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후계자의 경영수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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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2세경영인들의 면면을 살피면서 빼놓을수 없는 것은 그들의 경영수업과정이다. 그러나 후계자에 대한 본격적인 경영수업이전에 따져봐야 할것은 창업주들의 자식에 대한 「가정교육」이다.
대부분의 경우 부모의 품을 벗어날즈음부터 나름대로의 원칙과 치밀한 스케줄에 따른 철저한 인생교육으로 단련 받았다.
구자경 럭키금성그룹회장은 선친 구인회씨로부터 엄격한 교육을 받은 것으로 정평나있다. 치약과 플래스틱을 처음 개발할때는 공장근로자들과 똑같이 작업을 해야했으며, 밤중에는 다른 사람들이 모두 퇴근한 후까지 공장에서 숙직을 도맡아야 했다.
이런 과정을 거친 구회장은 훗날 동생들과 자식들에게 『선친으로부터 칭찬한번 받아보는 것이 소원이었다.』고 술회했을 정도였다. 이같은 훈련과정을 겪은 구회장 역시 아들둘에 대해 엄격한 경영수업을 요구했다.
그는 현장경험, 특히 해외세일즈 경험을 쌓도록 했는데 장남인 본무씨에게는 바이어들에게 향응을 베푸는 궂은 일도 직접 경험토록했다.
그런가하면 본무씨의 경영수업을 구씨집안이 아닌 허신구씨 밑에서 10년동안을 받도록 했다. 인화를 몸에 배도록 하게한 포석이었던 셈이다.
배포크기로 소문났던 쌍룡창업주 성곡 김성곤씨의 자식교육도 유별났다. 성곡은 생전에 『자식들에게는 「방한칸」정도 주고, 교육시켜 주고, 인심 안잃고, 괜찮은 부모두었다는 소리만 듣게하면 된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그는 장남 석원씨의 종아리를 때려가면서 『내가 죽더라도 유산은 한푼도 물려주지 않겠다』고 말했었다.
지금은 김석원회장이 동생인 김석준 쌍룡건설사장에게 엄하기로 소문나 있다. 사장단회의에서건, 어디서건 조금만 잘못한 일이 있어도 공개적으로 혼을 낸다. 옆에 있는 사람이 민망할 정도로 가혹하게 야단을 친다는 것이다.
자식에게 짜기로는 미원창업자 임대홍씨도 마찬가지. 임씨자신부터가 근검·절약의 대명사이기도 하지만 장남 창욱씨가 어렸을때부터 검소하고 본인 노력으로 세파를 헤쳐나가도록 훈련시켰다.
그는 창욱씨를 후계자로 키우기위해 등교시 자가용에 태워본적이 없으며, 식사중 밥한톨만 떨어뜨려도 불호령을 내렸다.
그는 또 자기가 읽은 책들은 반드시 창욱씨에게 읽어보도록 했으며 최근까지도 독후감 과제까지 병행, 독서여부를 확인하기도 했다.
현장중심의 산교육을 시킨 창업주들도 있다.
강원산업의 정인욱회장은 장남 문원씨에게 현장확인위주의 경영스타일을 강조했다. 이때문에 문원씨는 지금도 새벽이면 혼자 작업복차림으로 서울에 있는 연탄공장등을 둘러보는 습관이 몸에 뱄다.
삼환의 최종환회장도 외아들 용권씨를 어렸을때부터 현장출장 기회가 있을때마다 데리고 다녔다. 이같은 경험으로 인해 용권씨는 지금도 해외출장때면 공사현장에서 숙식하고 철저하게 야간비행기편을 이용, 경비를 최대한 절약하고 있다.
삼성그룹의 이병철회장은 일찌기 후계자로 지목한 3남 건희씨에게 중앙매스컴 이사로서 경영수업을 쌓도록 했다. 이어 해외사업 추진위원회 위원장 자리에 앉혀 경영의 안목을 넓혔으며, 계열기업 순시에는 항상 건희씨를 수행케해 경영 실태를 익히게 했다.
정주영현대그룹창업주는 아들이 많기도 하지만 한때 후계자교육에 있어 혹독하다는 평을 들을 정도였다. 대가족의 가장으로서 가족들에게 지나칠만큼 엄격해 잘못이 있으면 아들들은 물론이고 나이든 동생들까지 꿇어앉혀 따귀를 때렸다는 말이 재계에 나돌 정도였다. 특히 장남 몽필씨(82년 사망)에 대해서는 장남에 대한 기대때문이었는지 몹시도 심하게 다루었다고 한다.
그러나 몽필씨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정회장은 『그동안 대기업의 자녀들이 많은 사회문제를 일으켜왔던것을 보고 이를 방지하기 위해 형제나 자녀들을 지나치게 억압, 그들이 회사안에서 많은 일을 하고도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한것 같다』며 그간의 후계자훈련방식에 대해 인식전환을 선언했었다.
그후 그는 6남 몽준씨를 주력기업의 하나인 현대중공업사장에 승진 발령하는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하기도 했다.
한진그룹의 조중훈회장 역시 회사일을 동생인 조중건사장에게 이미 오래전부터 맡겨놓고 있으나 장차의 완전한 승계를 위한 2세교육에 대한 열의는 대단하다. 경영학 박사학위까지 취득한 장남 양호씨는 70년대·중반 평사원으로 입사시킨후 지금은 수석총괄전무. 사장단회의의 참석은 물론 회장의 외국출장때도 빼놓지 않고 따라다니게 한다.
이밖에 외부의 전문경영인 밑에서 후계자가 경영수련을 쌓게한 케이스는 두산의 창업주 박승직씨. 박씨는 아들 두병씨가 은행원으로 사회생활을 하게한후 자신의 사업에 끌어들였으며, 훗날 두병씨는 장남 용곤씨(현회장)를 산은에 입행시켰고 나중에는 전문경영인인 정수창씨(전대한상의회장) 밑에서 일을 배우도록 배려했다.
「사람을 다루기 위해서는 남의 밑에 있어봐야 하며, 또 장사꾼이 되려면 자금흐름을 철저히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는 가훈에 따른 것이다.
이같은 창업주들의 2세교육이 요즈음 시각으로는 구식으로 여겨질지도 모른다.
또한 지금의 2세들이 향후승계과정에서 선대의 그것을 답습하리라고 보긴 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재계에서 2세 경영인들이 굳게 뿌리를 내리게 된 배경은 바로 창업세대들이 철저한 경영수업을 통해 만들어 준것임을 부인할순없다. <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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