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방미 앞두고 후진타오 '미소 작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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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중국이 다음 달로 예정된 후진타오(胡錦濤.사진) 국가주석의 미국 방문을 앞두고 미국과의 갈등을 줄이기 위한 정지작업에 들어갔다. 구속된 언론인들을 석방하고 대규모 종교행사도 계획하고 있다. 정치와 경제 등 각종 현안의 원만한 타결과 상호 협력을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

◆ 잇따른 언론인 석방=중국 검찰은 국가기밀 누설 혐의 등으로 수감된 뉴욕 타임스 베이징(北京)지국의 전 직원 자오옌(趙岩)에 대한 공소를 취하, 최근 석방했다고 홍콩 언론이 19일 보도했다. 자오는 2004년 9월 뉴욕 타임스가 당시 장쩌민(江澤民) 군사위원회 주석의 사임을 예고한 특종 보도로 인해 국가기밀 누설 혐의 등으로 구속됐다. 미 국무부는 자오의 수감이 명백한 언론 탄압이라며 최근까지 석방을 요구해 왔다.

이와 관련, 국제인권단체인 엠네스티 동아시아팀의 마크 알리슨은 "자오의 석방은 중국 정치와 언론의 자유를 위한 전향적 조치라기보다 미국과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이뤄진 상투적이고 가식적인 유화 제스처일 뿐"이라고 평가 절하했다.

2월에는 1989년 천안문(天安門)사태 당시 마오쩌둥(毛澤東) 초상화를 훼손한 혐의로 20년형을 받고 17년간 수감됐던 후난(湖南)성 류양신문의 위둥웨(喩東岳) 기자를 석방했다.

중국 검찰은 1월에도 랴오닝(遼寧)성 성장의 비리 혐의를 기사화한 뒤 국가전복 혐의 등으로 수감됐던 언론인 장웨이핑(姜維平)을 형기 만료 1년을 앞둔 시점에서 풀어줘 미 국무부의 환영을 받았다. 그의 석방은 클라크 랜트 주중 미국대사가 한 외교모임에서 중국 내 언론 탄압과 관련, 장씨 문제를 언급한 직후 이뤄졌다.

◆ 공산화 뒤 첫 국제 종교행사=중국 정부는 다음 달 13일 저장(浙江)성 항저우(杭州)에서 세계불교포럼을 열기로 했다. 49년 공산정권 출범 이후 처음 있는 국제 종교행사다. 미국이 거론하는 '중국의 종교 자유 억압' 주장을 희석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세계불교평화기금에 따르면 이 행사에는 세계 10여 개국 1000여 명의 불교 신도와 전문가가 모여 불교의 발전 방향과 포교를 주제로 토론을 벌인다. 샤오우난(蕭武男) 기금 부회장은 "종교는 중국의 조화사회 건설에서 큰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인이 미국을 좋아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느닷없이 나왔다.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의 자매지 환구시보(環球時報)는 17일 '중국인의 대미 의식 조사 결과 응답자의 80%가 미국에 호감을 가진 것으로 조사됐다'고 보도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시기에 비해 호감도가 9%포인트나 높아진 것이라고 신문은 전했다. 이번 조사는 베이징(北京).상하이.광저우(廣州).충칭(重慶).우한(武漢) 등 중국 5대 도시 주민 1150명을 상대로 이뤄졌다.

◆ 목표는 전략적 동반자 관계=후 주석은 다음 달 18일 미국을 방문해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다. 홍콩의 명보는 후 주석이 20일로 예정된 양국 정상회담에서 양국의 국제협력과 무역.대만 문제를 집중 논의할 것이라고 19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후 주석이 방미 중 특히 미국 일각의 '중국 위협론(중국이 미국에 위협이 된다는 생각)'을 불식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와 관련, 홍콩 언론들은 "중국은 이번 미.중 정상회담을 통해 장차 미국과의 단순한 협력관계를 넘어 러시아와 비슷한 수준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 구축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길 바라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를 위해 양국 실무자들은 부시 대통령이 후 주석을 텍사스주에 있는 자신의 목장으로 초대해 우의를 다지는 일정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9월에는 후 주석의 미국 국빈방문을 요구하는 중국과, 실무방문을 고수한 미국의 입장 차이로 후 주석은 유엔총회에만 참석하고 국빈방문은 성사되지 못했다. 그 뒤 부시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베이징을 먼저 국빈방문해 각종 현안에 대한 양국 협력을 다짐했다.

홍콩=최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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