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식장·사우나 운영 '기업형 자영업자' 소득 74% 신고 않고 탈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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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 세무조사를 받은 고소득 자영업자와 전문직 종사자가 실제 소득의 57%를 세무서에 신고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1억원을 벌어 4300만원에 대한 세금만 자진 납부한 것이다. 특히 예식장.스포츠센터.사우나.골프연습장 등을 운영하는 '기업형 자영업자'는 번 돈의 74%를 신고하지 않았다.

한상률 국세청 조사국장은 20일 "지난해 12월 22일부터 지난 19일까지 고소득 자영업자 422명을 조사해 1094억원(1인당 2억6000만원)의 세금을 추징했다"고 밝혔다. 이들이 2003~2004년 자진 납부한 세금 638억원(1인당 1억5000만원)의 1.7배에 이르는 세금이 추징된 것이다.

한 국장은 또 "1차 표본 세무조사에 이어 기업형 자영업자 등 319명에 대해 2차 조사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 53억원 벌어 20억원 탈루=서울에서 대형 사우나를 운영하는 김모(55)씨는 사우나 사용료가 대부분 현금으로 지급된다는 점을 이용해 최근 2년간의 순소득 27억6000만원 중 1억2000만원만 신고했다. 국세청은 김씨에게서 소득세 등 13억7000만원을 추징했다. 서울에서 대형 예식장을 운영하는 박모(62)씨는 2003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예식비와 피로연회장 사용료를 모두 현금으로만 받았다. 신용카드로 결제하려 하면 부가가치세 10%를 따로 요구했다고 국세청은 설명했다. 박씨는 이런 식으로 현금을 많이 받은 뒤 수입금액 53억원 중 33억원만 신고하고 나머지 20억원을 탈루해 소득세 5억원을 추징당했다. 박씨의 재산은 최근 5년새 68억원 늘어났다.

◆ 탈세자 재산 10년 새 3배로=이번에 세무조사를 받은 사람들은 1인당 연평균 6억3000만원을 벌어 2억7000만원(소득의 43%)만 신고하고 나머지 3억6000만원은 탈루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예식장.사우나 등 기업형 자영업자는 1년에 8억1000만원을 벌어 2억1000만원만 신고하고 나머지 6억원에 대해선 세금을 내지 않았다. 기업형 자영업자의 소득탈루율(신고하지 않은 소득이 실제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74%로 고소득 전문직(의사.변호사.회계사 등)의 43%, 기타 업종(유흥업소.대형 유통점 등)의 54%보다 높았다.

이들의 재산은 1995년 말 5681억원(1인당 13억5000만원)에서 지난해 말 1조5897억원(1인당 37억7000만원)으로 10년 새 세 배로 늘었다. 한상률 조사국장은 "고소득 자영업자들이 탈루 소득을 부동산투기 등에 사용하면서 재산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고소득 자영업자 계속 조사=국세청은 이날 수입금액 탈루가 많은 스포츠센터.골프연습장 38명, 현금 거래가 많은 결혼관련업 36명, 웰빙 열풍으로 호황을 누리고 있는 스파.사우나 29명, 부동산 관련업 85명, 고급 음식점 84명, 대형 숙박업 28명, 대규모 고시학원 6명, 외국인 고용 유흥업소 13명 등 319명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조사 범위는 2003년 이후 세금 신고내용이며, 조사 기간은 30일(업무일 기준)이다.

국세청은 또 하반기 중 일부 의사와 변호사 등 고소득 전문직에 대한 3차 세무조사를 예고했다. 한 국장은 "표본 세무조사 결과 일부 병원과 변호사의 세금 신고가 아직 불성실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국민이 납득할 정도의 가시적 성과가 있을 때까지 분기마다 한 번 이상 고소득 전문직에 대한 세무조사를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국세청은 일단 지난해 소득에 대한 종합소득세 신고가 5월에 마무리되면 이 내용을 분석해 여전히 불성실하게 신고하는 대표적인 직종과 분야를 2~3개씩 골라 3차 세무조사를 하기로 했다.

김창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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