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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마지막 남은 향토극장 만경관, 96년 만에 역사 뒤안길로

중앙일보

입력

대구 중구에 위치한 만경관 전경. 대구=김정석기자

대구 중구에 위치한 만경관 전경. 대구=김정석기자

대구의 마지막 남은 향토 극장인 '만경관'이 문을 닫는다. 만경관 측은 지난 26일 극장 내부 곳곳에 4월 30일부로 폐관한다는 내용의 안내문을 게시했다. 지난 1922년 개관한 지 96년 만이다.

극장 내 붙은 안내문에는 '4월 30일을 마지막으로 만경관 영업이 종료됨을 알린다. 그동안 만경관을 찾아 주시고 애용해 주신 모든 고객님들께 감사드린다'고 적혀 있다. 만경관 측은 대구에 우후죽순 들어선 대기업 계열의 대형 멀티플렉스 영화관들과의 경쟁에서 경영난을 겪다 결국 폐관을 결정했다.

만경관은 대구의 유일한 향토 극장이자 건립 당시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는 국내 최고(最古)의 극장이다. 2000년대 대형 멀티플렉스 극장이 속속 들어서며 한일극장, 중앙시네마 등 향토 극장들이 연이어 문을 닫을 때도 풍파를 이겨냈다. 이보다 앞서 아세아극장, 대구극장, 제일극장 등 대구 향토 극장들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었다.

만경관 엘리베이터에 4월 30일부로 영업을 종료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대구=김정석기자

만경관 엘리베이터에 4월 30일부로 영업을 종료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대구=김정석기자

특히 2013년에는 15개 상영관 2300석을 9개관 859석으로 줄이고 최첨단 시설을 들여오는 등 리모델링을 해 재기를 노리기도 했다. 만경관은 리모델링 직후 어느 정도 관객을 끌어모으는가 싶더니 다시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평일 유료 관람객 300명, 주말 1700~1800명 수준으로 좌석 점유율이 20~30%대에 그치면서다.

만경관 관계자는 "대형 멀티플렉스 극장이 잇달아 들어서면서 관람객이 급격히 줄어 매출이 크게 감소한 데다 인건비도 늘어나 폐업을 결정하게 됐다"고 전했다.

만경관은 폐업 후에도 계속 영화관으로 운영될 전망이다. 한일극장이 영업 종료 후 CGV 한일극장점으로 계속 운영되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대구 중구에 위치한 만경관 내부 전경. 대구=김정석기자

대구 중구에 위치한 만경관 내부 전경. 대구=김정석기자

만경관을 자주 찾는다는 이승엽(33·대구 서구)씨는 "경영난으로 어쩔 수 없이 문을 닫게 된 것이지만 개인적으로 많은 추억이 있는 극장이 사라진다고 하니 안타깝다"고 말했다.

한편 만경관은 22년 이재필씨가 대구에 최초로 설립한 조선인 자본의 극장이다. 개관 초기엔 영화 상영뿐 아니라 각종 무대 공연과 집회가 이뤄졌다. 한국전쟁 땐 피난민 수용소로도 사용됐다. 한국전쟁 후인 53년엔 미 군정 신탁통치에 반대하는 '여자국민당경북지부'가 결성된 역사 공간이기도 하다.

대구=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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