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과 마주쳤을 때 멋진 남자는 어떻게 할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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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4호 32면

여자를 소개 받는 남자 100명 중 101명(옆 친구가 꼭 낀다)의 첫 질문이 “예뻐?”라지만, 여자들의 이상형은 다채롭고 까다롭기까지 하다. ‘유식하지만 잘난 척 하지 않는 남자’ ‘유머러스하지만 방정맞지 않은 남자’ ‘옷은 잘 입지만 사치스럽지 않은 남자’라는 식이다. 남자 입장에선 대체 어쩌란 말이냐 싶기는 해도, 결국 멋진 남자란 지식·감각·외모 등등이 ‘딱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그 어떤 수준’을 갖춘 남자라는 걸 알 수 있다.

『미스터 포터 1·2·3』 #저자: 미스터 포터 편집부 #역자: 이민경 이지희 #출판사: 그책 #가격: 각 권 1만8000원

책은 이러한 이상적 남자가 되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안내서다. 세계 굴지의 남성 온라인 패션 편집몰인 ‘미스터 포터’가 그간 자체 사이트에서 선보인 글들을 모아 책으로 펴낸 것인데, 내용이 여느 패션지 이상이다. 단지 구두는 이렇게 골라 신고, 슈트는 저런 게 유행이라는 류의 스타일링북이 아니다. 패션 상식은 물론 당대 최고의 스타일 아이콘의 인터뷰부터 취미 생활, 파티·데이트 매너까지를 망라한다. 너무 가볍지도 무겁지도, 또 너무 깊지도 않은 ‘그 수준’을 유지하면서 말이다.

가령 이런 거다. 누구나 입는 스웨트셔츠(일명 맨투맨 티셔츠)를 다룬다 치자. 대화의 소재가 될 만한 옷의 기원을 소개한다. 1926년 미국에서 탄생한 이 옷은 미식축구 선수들이 운동 전후나 훈련 때 입는 용도로 처음 만들어졌단다. 그때문에 팀이나 학교 이름을 새겨 넣는 전통도 생겨났다. 둥근 네크라인 아래 V존 역시 땀흡수를 보다 잘 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그렇다면 이 스웨트셔츠를 가장 멋스럽게 입는 방법은 뭘까. 책은 제임스딘처럼 반항기를 드러내고 싶다면 물빠진 청바지와, 풋풋한 청년으로 보이고 싶다면 치노팬츠에 셔츠를 받쳐 입으면 된다고 귀띔한다.

이외에도 니트 타이에 대해서는 ‘남들이 매고 오지 않을 것 같을 때 타이를 매고 싶다면 추천한다’거나, ‘폴로 셔츠는 허리를 살짝 덮는 길이를 골라 절대 안으로 넣어 입지 말라’라는 식으로 날리는 옷입기 팁은 족집게 과외마냥 귀에 쏙쏙 박힌다.

책을 쉽게 덮을 수 없는 이유는 이뿐 아니다. 여자 앞에서 옷 벗는 법, 탈모와 싸우는 법, 프로처럼 세차하는 법, 결혼식 축사에서 돋보이는 법, 곰을 만났을 때 남자답게 대처하는 법 등 일상에서 한 번쯤 궁금해하면서도 정작 답을 찾을 수 없었던 사안들을 속시원히 해결해주기 때문이다. 특히 ‘장인어른과 친해지는 법’은 이토록 친절할 수 있을까 싶다. “보드게임을 하게 되면 아주 근소한 차이로 이겨라(유능해 보여야 하긴 하니까), 발목이 시큰거려도 등산에 따라나서라, 술은 장인의 반만 마셔라….” 물론 이 모든 걸 소개하기 전 중요한 당부를 빼놓지 않는다. ‘당신은 그의 딸과 잠을 잔다는 점을 잊지 말라’.

하지만 정작 정말 멋진 남자가 되려면 놓치지 말아야 할 대목은 따로 있다. 책에서 유일한 여성 인터뷰이였던 메건 마클의 이야기다. 할리우드 배우이자 남자들이 선망하는 여성, 이제는 영국 해리 왕자와 결혼을 앞두고 있는 그다. ‘당신의 관심을 끌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이 뭐냐’는 질문에 대해 메건은 답한다. “친절한 모습을 볼 때, 그의 인성이 훌륭하다고 느껴질 때 가장 매력적인 사람처럼 보여요.” 세상 그 어떤 까칠한 여자의 본심도 결국 이게 아닐까. 스타일과 품격은커녕, 비정상적 사고로 가득찬 남자들의 뉴스와 연일 마주하다보니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글 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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