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잇따르자 한국 빠져나가는 암호화폐 투자자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2면

암호화폐

암호화폐

30대 암호화폐 투자자 이 모 씨는 국내 거래소에 보관하고 있던 이더리움을 최근 홍콩 거래소인 바이낸스로 옮겼다. 이 씨는 “신규 계좌 개설이 어렵다는 말을 듣고 혹시나 정말로 거래소를 폐쇄하지 않을까 마음이 불안해졌다”며 “‘김치 프리미엄’이 사라진 데다 당분간 팔 생각도 없기 때문에 일단 국내 규제에서 자유로운 해외로 이더리움을 옮겼다”고 말했다.

‘김프’ 실종 ‘햄버거 프리미엄’ 역전 #규제서 자유로운 미·일 등 옮겨가 #한국어 안내 해외 거래소까지 등장

일부 국내 암호화폐 투자자가 해외로 이탈하고 있다. 국내 거래소에 보유하던 암호화폐를 해외 거래소로 옮기는 식이다. 암호화폐에는 국적이 없기 때문에 어떤 거래소에 보관하건 상관이 없다. 게다가 최근에는 국내 거래 가격이 더 싼 ‘역(逆) 프리미엄’ 현상도 종종 나타나고 있다. 이를 ‘햄버거 프리미엄’으로 부른다. 물론, 해외 계좌가 없는 한 이들도 현금화할 때는 암호화폐를 다시 국내 거래소로 옮겨와 팔 수밖에 없다.

곧, 이들은 정부의 규제책에 맞서 해외 거래소에 ‘진지’를 구축하고 ‘장기전’에 들어갔다고 풀이할 수 있다.

4일 암호화폐 정보제공 사이트 코인힐스에 따르면 한국의 비트코인 거래량은 전 세계에서 3위다. 한 달 전과 순위는 같지만, 점유율은 12%에서 8%로 크게 떨어졌다. 반대로 비트코인 거래량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일본은 한 달 전 49%에서 이날 58%로 높아졌다. 2위는 미국으로 27%에서 24%로 하락했다.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인 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 등의 지난달 거래량은 한 달 전보다 절반 아래로 감소했다. 한 암호화폐 거래소 관계자는 “거래대금이 크게 줄었고 역 프리미엄 현상까지 나타나면서 국내 거래소를 발판으로 해외 거래소로 옮겨가는 투자자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달 규제 전후로 중국계 자금이 이탈한 것으로 추정되고 개인 소액 투자자도 발을 빼는 형국”이라고 덧붙였다.

일부 해외 거래소는 한국을 포함한 글로벌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한국어를 비롯한 다양한 언어를 제공하고 있다.

암호화폐에 대한 정확한 정의조차 없는 한국과 달리 미국과 일본은 암호화폐에 법적 지위를 부여하고 있다. 미국 국세청은 암호화폐를 가치 저장수단(자산)으로 인정하고 채굴, 거래 등으로 수익을 내면 소득세 과세 대상으로 본다.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는 암호화폐를 상품으로 정의하고 관련 규제를 받도록 했다.

일본 재무성은 암호화폐 거래 차익에 대해 세금을 매기고 암호화폐 매매업자 등록제를 도입했다. 국내에선 첫 단추가 끼워지지 않은 상태라 규제 및 과세 정책이 자리 잡으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해외 거래소라고 해서 가격 변동에서 벗어날 순 없다. 여기에 가격 조작 의혹 및 보안사고 등이 잇따르면서 세계 각국은 점차 규제 쪽으로 몸을 틀고 있다.

금융연구원은 이날 ‘최근 비트코인 가격 급락 현상과 가상통화 생태계’ 보고서에서 암호화폐 가격이 거품 사이클의 막바지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분석했다. 미국 경제학자 하이먼 민스키가 창안한 거품 사이클(대체→호황→도취→금융경색→대폭락)에 근거해서다.

이광상 금융연구원 연구원은 “비트코인 가격이 ‘금융경색’ 단계에 근접했다”라며 “정부는 부작용을 해소할 규제 환경과 인프라를 서둘러 정비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이새누리 기자 newworld@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