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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GM 노조 변호사 "GM 떠나라, 발단은 DJ·盧정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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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훈 변호사(왼쪽)과 한국 GM 군산공장(오른쪽) [연합뉴스, 김성태 기자]

박훈 변호사(왼쪽)과 한국 GM 군산공장(오른쪽) [연합뉴스, 김성태 기자]

박훈 변호사가 한국 GM 군산 공장 폐쇄 사태와 관련해 "GM은 떠나라"라고 주장했다.
또 그는 2001년 대우자동차가 GM에 매각됐던 당시를 회상하며 현재 GM 사태를 초래한 주인공은 김대중·노무현 정부라고 강조했다.

박 변호사는 22일 오전 자신의 SNS를 통해 "작심하고 쓴다. 나는 2001년 대우 자동차 정리해고 투쟁을 같이했던 사람 중 한 사람"이라고 밝히며 이같이 설명했다.

그는 "당시 '단 1달러라도 벌기 위해서는 매각할 수 있는 것은 다 매각한다'는 것이 김대중 정권의 기조였고, 대우자동차는 GM에 넘어간다. 특혜 중의 특혜를 김대중과 노무현 정권은 GM에 준다(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난 이를 반대하기 위해 2001년 9월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NO GM'이라는 티셔츠를 장만해 GM 주주총회와 미국 GM 노동조합을 찾아다니며 연대 투쟁을 호소했다"고 덧붙였다.

이어 박 변호사는 현 더불어민주당의 정치인들의 당시 행태를 폭로하며 현 사태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도 했다.

박 변호사는 "지금 민주당의 국회의원과 국회 환경노동위원장, 민주당 한국GM 태스크포스 위원장을 하는 홍영표는 자신도 '대우차에서 2001년에 정리해고된 사람이다'라고 주장하지만, 그를 그 당시 투쟁 현장에서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는 당시 정리해고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라고 적었다.

또 송영길 더불어 민주당 의원에 대해서는 "(당시) 인천 부평구 반대편 지역구 국회의원이었던 송영길은 부평 산곡 성당 천막 농성장에 찾아와 거간꾼 노릇을 자처하며 노동조합 집행부와 회의를 하다 비난을 받자 국회의원 수첩을 꺼내들어 '국회의원을 뭘로 보고'하며 수첩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그 옆에 있었고, 송 의원을 향해 욕설과 함께 화를 냈다고 고백했다.

박 변호사는 대우자동차가 GM에 팔린 이후 GM은 외국 투자기업이 하는 전형적인 수법을 써서 국내시장에서 대우차를 볼 수 없게 했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자신은 당시 사태를 보며 "GM은 한국 시장을 무시하고 신차 투자를 하지 않으리라는 것, 또 언젠가는 지금의 이 사태가 올 것을 알고 있었다"고 목소리를 냈다.

마지막으로 박 변호사는 "한국 GM에는 단 한 푼의 돈도 지원할 이유가 없으며, 한국 GM이 떠난 자리에 무엇이 있을 것인지, 그것만이 논쟁거리가 되어야 한다"며 "비록 고통이 다대할지라도 우리는 그 자리에 고용 친화적이고, 내수친화적이며 미래지향적인 자동차의 새 미래를 펼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박 변호사는 2001년 김대중 정부 당시 대우자동차 정리해고 사태에서 노동조합을 대변하는 활동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고(故) 김광석 가수 부인서해순씨 소송대리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박훈 변호사 페이스북 원문

작심하고 쓴다. 나는 2001년 대우 자동차 정리해고 투쟁을 같이했던 사람 중 한 사람이다. 그 당시에도 난 변호사였고 김대중 정권때였다. 그 투쟁으로 인해 한나라당 프락치 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것도 아주 살벌하게. (당시 추미애는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이무영 경찰청장한테 왜 나를 구속하지 않는지 닦달했다.) "단 1달러라도 벌기 위해서는 매각할 수 있는 것은 다 매각한다." 라는 것이 김대중 정권의 기조였고, 대우자동차는 GM에 넘어간다. 아래 기사에서 쓴 것처럼 특혜 중의 개특혜를 김대중과 노무현 정권은 GM에 준다. 난 이를 반대하기 위해 2001년 9월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NO GM" 이라는 티셔츠를 장만해 GM 주주총회와 미국 GM 노동조합을 찾아다니며 연대 투쟁을 호소한다. "GM은 완성차 생산 공장을 원하지 않는다. 하청 생산기지를 원할 뿐이다, 우린 이런 생산 체계에 반대한다. 연대해 주시라"

그러나 GM 총회가 열렸던 듀퐁사 건물 앞 시위는 "사유지" 운운하며 "Get out" 소리치는 권총에 손을 얹은 "도너츠 만 처먹는 배가 산만한 백인 경찰" 두 놈한테 쫓겨 보이지도 않는 구석으로 밀려났다. "NO GM"이 써진 티셔츠를 입고 노동조합에 가는 것 조차 거부됐다. 노동조합 간부들을 만나기 위해서는 그 티셔츠를 벗어야 했다. 국제적 노동자 연대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그때 느꼈다. 하여간 노동조합 간부들을 만났다. 그들은 얼마나 자신들이 어려운지 이야기를 했다. 나를 보면서 "당신을 '놀라운' 비디오에서 봤다. 변호사가 그런 투쟁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경의를 표한다."는 말만을 들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리고 GM은 무혈 입성을하고 2001년부터 1년 동안 정리해고 투쟁을 한 집행부는 교섭 끝에 정리해고된 1,750명 전원을 3년에 걸쳐 복직 시키는 것으로 합의하면서 단체협약의 많은 부분들을 양보해 줬다.

그리고 공장은 돌아가고 우리들의 정리해고 투쟁은 곧바로 먼 옛날의 전설이 되었다. 회사에 협조하는 노동조합만이 연거푸 당선되었을 뿐이다. 2005년 창원 공장 비정규직 투쟁때 본조 위원장한테 당사자 없는 합의에 항의하면서 "당신이 결정할 문제인가?" 말을 했다가 "당신은 누구세요. 왜 변호사 이 공장에 들어와 있어요?" "뭐라 이런 씨발" 호위 무사로 돌변한 그들을 보면서 난 절망을 했고, 세월이 한참 지나 정리해고 투쟁을 같이 했던 사람들이 노동조합을 잡았으나, 채용비리로 모두 나가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난 더욱이나 절망을 했다.

지금 민주당의 국회의원과 국회 환경노동위원장, 민주당 한국GM 태스크포스 위원장을 하는 홍영표는 자신도 "대우차에서 2001년에 정리해고 된 사람이다." 라고 주장하지만 그를 그 당시 투쟁 현장에서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는 당시 정리해고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다. 인천 부평구 반대편 지역구 국회의원이었던 송영길은 부평 산곡 성당 천막 농성장에 찾아와 거간꾼 노릇을 자처하며 노동조합 집행부와 회의를 하다 비난을 받자 국회의원 수첩을 꺼내들어 "국회의원을 뭘로 보고" 하며 수첩을 바닥에 내동댕이 쳤다. 내가 그 옆에서 그를 보고 있었다. "이런 씨발놈이 어디서 수첩을 던지고 지랄이야" 하면서.

그 이후 GM은 지들 맘대로 했다. 외국 투자기업이 하는 전형적인 수법을 썼다. 본사에서 공급하는 부품 조달 원가를 사정없이 높여 한국GM에 공급해 매출원가가 매출액 대비 93%을 기록케 하는 전무후무한 짓을하고, 본사에서 한국 GM에 돈을 5% 고리로 빌려주면서 수탈하고, 차종 설계 라인을 해체하고 본사 설계도로 제작된 자동차를 몇 조각 내 동구 유럽에서 조립하는 방식인 이른바 kd 수출 방식 (knockdown export)으로 국내 시장에서 대우차를 볼 수 없게 하였다. 글로벌 생산 하청기지였다. 그것은 내가 2001년 미국에 가 GM에 매각되는 것을 반대했던 이유를 그대로 실현한 것에 불과한 것이었다. 우린 그 당시에 모두 알고 있었다. 지금의 이 사태가 언젠가 올 것이라는 것을, GM은 한국 시장을 개무시하고 신차 투자를 하지 않을 것이라 것을.

이런 개같은 한국GM은 망해야 한다. 단 한푼의 돈도 지원할 이유가 없다. 한국 GM이 떠난 자리에 무엇이 있을 것인가. 그것만이 우리의 논쟁거리가 되어야 한다. 작심하고 쓴다. GM은 떠나라. 비록 고통이 다대할지라도 그 자리에 우린 새로운 미래를 펼칠 것이다. 고용 친화적이고, 내수 친화적이며 미래 지향적인 자동차의 미래를.......

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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