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3개 특위 놓고 "동상이몽"|위원장 배분 진통…각 당의 속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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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개원 식까지는 비교적 잘 나가는 듯하던 4당 공존체제의 국회운영이 특위위원장의 배분문제에 걸러 예상대로 뒤뚱거리고 있다.
5개 특위 중 핵심특위라 할 수 있는 광주사태·5공화국비리·비민주 악법개폐특위의 위원장을 놓고 민정·평민·민주당이 동상이몽의 배분을 주장해 지난달 31일 개원국회 폐회식 후 첫 회의를 열기로 했던 국회법개정특위를 무산시켰다.
이날 총무회담에서 민정당 측이 핵심 3개 특위 중 하나는 맡아야겠다고 제기함으로써 총무회담이 결렬되고 그 여파로 국회법개정특위마저 열리지 못했다.
당초 야권 3당은 핵심 3개 특위 중 평민당이 광주사태 및 비민주 악법개폐특위를, 민주당이 5공화국비리특위를, 공화당이 부정선거특위를 맡고 민정당엔 지역감정특위를 맡기자는 묵계가 성립됐었는데 민정당이 이에 제동을 걸고 나서는 바람에 삐걱거리기 시작하고 있다.
특위위원장 배분을 둘러싼 여야간 싸움에서 민정당이 제1당으로서의 지분을 내세워 집요하게 핵심특위참여를 요구하는 것은 특위중심으로 운영될 것이 빤한 국회운영의 관심권외로 밀려날 수 없다는 생각과 함께 야당중심 특위운영에 제동을 걸어가겠다는 속셈이 있기 때문이다.
야당이 요구한 5개 특위는 △광주 △제5공화국비리 △비민주 악법개폐 △양대 선거부정 △지역감정해소 등 5개 지만 그중 핵심은 광주·제5공 비리·비민주 법령개선 등 3개.
광주·제5공 비리는 여당에 맡길 리도 없지만 다분히 정치적 심판으로 흐르기 십상이고 여당 내에서도 긴장을 유발할 소지가 있는 이 2개 특위보다 실질적으로 득이 더 크고 민정당이 그런대로 역할을 할 수 있는 법령개폐특위 하나는 반드시 차지해야 된다는 생각이다.
실상 법령특위는 보안법·사회보호법·사회안전법·안기부 법 등 정치적으로 미묘한 법령에서부터 금융·노동·농수산 등 각분야 1백 개 이상의 법령을 검토해 오히려 가장 핵심적인 특위로 보여지고 있다.
민정당이 3개 특위의 하나를 굳이 맡겠다고 나서는 이유 중 또 하나는 특위조사활동에 미리부터 견제를 해 두자는 의도도 있다.
특위는 구체적 사안에 대해 조사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특위이름을 제5공화국비리조사특위는 구 일해재단 등 권력형 의혹조사특위로 하고 비민주 악법개폐특위는 법령개선특위로 고치자고 주장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민정당은 그들이 제안한 통일문제·올림픽지원특위도 함께 구성해 이 특위의 각 당 배분문제도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지연전술을 펴는 한편 야당 내의 틈을 엿보고 있는 것이다.
민정당으로 선 3야당 각각의 이해관계, 즉 평민당이 3야 중 우위에 위치하려는 반면 민주당은 자존심에서도 뒤지지 않으려 하고 공화당 역시 보다 많은 지분을 노리고 있다고 보고 그사이를 헤집고 들어갈 방법을 찾느라 고심중이나 3야가 좀처럼 말려들지 않아 속이 상해 있는 상황이다.
민정당 측이 핵심특위 3개 중 1개 위원장의 할애를 요구함에 따라 야당내부에 미묘한 줄다리기가 벌어졌는데 특히 핵심특위 중 광주와 악법 개폐 2개를 맡겠다고 나선 평민당 측은 이러 지도 저러 지도 못하는 난처한 입장에 빠졌다.
평민당 측은 지난 시대의 권력이 저질러 놓은 비리와 국민적 의혹을 풀어 과거를 청산하자는 마당에 적어도 핵심특위 3개만은 야당이 주도해야 그 특위의 구성실효를 거둘뿐더러 후유증도 적고 국민설득력도 있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특히 국정조사권이 뒤따를 광주사태·5공화국비리·양대 선거부정특위는 물론 전 정권의 비민주적 요소를 원인 적으로 제거할 비민주 악법개폐특위 등을 어찌「원인행위자」인 여당이 맡아 처리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또 그럴 경우 국민이 제대로 수긍하겠느냐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따라서 평민당은 당초 야권3당의 내부합의대로 △평민당이 광주사태와 비민주 악법을 △민주당이 5공화국비리를 △공화당이 부정선거조사특위를 각각 맡거나, △민주당이 광주사태특위를 맡고 5공화국비리를 타 야당이 맡는 선에서 타결되기를 고집하고 있다.
이 같은 평민당의 입장은 비민주 악법개폐특위를 절대로 놓칠 수 없다는 김대중 총재의 강한 집념에서 비롯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광주사태특위에 대한「위험부담」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발단되고 있다.
평민당은 민주·공화당, 특히 민주당 측이 광주사태특위를 맡아 주면 더할 나위 없이 바람직하나 양당이 모두 손을 내저어「할 수 없이」떠맡았는데 이제 민정당이 광주특위라도 주면 받겠다고 나서고 민주·공화당 측이 민정당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는 태도를 보임에 따라 문제가 복잡하게 얽힌 것이다.
평민당 측은 광주특위가 민정당에 돌아갈 경우 호남의 거센 반발에 직면하게 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고 광주특위를 갖자니 김대중 총재가 『어떤 경우에도 남에게 넘겨줄 수 없다』고 할만큼 굉장한 애착을 갖고 있는 비민주 악법특위를 내놓아야 할 판이다. 말하자면 광주특위는 평민당으로 보면「갖기도 버리기도」모두 껄끄러운 닭갈비와 같은 대상이 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평민당은 1일의 야권 3당 총무회담에서 조사대상에 당총재가「피해당사자」로 포함돼 있고 광주라는 지역적 특성 등 때문에 내용적으론 평민당이 적극 협조해 조사를 주도하더라도 위원장만은 다른 야당이 맡아 주도록 재차 권유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더 객관적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이를 전략적 개념으로 파악, 『조사과정에서 갈등과 난항을 겪을 때 평민당이 운신의 폭을 넓히기 위한 전략』이며 근본적으로 광주사태는 민정당과 평민당이 주도해야 할 문제라고 피하고 있다.
이 같은 야권내의 동상이몽은 각 당의 장·단기전략과도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김대중 평민당총재가 비민주 악법개폐특위를 고집하면서 광주특위를 타 야당이 맡아 주기를 바라는 배경에는 비민주 악법개폐특위의 주도를 통해 민주화의실적과 과실의 몫을 챙기면서 광주조사를 통해 유리한 입장에서 상황을 장악하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그러나 평민당과 경쟁적 입장에 있는 민주당이「누이 좋고 매부 좋은」그런 평민당의 전략과 수를 읽고 있기 때문에 말려들려 하지 않고 있다. 공화당 또한 멀찍이 5년 후를 내다보고 있어 평민당의 입지만 강화해 주는데는 난색을 표명, 민정당 측에 1개 핵심특위의 할애를 합리적인 것이라고 은근히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핵심 특위위원장 배분문제는 평민당이 양자택일을 어떻게 하느냐는 문제로 귀착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허남진·고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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