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급대원에 욕설한 일반인은 벌금형... 소방서장이 때리면

중앙일보

입력

인천소방본부 홈페이지 캡처.

인천소방본부 홈페이지 캡처.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구급대원의 뺨을 때린 현직 소방서장(중앙일보 온라인 11월 7일 보도)이 형사처벌이 아닌 자체 징계만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일부 소방대원들은 ‘솜방망이 처벌’이라며 불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일반인의 경우 구급대원에게 폭언만 해도 벌금형이 내려지기 때문이다.

인천소방본부, 구급대원 폭행 강화서장 정직 1월 징계 #일반인들은 폭언만 해도 벌금형 처벌, 솜방망이 논란 #일부 소방공무원 "제식구 감싸기", "처벌 결과 황당" #소방본부 "소방방해죄 적용했지만, 검찰에서 기소유예"

19일 인천시와 인천소방본부에 따르면 소방본부는 이달 초 인사위원회를 열어 119구급대원의 뺨을 때리고 폭언을 해 직위해제 된 전 강화소방서장 유모(56)씨에게 ‘정직 1개월’의 징계 처분을 내렸다.

유씨는 지난해 11월 2일 오후 8시 20분쯤 119 신고를 받고 출동한 인천 남부소방서 소속 구급대원 A씨(24·소방사)의 뺨을 두 차례 때리고 폭언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일행과 술을 마시고 자리를 옮기던 중 계단에서 미끄러져 이마가 1.5cm 찢어지는 상처를 입어 119에 신고했다고 한다.

구급대원을 폭행한 강화소방서장의 징계 처분 내용을 담은 공문. [사진 제보자]

구급대원을 폭행한 강화소방서장의 징계 처분 내용을 담은 공문. [사진 제보자]

유씨는 당시 출동한 구급대원에게 “구급차에 오르지 않겠다”며 폭언을 하는 등 실랑이를 벌였다. 하지만 술을 함께 마신 일행 2명이 ‘피해자가 강화소방서장’이라고 신분을 알린 뒤 강제로 구급차에 태워 보냈다. 폭언이 이뤄진 상황이었음에도 구급차에 유씨를 태운 것이다. 유씨의 일행은 인천소방본부 간부와 인천 내 타지역 소방서장이었다. 유씨는 소방본부 조사에서 “술에 취해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납치되는 줄 알았다”고 진술했다.

징계 결과에 대해 일부 직원들은 불만이다. 일반인의 경우 단순 폭언만으로도 벌금형이 내려지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 1월 7일 인천 서구 마전동에서 출동한 구급대원에게 욕설한 A씨는 300만원의 벌금형을 받았다.

더욱이 ‘구급대원 폭행 시 무관용 원칙’을 내세운 것과도 배치된다는 것이다. 인천소방본부는 2016년 7월 구급대원 폭행 시 ‘무관용 원칙 수사’를 내세우며 본부 내 ‘소방사법팀’을 신설했다.

구급차 일러스트. [중앙포토]

구급차 일러스트. [중앙포토]

익명을 원한 한 소방대원은 “설 연휴 새벽 출동 후 돌아와 보니 인천본부로부터 징계 결과 공문이 접수됐는데 내용(강화소방서장 정직 1월)을 보고 너무나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며 “일반인들은 구급대원 폭행 시 징역형을 받는 상황에서 소방서장은 정직 1월이라는 말도 안 되는 결과가 나왔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무관용 원칙 수사 등 강력 대응하겠다고 해놓고선 결국 제 식구 감싸기냐”라고도 했다.

인천소방본부는 ‘공무집행방해죄’보다 강한 ‘소방활동방해죄’를 적용하는 등 법대로 처리했지만, 검찰에서 ‘기소유예’ 처분을 내려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인천소방본부 소방사법팀 관계자는 “폭언과 폭행이 이뤄진 것은 맞지만, 당시 구급차 내 폐쇄회로TV(CCTV) 확인 결과 (유씨가) 구급대원의 마스크를 벗기고, 머리를 ‘툭’ 치는 정도였다”며 “조사도 객관적이고, 피해자 진술도 구체적으로 받아 검찰에 송치했기 때문에 문제 될 게 없다”고 말했다.

인천=임명수 기자 lim.myoungs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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