 정체성과 가치로 떠올랐다는 점이다. CNN의 파리드 자카리아는 푸틴주의 핵심 요소를 “내셔널리즘, 종교, 사회적 보수주의, 국가자본주의, 정부의 미디어 장악”으로 꼽았다. 푸틴주의의 목표는 푸틴이 2000년 첫 대선에서 내세운 ‘위대한 강대국 러시아의 부활’.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習近平)의 ‘중국몽’에 해당하는 러시아식 부국강병이다.

푸틴은 3기 통치 기간 ‘주권민주주의(sovereign democracy)’와 국가자본주의라는 두 바퀴로 러시아를 운전했다. 주권민주주의란 서구식 자유민주주의와 대비되는 러시아식 민주주의다. 김태환 국립외교원 교수는 “외형상 자유민주 선거를 하지만 선거관리가 편파적이며 야당 탄압과 언론 장악을 통해 반대파가 자라지 못하게 한다”고 설명했다.

러시아 전통 가치, 즉 민족(nation·국가), 가족, 기독교(특히 러시아정교회) 특수성을 내세워 비민주성을 포장한다는 것이다. 이번 대선에 다른 후보 7명도 출마했지만 결국 푸틴의 들러리에 그친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국방비 700억 달러, 10년 새 두 배로

지난해 11월 러시아 소치에서 시리아 사태 중재 정상회의가 열렸을 당시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왼쪽),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오른쪽)과 함께한 푸틴. [타스=연합뉴스]

지난해 11월 러시아 소치에서 시리아 사태 중재 정상회의가 열렸을 당시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왼쪽),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오른쪽)과 함께한 푸틴. [타스=연합뉴스]

국가자본주의란 국가의 경제 장악이다. 2005~2015년 10년간 러시아 국내총생산(GDP)에서 국가가 차지하는 비중(공공 지출 및 국가가 통제하는 기업들의 비중)은 35%에서 70%로 급증했다. 에너지·우주·항공·원자력 등 전략산업 부분에서 국유화 및 기업 통합이 강화된 결과다(외교안보연구소 ‘2018 국제정세전망’). 강력한 정부 장악은 경제 회복의 과실을 푸틴의 입지 강화로 연결시켰다. 서방의 경제제재에도 러시아 경제는 유가 상승 등에 힘입어 지난해와 올해 1%대 성장세로 돌아섰다.

푸틴주의는 집권 4기에 더 공고해질 전망이다. 새 임기 6년 ‘강대국 러시아’를 기치로 소련 시절의 국제적 위상을 회복하려는 ‘차르’ 푸틴은 대규모의 군 개혁과 현대화를 진행하고 있다. 2016년 러시아의 국방비는 GDP의 5.3%(700억 달러)로 10년 전에 비해 두 배 증가했다.

러시아는 강화된 군사력을 기반으로 우크라이나 동부, 중동 등 국제 분쟁에서 ‘키 플레이어’로 활약하고 있다. 특히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정권의 명줄을 쥐고 있는 푸틴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시리아 내전 휴전 결의와 별도로 독자 휴전안을 내기도 했다. 시리아를 기반으로 한 친러 벨트를 중동에 구축하기 위해 이란과도 공조하고 있다. 최근 들어선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일원인 터키와도 급격히 밀착하고 있다. “러시아가 여러 국제적 이슈에서 핵심 역할을 하고 있고 그 뒤엔 푸틴 대통령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로이터통신)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시리아·이란·터키와 ‘친러 벨트’ 구축

주목할 것은 푸틴주의 배경에 깔린 유라시아주의다. 김태환 교수는 “푸틴은 옛소련 국가들을 유럽과 구분되는 유라시아권이라는 정체성으로 아우르며 군사·경제, 소프트파워 등을 포괄하는 ‘대장’ 노릇을 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푸틴은 이 권역 사수를 위해 동유럽에선 나토의 동진 정책에 맞서고 동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 확대를 저지하려 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미·러 간 밀월 가능성이 제기됐음에도 결국 두 나라가 신냉전 관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푸틴의 국익과 트럼프의 국익이 다방면에서 충돌하기 때문이다.

“북한 비핵화 과정서 적극 개입할 듯”

푸틴식 유라시아주의 강화는 중국 시진핑 주석의 장기 집권 체제 구축과 맞물려 한반도 안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고재남 국립외교원 교수는 “북·미 관계 정상화와 별도로 중국과 러시아는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이 강화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며 “자국의 위상 유지 및 강화를 위해 북한 비핵화 과정에 적극 개입하여 다자회담으로 유도하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환 교수는 “러시아의 열망을 역으로 활용해 한국의 이익을 극대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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