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첫 미투 때 맹공 폈던 민주당, 잇단 부메랑에 충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우원식 민주당(왼쪽)·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가 7일 성평등 국회 만들기 토론회서 인사하고 있다. [뉴스1]

우원식 민주당(왼쪽)·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가 7일 성평등 국회 만들기 토론회서 인사하고 있다. [뉴스1]

“머리가 너무 아파요. 충격이 심하고, 화도 나고, 또 안타깝기도 하고….”

의원들, 서지현 검사 때 “미투 지지” #화살이 여당 인사로 향하자 당혹 #추미애 대표 “유구무언” 고개 숙여 #선거 후보자 양성평등 교육키로

더불어민주당의 한 여성 의원은 7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최근의 참담한 심경을 이렇게 말했다. 지난 5일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비서가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데 이어 이날 오전 “현직 기자가 대학생 시절 정봉주 전 의원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인터넷 매체의 보도가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민주당 소속의 한 호남 지역 기초단체장이 성폭력을 행사했다는 의혹도 제기돼 경찰이 내사를 시작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일제히 사과 발언을 했다.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에 대한 지지의 뜻으로 상·하의 모두를 검은색으로 입은 추미애 대표는 “유구무언”이라며 고개를 숙였다.

민주당은 당초 적극적으로 응원하고 환영하던 미투 운동이 부메랑이 돼 자신을 향했다는 점에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국내 미투 운동의 시작은 지난 1월 29일 서지현 검사의 폭로였다. 서 검사가 JTBC 뉴스룸에 출연해 “안태근 검사에게 강제추행을 당했다”고 밝힌 다음 날 민주당에선 잇따라 ‘미투’ 지지 선언이 나왔다. 민주당 소속 여성 의원들은 국회 기자회견장에 함께 나와 “응원한다”고 했고,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를 통한 메시지도 쏟아냈다. 이튿날인 지난 1월 31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 나선 우원식 원내대표는 하얀 장미를 손에 들고 “차별과 불의에 맞서 싸우는 이 땅의 모든 여성을 응원한다”고도 했다. 그러나 화살이 민주당으로 향한 뒤로는 공개적으로 개인 의견을 밝히는 의원은 거의 사라졌다.

가해자로 지목된 인사들이 폭로 직전까지도 적극적으로 미투 운동을 지지했다는 게 더 큰 반감을 산 요인이 됐다. 안희정 전 지사는 비서의 폭로가 있던 날 도청 직원을 상대로 “성평등이라는 관점에서 일체의 희롱이나 폭력, 인권 유린을 막아내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자”고 역설했다. 정봉주 전 의원도 언론 보도 전날 한 방송 프로그램에 나와 “미투 운동이 계속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유한국당은 이를 두고 “겉과 속이 다른 민주당과 좌파진영의 이중성을 보여 주는 상징적 사건”(장제원 수석대변인)이라고 주장했다. 정치인은 아니지만 미투 운동으로 실체가 폭로된 연출가 이윤택씨가 2012년 문재인 대통령 후보의 TV 지지 연설을 한 것도 민주당으로선 영 껄끄러운 대목이다. 성추행 전력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는 고은 시인도 대표적인 진보 성향 인사다.

민주당은 최근 성범죄 가해자가 진보진영에 집중된 걸 진영의 문제로만 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의 한 여성 의원은 “여성에 대한 억압은 진영을 넘어 오랜 시간 우리 사회에 만연한 문제”라며 “민주당에서 이런 폭로가 나오는 건 여성의 인권 의식이 상대적으로 더 높고, 수평적 구조에 대한 기대를 더 많이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물론 가해 행위 자체에 대해선 “개인의 행위 자체는 엄중히 처벌해야 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민주당은 최대한 낮은 자세를 취하며 미투 운동을 적극 지원하겠다는 입장이다. 성범죄 이력이 있는 사람의 공천을 원천 배제할 뿐 아니라 처벌 전력이 없더라도 자체 조사를 통해 어느 정도 객관성이 드러나면 공천을 주지 않을 계획이다. 또한 민주당 후보가 되면 양성평등 교육을 의무적으로 받도록 했다. 추미애 대표 주재로 7일 열린 당 전국윤리심판원과 공직선거후보자검증위원회 연석회의에선 권력형 성폭력 대응과 관련해 ▶피해자 보호주의 ▶불관용 ▶근본적 해결의 3대 원칙도 정했다.

허진 기자 bim@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