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평민당의 고민과 과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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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황색 태풍」을 타고 제1 야당으로 뛰어 오른 평민당은 들떠 있던 축제 분위기가 가라앉으면서 당 안팎으로 두 가지 상반된「압력」에 직면해 있다.
하나는 똘똘 뭉쳐 밀어 주었으니 광주문제 등 호남인의 한, 억압받고 살아온 소외 계층의 한을 풀어 달라는 한풀이의 압력이고, 다른 하나는 이제 제발 우리정치가 경제 수준만큼이라도 상향되도록 투쟁 일변도에서 벗어나 정치 안정화에 일조 해 달라는 책임론의 압력이다.
그 어느 한쪽을 충족시키자면 다른 한쪽이 소홀하게 될 수밖에 없는 이 이중의 기대가 평민 당이 풀어야 할 선결과제가 되고 있다. 이 같은 이중 구조는 당내에도 혼 재해 있는데 그것은 총선 기간 중 「강성공약」 등 급진적 성향을 서슴없이 드러내 당선된 재야 입당 인사들에 의한 인적구성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또 다시 당 외의「불안한 시선」과 연결돼 평민당의 위상 설정에 있어 가장 큰 현실적인 고민이 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총선 승리의 일등 공신인 김대중 전 총재의 총선 후 일정은 평민당의 진로를 감지하는데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그는 총선 승리 후『전부 아니면 전무의 투쟁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하고『투쟁 일변도의 태도를 지양하겠다』『새로운 대화정치를 창조하겠다』『정당은 혁명단체가 아니다』『상대방(여당)이 억압할 때 선명 경쟁이지 상대가 온건·합리적일 땐 온건경쟁을 해야 국민의 지지를 받는다』는 등「온건발언」을 수차 반복하고 나섰다. 이 발언들은 한마디로「독재에 저항해 강하게 싸웠을 뿐이지 결코 과격 인물이 아니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풀이되고 있다.
이것은 평민당의 카리스마적 존재로 정치적으로 재생의 길을 튼 김 전 총재가 제1당이 된 평민 당이 차지할 몫이나 향후 정치목표의 쟁취에 앞서 강성 이미지의 탈피 내지는 온건 이미지의 창출에 부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증권시장에 대한 발언, 두 김씨의「3김 회담」제의에 따라가는 자세 등 가급적 목소리를 낮추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적극적으로 이미지 개선을 꾀하는 김 전 총재의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평민 당이 일찍부터 표방해 온 광주문제 해결 등 선결 목표들의 관철과 그에 앞서 지도체제 등 당 체제정비,「지역 당」성격의 탈피, 새로 영입한 급진세력의 주장을 수용하는 문제 등을 더듬어 보면 어느 것 하나 여유를 찾아보기 힘든 것이 평민당의 현실이다.
우선 평민 당이 총선 후 이미 제시해 놓고 있는 선결목표는 △5공화국의 비리청산 △국민생존권 보장 △각종악법 개폐 △지자제 전면 실시 입법추진 등 네 가지다.
특히 5공화국의 비리청산은 다시 △언론 자유보장 △구속 자 전면 석방과 사면·복권 △안기부·보안사 등 정보기관의 정치개입 종식 △경찰의 중립화를 위한 공안 위 설치와 아울러 △광주사태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의 부정축재 △대통령 선거의 부정 조사 등인데 마지막 세 가지는 국회개원과 함께 국정조사권 발동을 통해 관철시켜 나갈 방침인 듯하다.
명분이 있고 국민 공감대가 이미 형성돼 있는 사안들인 만큼 평민 당이 이를 주도해 나갈 때 다른 야당은 물론 여당도 좋든 싫든 공동보조를 취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평민 당은 보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예컨대 광주사태의 진상조사가 여론에 쏠려 『가해자를 용서할 수 없다』는 기류로 흐를 때 평민 당이 취할 태도에 대해선 의견이 강 온으로 엇갈려 있는 게 사실.
김 전 총재는『진실은 밝히되 보복은 절대 반대한다. 나도 피해 당사자로 많은 박해를 받아 왔으므로 우리가 용서하자고 주장하면 도덕적으로 설득력을 갖는다고 생각한다』고 해 왔지만「진실을 밝히는」 현실적 작업이 가져올 파란은 능히 예상되는 점이다.
그런가 하면 5 공화국의 비리 재조사에서도 전 전 대통령 일가에 대한 국회의「조사」를 어떤 방식으로 진행시킬 것이냐에 따라 파문은 커질 수 있다. 비록 대통령 선거 부정조사 등에 대해서는『여당의 태도 여하에 따라 과거 일에 너무 집착하지 않겠다』는 등 유연성 있는 태도를 보이고 있으나 조사 방법·대상 등에 따라서는 정치적 긴장이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이다.
이번 총 선에서 「위력」을 입증한 김 전 총재는 그 자신의 정치적 의도대로 이 문제에 의한 정치적 영향의 완급·강약을 조절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당선자들이 모두 그의 「은덕」을 입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재야 운동권의 맥을 따르고 있는 쪽으로서는 보다 급진적이고 과격한 요구의 관철을 주장할 수 있다.
따라서 우선 1차적인 문제는 평민당 내에서 김 전 총재와 재야의 위상을 어떻게 설정하느냐는 것이다. 부분적인 말썽은 있을지 모르나 김 전 총재의 총재직 복귀에 의한 단일 지도 체제로 굳혀질 것이 분명해 보인다.
재야 인사 입당 때의「집단지도 체제합의」가 아직 유효하다는 주장이 일부 재야 파에 없는 것은 아니나 △총선 압승의 상황변화 △1노 3김 구도 △집단지도 체제합의의 근본정신이 재야 입당의 명분을 주고 평민당 내지는 김대중을 살리자는 것이었다는 점 등을 종합해 볼 때 집단지도 체제합의를 단일지도 체제합의로 전환시키는데는 재야 파의 입장정리와 적절한 절차만 남아 있을 뿐인 것 같다.
평민당이 20%미만 득표 율의「지역 당」에서 탈피, 스스로 표명해 온 대로 어떻게 국민정당으로 탈바꿈하느냐는 것도 평민당의 큰 과제중의 하나다. 김 전 총재는 이를 위한 방법으로 영남지역 순방 계획을 밝히고 있고 본적지 제도 폐지, 행정구역 개편, 균등한 인재 등용 등을 제시하고 있다.
또 김 전 총재의 이 같은 표면적 대안과는 별도로 일부 재야 파들은「평민 당을 국민정당으로」란 캐치프레이즈 아래 당내 재야 확대를 통한「평민당의 국민 정당화」를 추진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지역 당」의 탈피는 영남 중심 민주당 등과의 통합을 통해서도 가능하나 김 전 총재는 두 야당에 대해『각 당의 독자성을 유지하면서 공동 목표를 위해서는 공동협력 관계를 유지하겠다』고 말하고 있어 야권통합은 생각하지 않고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고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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