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주택자 압박 먹히나 … 임대사업자 등록 한 달 새 27% 늘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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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전 서울 서초2동 서초구청 8층에선 일반인들이 주택 임대사업자 등록·상담을 위해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사무실에는 전화벨 소리가 이어졌다. 젊은 층은 주거용 오피스텔을, 40~50대 중장년층은 아파트나 다세대주택을 임대 등록하려고 한다는 게 구청 측 설명이다. 황혜진 서초구청 아파트민원팀 주무관은 “하루 평균 70건, 많게는 100건의 신청이 들어온다”고 말했다.

1월 임대사업자 통계 살펴보니

정부의 ‘당근’과 ‘채찍’이 효과를 본 것일까. 오는 4월 시행되는 양도소득세 중과 제도를 앞두고 임대사업자 등록에 나서는 다주택자가 늘고 있다.

‘집을 팔까, 임대사업자로 등록할까’를 놓고 저울질하던 다주택자 일부가 임대 등록으로 방향을 튼 모양새다. 정부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임대주택 등록 활성화 방안’이 불씨를 댕겼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1월 신규 등록한 임대사업자는 9313명으로, 통계가 작성된 2016년 1월 이후 가장 많았다. 지난해 12월보다 26.7% 늘었고, 1년 전인 지난해 1월(3799명)보다는 145% 급증했다. 신규 등록 건수는 지난해 상반기만 해도 한 달 평균 4000~5000명을 오갔지만, 10월부터 매달 1000명 이상씩 증가세를 보였다.

지난달에만 9313명 새로 추가돼

1월 임대사업자 통계

1월 임대사업자 통계

지역별로는 서울(3608명)과 경기도(2867명), 인천(384명)에서 총 6859명이 등록해 수도권이 전체의 73.6%를 차지했다. 지방에서는 부산(600명), 대구(284명), 경남(184명) 등 순이었다. 이에 따라 개인 임대사업자 수는 지난달 말 기준 26만8000명으로 증가했고, 이들이 등록한 임대주택은 100만7000여 가구로 집계됐다. 문성요 국토부 주거복지기획과장은 “지난해 12월 이후 임대 등록이 빠르게 늘고 있는데, 이는 ‘임대주택 등록 활성화 방안’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13일 등록 임대사업자에 대한 세금 감면 등 혜택을 주는 ‘임대주택 등록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핵심은 ▶임대사업자 취득·재산세 감면 2021년까지 연장 ▶건강보험료 인상분 최대 80% 할인 ▶8년 임대 시 양도소득세 장기보유특별공제 70% 확대 등이다. 다주택자에게 세제 혜택을 주되 이들이 소유한 주택을 임대료 인상 제한과 4년 또는 8년의 계약갱신이 적용되는 안정적인 임대주택으로 공급하겠다는 취지다.

수도권 등록자가 74% 달해

임대사업자 등록 건수가 늘어난 건 4월로 예정된 양도세 중과를 피하려는 다주택자가 많아서다. 정부는 지난해 8·2 부동산 대책으로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를 늘리는 등 전방위적 압박을 가했다. 현재는 주택 보유 수와 관계없이 양도차익에 따라 6~42%의 양도세가 매겨지지만, 4월부터는 세 부담이 커진다. 서울과 세종시, 부산 등 ‘청약조정대상지역’ 내 2주택자는 기본세율에 10%포인트, 3주택 이상 보유자는 20%포인트가 추가 과세된다. 양도차익의 최대 52%(2주택자)에서 62%(3주택 이상 보유자)까지 세금을 낼 수 있다는 얘기다.

다주택자로선 4월 이전에 집을 팔든지, 임대사업자로 등록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버티기’에 들어가야 한다. 2016년 말 기준 통계청 주택소유 현황 자료에 따르면 2주택 이상 다주택자는 197만 명이며, 이 중 79%인 156만 명이 2주택자다. 이들이 보유한 주택은 430만 가구에 이른다. 현재 임대사업자인 26만여 명을 뺀 171만 명이 아직 등록하지 않은 상태라, 정부 약발이 확실히 먹혔다고 보기엔 이르다는 지적도 있다.

4월 양도세 중과 피하려는 움직임

그런데도 분위기는 잡혀가고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의 과세 강화 방침 때문에 임대 등록에 나서는 다주택자는 꾸준히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5년이나 8년씩 집이 묶이는 점과 공시가격 6억원 초과 주택의 경우 세제 혜택이 없다는 점은 부담 요소다. 이남수 신한금융투자 부동산팀장은 “3월 말까지 등록하면 5년 이상만 임대하면 되지만, 그 이후엔 8년 이상 임대해야 한다”며 “임대사업자 등록을 고민 중이라면 서두르는 게 유리하다”고 말했다.

이런 흐름이 시장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임대사업자 등록을 마친 다주택자가 일정 기간 의무적으로 주택을 보유해야 하므로 4월 전후로 매물이 더 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박상언 유엔알컨설팅 대표는 “향후 보유세 개편이 어떻게 이뤄지는가에 따라 매물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4월 이후에는 매물이 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양지영 R&C연구소 소장은 "정부 압박에 의한 움직임인 만큼 시장이 왜곡되는 등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시점에서 다주택자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임대사업자로 등록하든지, 버티기 전략을 택하든 지다. 계약한 후 잔금을 내고 등기 이전까지 최소 한 달 반은 걸리기 때문에 ‘세금 회피용’ 매물은 다 나왔을 것이란 분석이 많다. 강남구 개포동 세방공인중개업소 전영준 대표는 “다주택자의 매도 문의는 뜸하다”며 “이미 팔 사람은 다 팔았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임대사업자 등록 시스템 곧 가동

‘버티기 전략’을 택하며 장기전에 돌입하려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매물이 줄면 집값은 더 오를 것이고, 세금 부담보다 집값 상승분이 더 크면 자금 여력이 있는 자산가는 기다리지 않겠느냐는 분석이다. 김규정 NH투자증권 부동산연구위원은 “공시가격 6억원을 넘는 주택이 많은 강남권에서는 임대사업자 등록보다 계속 보유하겠다는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국토부는 4월부터 다주택자의 주택 보유 현황과 임대차 현황을 파악할 수 있는 임대사업자 등록시스템을 본격적으로 가동할 계획이다. 기존에는 임대사업자 등록을 할 때 자신의 주소지 시·군·구청과 세무서를 각각 방문해 등록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세입자도 해당 주택이 등록된 임대주택인지 아닌지를 집주인에게 직접 확인해야 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온라인 시스템을 통해 등록과 확인이 가능해진다. 문성요 국토부 과장은 “4월 임대사업자 등록 데이터베이스가 가동되고 내년 1월부터 임대소득세가 과세되면 임대사업자 등록이 더욱 빠르게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황의영 기자 apex@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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