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과학을 살리자] 2. 뒤로가는 産·學·硏 협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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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0면

충북 청원군 2백85만평에 자리잡은 오창과학산업단지. 토지공사가 '21세기 최첨단 미래형 산업연구단지'의 기치를 내세우며 1992년부터 개발하기 시작한 곳이다.

8월 말 현재 이곳의 분양률은 75%에 달하지만 자리를 차고 앉은 업체는 전임상실험 전문업체인 바이오톡스텍 등 2개 업체에 불과하다. 황량한 벌판에 보이는 것은 '땅'이라고 써붙인 부동산과 활기차게 건설 중인 러브호텔이 대부분이다.

이곳의 입주 1호업체 바이오톡스텍 강종구 대표이사는 "지난해 들어왔는데 전기료도 일반 가정집과 똑같고 버스 노선도 하나 없어 없는 살림에 회사버스를 운영해야 하는 등 불편이 크다"고 말했다.

이곳에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오창캠퍼스와 유한양행.녹십자 등 바이오 관련 연구소와 업체가 들어서면 공동연구가 활발해질 것이란 기대감에 설레지만 이들의 입주 현황은 여전히 지지부진할 뿐이다.

이곳에 2만8천평을 분양받은 유한양행 관계자는 "군포 공장 매각절차가 여의치 않아 언제 이전이 완료될지 확실치 않다"고 밝혔다.

광주첨단.전주과학.오송생명과학.부산과학지방산업단지 등 지역 내 산.학.연 협력 활성화를 목표로 조성된 대부분의 지방단지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광주는 85% 정도 분양을 마쳤지만 분양권자인 토지공사는 나머지 비어있는 땅에 미련이 없는 상태다.

토지공사 관계자는 "지난해 연구용지를 평당 평균가(66만원)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29만9천원으로 깎았는데도 들어오겠다는 연구소가 없는 실정"이라며 "최근 경기 불황과 지역경제 여건 미비로 새로운 땅 주인을 못 찾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광주과기원 앞 첨단단지는 이미 유흥주점과 러브호텔로 들어찬 지 오래다. 광주와 함께 91년부터 개발된 전주단지는 분양률이 33%에 그치고 있다. 오송이나 부산단지는 개발 초기단계라 더욱 황량할 뿐이다.

지방의 산.학.연 협력이 갈수록 무너지는 양상이다. 지방의 연구인력은 서울로 옮겨가는 중이고 지방 산업체는 중국이나 동남아로 이전, 지방 과학기술은 터전을 잃어가고 있다. 당연히 활력이 넘쳐야 할 지방산업단지는 거꾸로 가는 중이다.

실제 올들어 이뤄진 공공기술 이전 실적이 이를 말해준다. 총 74건의 이전건수 가운데 수도권(15건).대덕밸리(45건)가 전체의 81%를 차지했고 나머지 중부권(6건), 영남지역(7건), 호남.제주(1건) 등은 미미한 수준에 그쳤다.

지방에 있는 기업들은 서울로 연구과제를 싸들고 와 맡기는 경우가 많고, 실력을 인정받은 지방대 교수들은 지역기업으로부터 '찬밥 신세'다.

충청권 지방대의 한 교수는 "대기업 측이 내가 특정 분야의 최고전문가라는 사실은 알지만 과제를 맡기지 못한다"며 "자칫했다간 감사에 걸려 신상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어 서울대 교수 등으로 산.학 협력과제가 몰리고 있다"고 한탄했다.

기억분야의 전문가로서, 지난해 포항공대에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으로 자리를 옮긴 신희섭 박사는 "일하기가 불편해 옮겼다"고 잘라 말했다.

자신의 연구와 관련있는 병원 시설이나 공동연구를 벌일 만한 연구자가 대부분 수도권에 몰려있어 어쩔 수 없이 서울로 올라왔다는 얘기다.

한 전문가는 "실리콘밸리는 대학.연구소.기업이 연구개발을 중심으로 고리를 이루고 있어 자연발생이 가능했지만 우리는 사정이 다르다"며 "러시아 등 외국으로부터 양질의 연구인력을 수입해 지방의 연구여건부터 활성화하고 펀딩과 마케팅을 맡아줄 기관 등을 설치해 서울로 올라올 필요를 못 느끼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심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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