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인터뷰]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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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캐주얼 차림으로 손수 운전하며 첫 출근, 관료사회를 '조폭문화'로 비판한 취임사, 기자들의 업무공간 출입 제한 등으로 언론과 대대적인 마찰, 산하기관장 임명을 둘러싼 잡음….

세계가 주목하던 영화감독에서 문화정책가로 탈바꿈한 그의 화려한 변신은 결과적으로 유죄가 될 것인가, 무죄가 될 것인가.

지난 2월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취임한 이래 파격적인 행보로 연일 뉴스 지면을 장식하고 있는 이창동 장관을 3일 문화부 청사 3층 장관실에서 만났다.

-지난 7월 공개한 판공비 내역을 보니 다른 장관들에 비해 월등히 적더군요.

"(약간 화난 투로)왜 그런 것이 비꼬는 대상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판공비를 솔직히 공개했는데 의외로 반응이 민감해요. 다른 부처에서 '왜 그렇게 적게 적었냐'고 얘기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부처마다 사정이 다 다르지 않습니까. 아마 7월에 휴가와 출장으로 빠지는 날이 많아서 그럴 겁니다. 또 대체로 싼 음식점에서 먹기도 하고. 사실 호텔도 신경써야 하는데(관광분야도 내 업무니까), 편의상.취향상 안 갑니다."

-인터넷 홈페이지에 정보 공개를 자세히 하고 있지만 호응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느끼지는 않는지요.

"홍보가 안 된 탓이지요. 신문에서 좀 도와주세요. 정보 공개는 공직사회 업무방식에 아주 커다란 변화입니다. 정부와 국민 간의 '소통'이 달라졌죠. 지금 당장의 성과는 미흡하더라도 나중을 위해 지금 세팅을 해야 합니다."

-정보 공개를 한 뜻은 장관께서 도입한 새로운 홍보 업무 운영 때문이겠죠. 언론과 갈등이 심한데 어떻게 평가하고 있습니까.

"짧은 기간이라 말하기는 뭣하지만 정착하고 있다고 봐요. 서로가 힘들었지만 그걸 소화하면서 장기적으론 언론 발전, 정부 향상을 가져올 겁니다. 본질적으로 한국 언론은 신뢰성의 위기를 겪고 있고 지금은 이를 회복하기 위한 전환기적 시점이죠. 언론 내부.정부.시민단체 모두 전환기의 고통과 불편함을 나눠야 합니다. 대통령께서 언론사를 상대로 소송하는 것도 이런 뜻입니다. 감정적 대응이라고 보면 본질을 못보는 겁니다."

-불행한 현대사는 언론으로 하여금 정부를 불신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홍보방안은 무조건 정부 발표를 믿으라는 식이죠. 그러니 언론이 반발하는 것 아닙니까.

"전혀 아닙니다. 제한적인 걸 개방으로 바꾼다는 것 외에 다른 의미는 없습니다. 브리핑이 유일한 취재수단으로 느껴질지 모릅니다. 하지만 기자들도 이제 새로운 취재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과거 역대정권에서 이처럼 정보를 적극적으로 모두 공개하겠다고 한 적이 있었나요? 이런 걸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 공무원은 전문가적 긍지를 지니고 견해를 밝히기보다 '상명하복'으로 윗사람의 눈치를 보거나 그냥 따라가는 경우가 많죠. 홍보방안은 이런 공무원들에게 이젠 언론에 아무 말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게 하지 않을까요.

"같이 감내하고 이겨나가야 합니다. 5개월을 거치면서 힘들었지만 옳은 길로 가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여담이지만, 1개월반 전인가, 그날은 언론이 문화부를 공격하지 않은 첫날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끼리 자축하자고까지 했어요. 매일같이 공격받는데 담당 공무원인들 맘이 편하겠어요?"

-언론과의 새 관계 설정에 힘을 쏟느라 정작 중요한 문화정책 등이 알려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국민에게 피해를 주는 것 아닌가요.

"그건 신문사에 물어보세요. 지금 문화부는 언론정책을 내놓은 게 없습니다. 그런데 왜 언론에만 매달린 것처럼 비춰지고 있습니까. 그걸 누가 만들었나요? 국회에서 이것저것 얘기해도 언론에 대한 얘기만 신문에 나오고, 그러니 국회의원들도 같은 질문만 반복하는 것 아닙니까. 대통령도 얘기했지만 누구도 예상치 못한 묘수 같은 언론정책은 없어요. 소매 안에 칼을 숨기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가용할 방법이 있다는 것도 압니다. 하지만 언론문제에서는 최대한 절제하고 있어요. 내년 총선에 도움이 되는 정책, 특정 언론사에 대한 정책은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됩니다. 적어도 내가 주무장관으로 있는 한 그럴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편가르기가 심하죠. 홍보방안에서도 메이저 신문사에 대한 적대감이 느껴집니다.

"3사에 대한 적대감을 누가 보입니까? 우리 문화부 직원들이요? 이런 인터뷰 정말 하기 싫군요. 지금 참여정부가 언론에 적대적인가, 아니면 일부 언론이 참여정부에 적대적인가 잘 봐야 합니다. 우리 사회는 자꾸 양극단으로 치우칩니다. 참여정부는 극단적인 정부가 아닙니다. 나도 그 한 부분인데, 체질적으로 극단을 싫어합니다. 그런데 왜 여론형성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언론사가 극단을 취합니까. 이것이 위험합니다. 이것이 신뢰성을 저해해요. 차라리 옛날처럼 해석주의로 가고 양비론을 하세요."

-정부 각료가 되기 전에는 언론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나요? 언론의 사랑을 받은 작가이고 감독이었잖아요.

"언론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 건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심하게 느끼진 않았죠. 사실 장관 하마평 오를 때부터 상당한 인격 침해가 있었죠. 공인이니 그럴 수 있다고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홍보 운영 방안도 두시간 동안이나 직접 브리핑했는데 본질은 놔두고 '취재원 쓰레기통이나 뒤져서 쓰라'는 식으로 달리 쓰더군요."

-노무현 대통령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습니까.

"내 운명의 변화를 보니 전생에 인연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장관직 임명을 두고 '미스 캐스팅'이라고 하셨죠. 그런데 지금까지 계속하는 이유는 뭡니까.

"지금도 미스 캐스팅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미스 캐스팅 아닙니까. 그렇다고 포기할 순 없어요. 나도 자존심이 있어요. 미스 캐스팅이었지만 잘했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요. 그리고 어떻게 그만둡니까. (문화부엔) 새만금도 없는데…(웃음)."

-인사문제에서 편파적이라는 소리도 있습니다만.

"민예총 인사들이 많이 간다는 소리인가요? 동의하지 않습니다. 저는 누가 예총인지, 민예총인지 몰라요. 그건 우리 문화계를 조금만 들여다 보면 아는 사실이죠. 정치적 필요성은 이미 소멸됐고 조직의 껍데기만 남았죠. 예술적 역량이 뛰어난 분이 곧 산하단체장으로 적임인 것은 아닙니다. 그건 창조성의 낭비일 수 있어요. 문화행정이나 정책을 입안하는 사람은 나름대로 이를 고민하고 의욕도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은 골수 민예총 사람이어도 별 얘기가 없어요. 국악원장 인선은 아니지요. 그러니 인사과정에서의 갈등과 잡음의 차이일 뿐, 정치적 의도 때문에 생겨난 세력 싸움은 아니죠."

-문예진흥원이 민간자율기구화 되면 위원들의 구성 여부를 놓고 걱정하는 이들도 있는데요.

"민간 자율로 가기 위해서는 거기 참여하는 사람들이 준비가 돼 있느냐가 중요하죠. 민예총이라고 그 쪽 입장만 대변한다면 그건 사람도 아니죠. 정부는 제도를 만들고 민간에선 이를 위한 인재풀을 형성해야죠. 시행착오와 갈등이 있겠지만 그것을 두려워해서는 아무 것도 변할 수 없죠."

-소설가.영화감독이 모두 '인간 탐구'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한국사회.한국인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기본적으로 낙관주의자입니다. 인간에겐 희망이 있다고 믿죠. 그런 만큼 더 좌절하기도 해요. 지금도 저는 희망을 갖습니다. 아주 강렬하게."

-장관직을 마치면 무엇을 할 겁니까.

"배운 도둑질밖에 더 있겠어요? 영화를 못 찍으면 소설을 쓰겠죠."

정리=박지영 기자, 사진=김춘식 기자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 약력

▶대구(49)▶대구고.경북대 국어교육과▶경북 영양고.서울 신일고 교사▶동아일보 신춘문예 소설 '전리(戰利)' 당선으로 문단 데뷔▶스크린쿼터 문화연대 정책위원장,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교수 ▶소설집 '소지' '녹천에는 똥이 많다'등 발간, 영화 '초록물고기''박하사탕''오아시스' 감독▶방송작가 이정란씨와 1남1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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