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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저 출산율 1.05 … 남자의 머릿속부터 바꿔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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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4호 28면

[INTERVIEW] 라르스 다니엘손 주 EU 스웨덴 대사

라르스 다니엘손 주 유럽연합(EU) 스웨덴 대사는 2011년부터 4년간 주한 대사로 근무하면서 한국의 저출산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신인섭 기자

라르스 다니엘손 주 유럽연합(EU) 스웨덴 대사는 2011년부터 4년간 주한 대사로 근무하면서 한국의 저출산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신인섭 기자

지난해 한국의 합계출산율(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하는 평균 출생아 수)은 1.05였다. 통계 작성 이후 최저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꼴찌 수준이다. OECD에서 출산율 우등생은 합계출산율 1.85(2016년)의 스웨덴이다. 스웨덴은 세계에서 빈부 격차가 가장 적은 나라이기도 하다. 옥스팜 불평등지수에서 152개국 가운데 빈부 격차가 적은 순으로 1위다. 성 평등 지수는 지난해 유럽연합(EU)에서 가장 높았다.

출산율은 성 평등과 밀접 #‘집안일·바깥일 함께 하는게 이득’ #남성들 인식 바꾸는데 20년 걸려 #연소득 5600만원 넘으면 세금 45% #교육·노인 돌봄 등 국가서 책임 #보육의 질 좋아야 아이 낳고 맡겨 #출산율 높이려면 근무시간 줄여야

 저출산, 빈부 격차, 성 평등 문제는 오늘날 주요 국가가 안고 있는 과제다. 그래서 스웨덴을 롤모델로 바라보는 나라가 많다. 노무현 정부가 2006년 발표한 ‘비전 2030’은 스웨덴을 벤치마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한국과 스웨덴은 정치 사회적 여건이 다르다. 이 때문에 한국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스웨덴식 해법은 공허할 수 있다.

 이 같은 고민을 담아 한국을 잘 아는 스웨덴인과 스웨덴을 잘 아는 한국인이 책을 펴냈다. 라르스 다니엘손 주 EU 스웨덴 대사와 박현정 주한 스웨덴대사관 공공외교실장이 함께 쓴 『스웨덴은 어떻게 원하는 삶을 사는가』다. 다니엘손 대사는 2011~2015년 주한 대사를 역임한 한국통이다. 박 실장은 30년째 대사관에서 근무하고 있다. 출판기념회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다니엘손 대사를 7일 인터뷰했다.

스웨덴 출산율이 높은 비결은 뭔가.
정작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특별한 정책은 없다. 한 번도 출산율이 문제 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출산율은 성 평등과 밀접한 문제다. 스웨덴 성 평등 정책의 핵심은 남성과 여성이 스스로 노동을 통해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직업과 육아를 동등하게 병행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여성 평균 초산 연령은 31세다. 여성들이 학업을 마치고 직업을 갖고 경제적으로 독립해 안정감을 느낄 때 아기를 갖는 패턴이 자리 잡았다. 신뢰할 수 있는 고품질 보육시설, 세계 최장기간 육아휴직 제도, 남성의 육아 및 가사 참여도 출산율 높이는 데 기여했다.
출산율을 높이려는 한국에 조언해 달라.
첫째, 근무 시간을 줄이는 것이다. 마침 올해부터 근로시간 단축이 시작된다. 둘째, 누구나 합리적인 가격에 질 좋은 보육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라. 셋째는 남성의 사고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가장 어렵고,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스웨덴 역도선수 레나르트 달그렌을 주인공으로 한 스웨덴 정부의 1978년 캠페인 포스터. [사진 스웨덴 사회보험청]

스웨덴 역도선수 레나르트 달그렌을 주인공으로 한 스웨덴 정부의 1978년 캠페인 포스터. [사진 스웨덴 사회보험청]

남성의 사고방식을 어떻게 바꿨나.
아내도 경제활동을 하고, 집안일과 육아를 부부가 나누는 게 남성에게도 이익이라고 설득했다. 1978년 상남자 이미지로 유명한 역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아이를 사랑스럽게 돌보는 영상을 만들어 캠페인도 했다. 스웨덴도 20년 넘게 걸렸다. 이젠 육아휴직을 쓰지 않는 남자는 좋은 아빠가 아니라는 인식이 남자들 사이에서 생겼다. 사회 규범이 바뀌었다. 좌우 정당 모두 ‘아버지가 아이와 시간을 많이 보내는 것을 장려해야 한다’는 데 합의했기에 가능했다. 자녀당 총 480일의 유급 육아휴직을 부모가 나눠 써야 하는데, 이 중 90일은 남성이 사용하지 않을 경우 소멸한다. 390일간 월 3만7083 크로나(약 480만원)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임금의 80%를 육아휴직 급여로 지급한다.

육아휴직을 하고 가정에서 자녀를 돌보는 스웨덴 남성들. '라떼파파'로도 불린다. [사진 스웨덴 사회보험청]

육아휴직을 하고 가정에서 자녀를 돌보는 스웨덴 남성들. '라떼파파'로도 불린다. [사진 스웨덴 사회보험청]
육아휴직을 하고 가정에서 자녀를 돌보는 스웨덴 남성들. '라떼파파'로도 불린다. [사진 스웨덴 사회보험청]
육아휴직을 하고 가정에서 자녀를 돌보는 스웨덴 남성들. '라떼파파'로도 불린다. [사진 스웨덴 사회보험청]
막대한 예산이 필요한 정책인데.
국민이 기꺼이 세금을 내게 하기 위해서는 신뢰가 바탕이 돼야 한다. 내가 낸 세금이 제대로 쓰일 것이라는 믿음, 보육의 질이 좋을 것이라는 신뢰가 있어야 아이를 낳고 맡긴다. 개인 소득세율은 최저 30%, 최고 45%이다. 연간 43만 크로나(약 5600만원) 이상을 벌면 최고 세율을 적용한다. 아무리 적은 금액을 벌어도 30%를 세금으로 낸다. 하지만 거부감은 크지 않다. 그만큼 되돌려 받는다는 믿음이 있어서다. 부유층과 빈곤층 사이에 소득 격차가 비교적 적기 때문에 가능하다. 빈부 격차가 큰 한국에 바로 적용하기는 어렵다.

다니엘손 대사는 "사회적 합의와 신뢰가 스웨덴 사회를 움직이는 중요한 힘이며, 이를 바탕으로 정책이 운영된다"고 말했다. 박현정 실장은 "스웨덴 문화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합의를 이끌어내는 과정"이라며 "오랜 시간 걸리더라도 합의를 함으로써 일단 결정이 내려지면 많은 사람이 이를 받아들이고 실행하는 데 문제가 없다는 것을 자주 느꼈다"고 말했다.

여성의 경제 활동이 중요한 이유는.
국민 개개인의 경제적 독립은 스웨덴을 운영하는 중요한 요소다. 경제적 독립은 남성과 여성 간뿐 아니라 세대 간에도 해당한다. 부모 재력과 상관없이 자녀에게 교육 기회가 공평하게 돌아간다. 사립학교가 있지만, 학생에게 추가 비용을 받을 수 없다. 보육부터 대학까지 무료다. 노인 돌봄도 마찬가지다. 아프거나 연로한 부모는 자녀, 그중에서도 여성이 돌보게 될 가능성이 높은데, 스웨덴에서는 지방 정부가 임무를 맡는다. 가능한 많은 사람이 일하고 세금을 낼 수 있는 방향으로 사회·경제 구조가 짜여 있다.
평등을 앞세우면서 상속·증여세를 없앤 이유는.
스웨덴이야말로 조세회피처라고 농담을 한다. 평균적인 세금은 많이 내지만, 부유세·증여세·상속세가 없기 때문이다. 당초 1970~80년대 유럽에 좌파 바람이 불면서 부자에게 높은 세금을 부과했다. 최상위 고소득자는 소득의 80%에 육박하는 소득세, 30%가 넘는 부유세를 내야 했다. 이 때문에 이케아 창업자인 잉바르 캄프라드 같은 부자들이 해외로 이주했다. 이를 없앤 건 역설적으로 중도좌파인 사회민주당 정부였다. 그다지 큰 세원이 아니면서 징수도 복잡해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판단에 이르자 2005년부터 점진적으로 폐지했다. 보수 정권은 부자를 봐준다는 여론 때문에 하지 못했을 일이다.
성 평등한 문화는 어떻게 자리 잡았나.
남녀 비율에 제한을 두는 할당제는 상대적으로 많지 않다. 공공기관은 임원 중 여성 비율 목표를 정해준다. 외교부는 재외 공관장 남녀비율 50대50이 목표다. 현재 여성 공관장이 40%에 이르렀다. 하지만 민간 기업, 특히 대기업은 여전히 남성 중심이다. 노르웨이 정부는 기업 이사회를 구성하는 남녀 비율에 할당제를 도입했다. 스웨덴도 노르웨이처럼 강제 할당을 도입할지 논의했는데, 좋은 생각이 아니라는 데 합의했다. 무엇보다 기업이 원치 않았다. 대신 비정부기구(NGO)가 기업 이사회 내 여성 임원 수를 지속해서 관찰한다. 모니터링 결과를 보고서로 발표하고 이에 관해 토론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예컨대 에릭슨은 그다지 성 평등한 기업이 아닌 반면 이케아는 성 평등하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금지나 강제보다는 기업의 자발적 변화를 유도한다. 사회적 압력을 가하는 것이다. 남성과 여성이 동등하게 사회 일원이 돼야 사회도 발전한다는 큰 원칙을 국민 모두 존중한다.
 '스웨덴은 어떻게 원하는 삶을 사는가'(한빛비즈)를 함께 펴낸 박현정 주한 스웨덴대사관 공공외교실장(왼쪽)과 라르스 다니엘손 전 주한 스웨덴 대사, 다니엘손 대사는 현재는 주 유럽연합(EU) 스웨덴대표부 대사다. 신인섭 기자

'스웨덴은 어떻게 원하는 삶을 사는가'(한빛비즈)를 함께 펴낸 박현정 주한 스웨덴대사관 공공외교실장(왼쪽)과 라르스 다니엘손 전 주한 스웨덴 대사, 다니엘손 대사는 현재는 주 유럽연합(EU) 스웨덴대표부 대사다. 신인섭 기자

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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