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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인생샷] 정관수술하면 예비군훈련 면제해준 시절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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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년 개띠, 내 인생의 다섯 컷(44) 김문열

한국 사회에서 '58년 개띠'는 특별합니다. 신생아 100만명 시대 태어나 늘 경쟁에 내몰렸습니다. 고교 입시 때 평준화, 30살에 88올림픽, 40살에 외환위기, 50살에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고도성장의 단맛도 봤지만, 저성장의 함정도 헤쳐왔습니다. 이제 환갑을 맞아 인생 2막을 여는 58년 개띠. 그들의 오래된 사진첩 속 빛바랜 인생 샷을 통해 우리가 걸어온 길을 되짚어봅니다.

1959년 10월 가을 벼알 추수하는 마당에서 찍은 사진이다. 18개월쯤 인 것 같다. 바지는 미군 군복 바지라고 하는 순모바지다. 가슴에는 어머니께서 꽃 수를 놓으시고, 상의는 털실로 짜주셨다.

그때 당시 벼 한섬 값이었다 한다. 6.25 전쟁 끝나고 어려운 시절에 큰돈이었을 텐데 어머니께서 귀한 아들이라고 무리하신 게 아닐까.

1982년 4월 11일 결혼식 날 폐백사진이다. 나는 25세에 58년 개띠 동갑내기와 결혼했다. 요즈음으로 치면 매우 빠른 결혼이었다. 결혼식 때 웃으면 딸을 본다는데, 나는 그렇게 바라던 딸은 못 두고 아들만 둘을 뒀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나라에서 '생긴 대로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는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예비군 훈련 동원 때만 해도 정관수술을 하면 동원훈련을 일주일 면제시켜 주기도 했다. 요즘은 출산이 희망이라고 하니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IMF 시절 두 아들이 고1, 중1에 동시 입학했다. 내가 다니던 직장에서는 급료도 밀렸다. 책값 등 돈이 많이 들어가서 두 아들 모두 학교 선배 교복을 얻어다가 입혀서 학교를 보냈다. 그땐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부모, 형제에게 손을 벌리거나 아쉬운 소리를 하지는 않았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그랬는데 그때 그 근검절약 정신이 지금 두 아들에게도 전해진 것 같다.

이 사진은 50대 초반의 모습이다. 문중에 시제나 한시 백일장이 열려 참석할 때 복장이다. 모자는 유건이라고 한다. 한시는 어깨너머로 배운지 30년 정도가 됐다.

두 아들 모두 해병대에서 군 생활을 했다. 두 아들이 20대 초반, 우리 부부는 오십 대 초반일 때 모습이다. 두 아들 모두 각자 제 위치에 있다. 첫째는 결혼해서 2남 1녀를 뒀다. 요즘 같은 시절에 며느리에게 항상 고마운 마음이 든다.

첫째 손녀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작은아들은 아직 미혼인데 함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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