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읽기] 한쪽 눈 감은 채, 자본주의를 논하지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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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자본주의의 매혹
원제:The Mind and The Market
게리 멀러 지음, 서찬주·김청환 옮김
Human&Books, 679쪽, 3만5000원

정말로 자본주의의 시대다. 싫든 좋든 지구촌 주민의 상당수는 그 체제 아래서 삶을 꾸려간다. 20세기 공산주의.파시즘의 도전을 이겨낸 자본주의는 이젠 거의 항구적인 체제로 보인다. 그런 자본주의를 간단히 정의하면 '시장 기능과 자유로운 교환, 그리고 사적 소유와 법률적으로 자유로운 개인을 바탕으로 하는 체제'다. 그런데 '사적 소유권' '자유로운 개인'이란 이를 인정하려는 국가와 정치체제의 보호가 있어야만 존재할 수 있다.

또 자유로운 교환은 노예제 같은 전근대적인 사회 아래에서는 불가능하다. 이렇게 따져보니 자본주의는 경제 영역을 넘어 철학.사회.정치를 비롯한 삶의 전 영역을 포괄한다. 미국 아메리카 가톨릭대 역사학 교수인 지은이는 이 점을 강조한다. 자본주의를 바라보는 시각의 변천사는 서양 지성의 전개사라는 게 지은이의 생각이다.

그래서 지은이는 18세기 볼테르부터 20세기 신자유주의자 하이예크에 이르기까지 16명의 지성들이 자본주의를 어떻게 봤는지를 촘촘히 살핀다. 그러면서 지금 자본주의 사회가 어떤 곳인지, 앞으로 어떤 세상을 지향해야 하는지를 그들의 눈으로 탐구한다. 그 점에서 이 책은 자본주의 지성사로 읽히기도 한다.

지은이는 좌.우 한쪽의 눈으로 자본주의를 판단하는 것을 거부한다. 예로 자본주의가 무조건 좋다는 사람은 허버트 마르쿠제에게 귀를 기울여 균형감각을 갖출 것을 권한다. 그는 풍요로워 보이는 현대 자본주의 체제가 사실은 폭력이 없는 전체주의라고 설파한다. 허위 의식에 가득한 노예들은 미처 체제의 굴레를 느끼지도 못한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는 경쟁 속에 머리 쓸 일 없이 인간다움을 잃어야 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굴레 말이다.

또 다른 예로'기업가의 창조적 리더십'을 강조한 조셉 슘페터 항목을 잠시 살펴보자. 지은이는 시장과 자본주의 옹호자로 너무도 유명한 슘페터마저 "자본주의가 너무도 창의적이고 역동적인 체제여서 오히려 자신을 허무는 사회 심리적인 역풍을 만들어 낸다"고 우려했음을 강조한다. 그리고 슘페터가 "마르크스가 계층 간 이동 가능성을 간과한 것은 실수지만 사회계급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옳았다"며 마르크스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비판했음을 강조한다.

아울러 슘페터가 자본주의 창의성의 원천으로 소수의 초능력자를 든 점을 들며 그가 니체 철학을 따르고 있음을 지적한다. 즉, 자본주의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경제에만 국한해 보지 않고 철학.정치학.사회학을 비롯한 다양한 학문적 돋보기를 들이대고 학제간 연구를 해야한다고 강조한다.

19세기에 등장한 자본주의라는 단어는 사실 이 체제를 싫어해 타도의 대상으로 삼았던 사람들이 만든 것이다. 애덤 스미스는 상업사회로, 헤겔은 시민사회로 각각 불렀다. 현대 자본주의는 이렇듯 비판자가 만든 개념까지도 서슴없이 받아들이는 열린 자세로 입지를 넓혀왔으며, 그 결과 지금 시대의 키워드가 되고 있다는 게 지은이의 주장이다.

사상의 좌우를 떠나 자본주의 연구가들은 많은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인간 불평등과 사회의 불균형을 지적하며 자본주의를 상당히 강하게 비판한다. 그러면 자본주의는 이 비판을 먹고 더욱 강해질 것이다. 그게 자본주의의 매력일까.

채인택 기자

*** 바로잡습니다

3월 25일자 19면 '한쪽 눈 감은 채 자본주의를 논하지 말라' 북리뷰 기사에 책 제목이 잘못 나갔습니다. '자본주의의 매력'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매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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