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칼럼] 재건축 남용 막기 위한 안전진단 강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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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조명래 단국대 도시지역계획학과 교수

조명래 단국대 도시지역계획학과 교수

아파트 안전진단에서 ‘안전하지 않은 등급’을 받으면 이를 축하하는 펼침 막이 내걸린다. 우리는 자기 집이 안전하지 않은 것을 축하하는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지만 모든 게 돈 때문이다. 안전진단을 통과하면 낡은 집을 허물고 돈이 되는 새집을 짓는 게 가능해진다. 재건축(을 기다리는) 아파트의 몸값이 금값인 까닭은 여기에 있다. 이러니 집을 보수해 오래 사용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거꾸로 안전하지 않은 것을 증빙하기 위해 건축물을 의도적으로 방치하고 손쉬운 재건축을 위해 안전진단 기준 완화가 늘 요구받는다.

한국의 아파트 수명이 짧고 멀쩡한 집을 허물어 새로 짓는 재건축이 남용되고 투기화되는 것은 우리의 독특한 재건축 제도와 관련된다. 재건축 안전진단제도는 낡아서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는 아파트에 대해 재건축을 허용하기 위해 2003년 도입됐다. 평가항목은 구조 안전성, 주거환경, 비용 편익, 설비 노후도 네 가지다. 가장 중요하면서 통과하기 어려운 항목이 구조 안전성이다. 재건축 용이성을 좌우하는 이 항목의 비중 변화는 역대 정부의 부동산 규제와 직결돼 있다. 실제 2003년 45%에서 2006년 50%로 올랐다가 2009년 40%, 2015년 20%로 축소됐다.

2015년 기준 완화는 2014년 9·1 대책의 재건축 규제 완화 일환이었다. 구조 안전성의 비중을 40%→20%로 낮춘 반면, 주거환경비중을 15%→40%로 높이게 되면서 안전진단 통과비율은 50%→90% 이상으로 올랐다. 이로 인한 재건축의 남용과 투기화는 필연적이다. 2014년 이후 재건축 단지의 몸값이 폭등한 데는 재건축 연한 단축(40년→30년)에 더해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 완화가 결정적이었다.

이런 점에서 최근 정부가 취한 ‘재건축 안전기준 정상화 조치’는 재건축 남용과 투기화를 잠재우는 예방적 조치가 되기에 충분하다. 핵심 내용은 재건축 안전진단 시 주거환경의 가중치를 40%→15% 낮추고, 구조 안전성 가중치를 20%→50%로 강화하며, 조건부 재건축 판정인 경우 공공기관의 적정성 검토를 의무화하는 등이다. 최근 집값 상승의 중요한 진원지가 (강남) 재건축이라면, 이를 잡는 중요한 수단의 하나가 안전진단 기준 강화임은 자명하다.

재건축 안전기준 강화는 부동산을 잡기 위한 것만 아니다. 재건축 남용에 따른 사회적 자원 낭비를 막고 주거의 지속성을 위해서도 안전기준 강화가 필요하다. 서울의 경우, 정비사업 대상 주택의 평균 연수가 20년에 불과하다. 건축물의 과소비는 도시의 지속가능성과 근본적으로 배치된다. 지속가능한 도시가 되기 위해선 도시의 세포인 주택의 장기적이고 친환경적 사용이 필수다. 재산권을 침해한다는 주장도 잘못됐다. 안전진단 강화는 공익적 목적의 도시계획사업인 재건축 남용과 투기화를 막으면서 지속가능한 주거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지, 재건축을 근본적으로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조명래 단국대 도시지역계획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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