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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검, 항소심 회심의 카드 ‘0차 독대’ 인정 안 되자 당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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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한 전직 삼성 고위 임원들의 항소심 선고 공판이 열린 5일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법원 중법정에 입장하려는 방청객들이 법정 앞에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뉴스1]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한 전직 삼성 고위 임원들의 항소심 선고 공판이 열린 5일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법원 중법정에 입장하려는 방청객들이 법정 앞에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뉴스1]

5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항소심 판결로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1년 가까이 주장해 온 ‘뇌물죄 프레임’이 깨졌다.

1년간 주장 ‘뇌물죄 프레임’ 깨져 #“너무 안타깝다” 대법에 상고키로

특검팀과 검찰은 그동안 삼성이 해결해야 할 현안이 있을 때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독대했다고 봤다. 이를 통해 삼성은 경제적 대가를 지불하고 대신 경영권 승계 등의 청탁을 했다는 게 특검팀이 본 뇌물죄의 기본 구조였다. 특검팀은 이런 구조에서 삼성그룹이 총 433억원 상당의 뇌물을 건넸다고 봤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명시·묵시적 청탁’의 대상이 된 삼성 경영권 승계과정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항소심이 인정한 뇌물액도 36억원(삼성이 코어스포츠에 준 용역비)과 마필 및 차량의 무상이용 이익에 그쳤다. 특검팀으로선 보다 법리적으로 세밀한 대응전략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해 특검팀은 “안종범·차은택 뇌물사건에서도 인정한 ‘안종범 수첩’의 증거능력을 이 재판부는 인정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특검팀 관계자는 “삼성전자 등 일부 현안이 청와대의 도움으로 해결됐다는 점은 이미 수사와 재판을 통해 어느 정도 입증이 된 사안”이라며 “이게 결국 이 부회장의 지배력 확보에 유리한 효과를 가져왔다는 논리구조를 더욱 탄탄히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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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검팀이 회심의 카드로 제시한 ‘0차 독대’를 인정하지 않은 부분도 적극 대응해야 한다. 특검팀은 이 부회장의 뇌물 혐의를 입증하고자 항소심에서 이른바 ‘0차 독대’를 혐의 사실에 추가해 공소장을 변경했지만, 법원에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특검팀 관계자는 “안종범 휴대전화 메시지, 안봉근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의 증언도 있다”며 “2심 재판부가 증거재판주의 원칙에 반하는 판결을 내렸다”고 말했다.

박영수 특검팀은 이날 법원 선고가 확정되고 1시간 30여분 뒤에서야 짤막하게 입장을 내놓을 정도로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기자들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에서 “법원에서 정의가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를 기대했는데 너무 안타깝다”고 적었다.

특검팀은 이어 오후 8시쯤 A4지 3장 분량의 입장자료를 다시 냈다. 특검팀 관계자는 “증거 및 의견서 내용을 철저히 외면한 편파적이고 무성의한 판결”이라며 재판부에 대한 비판 수위를 확 높였다. 그러면서 이는 ‘채증법칙’에 위반하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또 “재판부는 이 사건의 본질이 정경유착이 아니라 정치권력의 강요에 의해 불가피하게 뇌물을 공여한 것으로 판단했다”며 “이는 이 부회장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해 사건을 본질을 왜곡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특검팀은 “법원과 견해가 다른 부분은 상고해 철저히 다투겠다”고 덧붙였다. 대법원의 판단을 다시 받아보겠다는 것이다.

◆최순실 측도 촉각 곤두세워=2심 재판부는 박 특검팀이 공소사실에 적시한 여러 건의 뇌물 관련 혐의 중에서 삼성이 최씨 딸 정유라씨에게 제공한 승마지원을 뇌물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박 전 대통령과 최씨가 수뢰 범행을 공모했다고도 인정했다. 이에 대해 최씨 변호인 이경재 변호사는 보도자료를 내고 “최씨가 박 전 대통령과 뇌물 공동정범에 해당된다는 판단에 대해서는 수긍하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그는 “이 부회장에 대한 뇌물공여 사건과 최씨의 삼성 뇌물 수수 사건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다. 이 부회장에 대한 판결 선고는 최씨 판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법조계에선 이날 판결로 뇌물 인정 액수가 대폭 줄어들어 뇌물수수자로 기소된 최씨 재판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사건 구조상 뇌물 제공자(삼성)보다는 수수자에게 더 큰 비난과 책임이 뒤따른다는 점에서, 박 전 대통령과 최씨가 여전히 큰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는 관측도 많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세윤)는 선고공판을 오는 2월 13일 연다.

현일훈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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