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림사 스님들 인터넷도 고수 "세상과 소통이 중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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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허난(河南)성 숭산(嵩山)의 소림사(少林寺)는 천년고찰답게 고색창연하다. 사찰이 역사박물관이나 다름없다. 산문(山門)은 청나라 때인 1735년에 지어졌다. 산문 위에 달린, 검은색 바탕에 쓴 금색 글자 '少林寺' 편액은 1704년 강희(康熙)황제가 직접 내린 것이다. 사찰 안 자운당에 서 있는 124개 돌비석은 당.송.원.명 시대의 각종 필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절 서북쪽 1km 지점, 우루(五乳)봉에 마련된 초조암(初祖庵)은 초대 조사인 달마(達磨)대사의 면벽 수도를 기리기 위해 송대에 지어진 것이다.

유적뿐이 아니다. 소림 무술은 세상이 다 안다. 이틀 일정으로 중국을 방문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2일 소림사를 찾은 것도 오묘한 무공을 직접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유도 고수인 푸틴은 소림사가 선보인 합무공(개구리와 두꺼비 권법), 소림곤 등을 본 뒤 "정말 대단하다"는 말을 거듭했다.

무공 외에 소림사엔 비장의 무기가 하나 더 있다. 첨단 인터넷이다. 소림사 인근 정저우(鄭州)시의 정주만보(鄭州晩報) 보도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이 다녀간 다음날 소림사 방장실의 한 스님은 방장 스님인 스융신(釋永信) 대사의 법어를 인터넷 홈페이지(www.shaolin.org.cn)와 휴대전화의 문자메시지를 통해 제자들에게 일제히 알렸다. 제자들은 모두 인터넷이나 휴대전화를 일상화하고 있다.

소림사가 인터넷을 처음 사용한 건 1996년이다. 한국에서도 인터넷이란 용어가 아직 낯설 때였다. 홈페이지도 그때 만들었다. 중국에서 가장 빠른 축에 속한다. 푸틴 대통령이 다녀간 뒤 홈페이지 내 '소림 소식'은 '푸틴, 소림사를 방문하다'를 머리기사로 만들어 올렸다.

방장 스님은 소림사의 친(親) 인터넷 환경의 필요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곳은 세인들이 소림의 역사와 현재를 이해하는 공간이다. 서양 사람들은 중국 문화를 각별히 좋아한다. 그런 수요를 충족시켜주기 위해서라도 현대화된 장비는 필수적이다."

방장 스님 자신도 첨단 장비를 갖추고 있다. 인터넷 전용선은 물론 노트북 컴퓨터, 디지털 카메라, 최신형 휴대전화 등.

소림사는 일반 승려들이 세상과 소통하는 것을 돕기 위해 경내에 '인터넷 센터'도 개설해 놓고 있다. 승려들은 틈만 나면 이곳에 들러 인터넷에 접속한다. 구중심처(九重深處)에서 살지만 세상 일에 어둡지 않은 이유다. 사실 이곳 스님들은 불경만 읽지 않는다. 영어.수학.역사.지리를 두루 공부한다. 외국에 연수 중인 승려도 십수 명이나 된다.

또 하나 특이한 것은 홈페이지를 관리하는 책임자가 모두 무술에 능한 무승(武僧)이라는 점이다. 해커의 공격을 정통 소림 무술로 격퇴하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베이징=진세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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