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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 16개월째 늘어도 못 웃는 까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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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수출이 16개월 연속 증가세를 이어나갔다. 하지만 반도체 편중 현상의 심화와 대미(對美) 수출의 급감 등 심상치 않은 징조도 속속 포착되고 있다.

설연휴 낀 2월 4.0% 증가했지만 #반도체 편중 여전, 대미 수출 급감 #한자리 증가율 그쳐 수출 둔화 조짐 #“미 통상압박 대비 무역 다변화 필요”

지난주까지만 해도 2월 수출 전망은 암울했다. 2월 1~20일까지의 수출이 전년 동기 대비 3.9%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기 때문이다. 설 연휴로 인해 조업일수가 지난해 2월보다 2.5일 감소했다는 점, 지난해 2월의 수출 증가율이 전년 동기 대비 20.2%에 달했다는 점 등이 부담 요인이었다. 하지만 최종 결과는 예상보다 좋았다.

1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월 수출은 448억8000만 달러로 지난해 2월보다 4.0% 증가했다. 조업일수 요인을 배제한 2월의 하루 평균 수출은 23억 달러로 역대 2월 기준 최대치를 기록했다. 수입은 415억7000만 달러로 전년 동월보다 14.8% 증가했다. 이에 따라 2월 무역수지는 33억1000만 달러 흑자로 73개월 연속 흑자 행진을 이어갔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이원희 산업부 수출입과장은 “여러 부담 요인들을 고려할 때 상당히 선전한 것”이라며 “세계 경기 호조에 따라 수입 수요가 증가했고, 반도체 경기가 호조를 보이면서 수출이 늘어났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몇 가지 불안 요인들도 눈에 띄었다. 2월 수출 증가율은 월간 기준으로 2016년 11월(2.3%)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수출 증가율은 지난해 1~9월까지 9개월 연속 두 자릿수를 유지하다가 지난해 10월부터 한 자릿수로 떨어지면서 둔화 조짐을 보여왔다. 내수 회복이 만족스럽지 못한 상황에서 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마저 둔화한다면 경기 회복세가 꺾일 가능성도 있다.

반도체 편중 현상도 여전했다. 13대 수출 주력 품목 중 지난해 2월보다 수출이 증가한 건 반도체(40.8%)·선박(40.3%)·컴퓨터(29.5%)·석유제품(15.8%)·석유화학(6.3%)의 5개 품목뿐이다. 반도체와 컴퓨터는 역대 2월 기준 최대 수출 실적을 기록하면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선박은 지난해의 부진으로 올해 증가율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고, 석유 관련 품목들은 유가 상승으로 인해 수출이 늘어난 경우다.

하지만 나머지 품목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일반기계(-3.0%)·자동차(-14.4%)·차 부품(-17.7%)·디스플레이(-22.4%)·철강(-9.7%)·섬유(-5.1%)·무선통신기기(32.3%)·가전(-20.5%)의 8개 품목은 수출이 1년 전보다 감소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올해 하반기에 중국의 반도체 대량 생산이라는 악재가 예고돼 있다”라며 “반도체 슈퍼 사이클이 계속 이어지지 않는다면 수출에 큰 차질이 빚어져 반도체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 경제 전체가 흔들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지역별 수출은 중국(3.7%)·일본(21.6%)·유럽연합(17.8%)·호주(16.5%)·베트남(14.2%)·아세안(4.9%)·인도(2.9%) 등 대부분 지역에서 증가했다. 하지만 통상 분쟁이 가열되고 있는 미국으로의 수출은 47억4600만 달러로 전년 동월보다 10.7% 줄었다.

반면 미국산 제품 수입은 43억8600만 달러로 지난해 2월보다 16.8% 증가했다. 이에 따라 대미 무역수지 흑자 규모는 지난해 2월 대비 76.9% 급감한 3억6000만 달러에 그쳤다. 심상렬 광운대 국제통상학부 교수는 “기업들이 미국의 추가 통상 압박에 따른 피해를 줄이기 위해 선제적으로 자율적인 자제, 즉 ‘수출 자율규제’에 나섰기 때문에 발생한 현상으로 볼 수 있다”라며 “당분간 이런 추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큰 만큼 수출 대상 다변화 등의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세종=박진석·심새롬 기자 kaila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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