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헌·무죄·벌금…김어준 판결로 다시보는 '적법한 선거운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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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인 2012년 4월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김용민 후보, 김어준씨·주진우씨가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는 모습. [중앙포토]

6년 전인 2012년 4월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김용민 후보, 김어준씨·주진우씨가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는 모습. [중앙포토]

"6년 만에 1심 판결이 났습니다. 굉장히 길었습니다. 그동안 괴로웠고, 법으로 그렇게까지 괴롭힐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사례입니다."

"언론인이 선거운동"→위헌 #노원구 밖 콘서트→무죄 #"각하 응징해야"→유죄

인터넷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에서 활동했던 김어준(50) 딴지일보 발행인과 주진우(45) 시사인 기자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 김진동)는 지난 2일 두 사람의 혐의 중 일부에 대해서는 검사의 공소 자체를 기각하고, 일부를 무죄로 봤다. 하지만 유죄로 본 부분도 있어 인당 벌금 90만원을 선고했다.

두 사람은 2012년 4월 19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했던 언행 일부가 문제가 돼 다섯 달 후인 9월에 재판에 넘겨졌지만 5년 5개월 만에야 1심 선고를 받았다. 재판이 이렇게까지 길어진 것은 두 사람이 처벌 근거가 된 공직선거법 조항에 대해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하면서 헌법재판소 결정을 받기까지 3년 넘는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는 2016년 6월 "언론인의 선거운동을 금지한 공직선거법 조항은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검찰은 두 사람이 선거를 앞두고 여러가지 잘못을 저질렀다고 봤는데, 그중에는 민주통합당 천정배·정동영 후보의 공개장소 연설·대담에서 선거운동을 했다는 점이 포함돼 있다. 공개장소 연설·대담에서는 선거운동이 합법적으로 허용되지만 두 사람은 '선거운동을 할 수 없는 언론인'이라는 이유로 기소됐다. 헌법재판소는 애초에 선거운동을 하면 안 되는 '언론인'의 범위가 명확히 정해져 있지 않을뿐더러 언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개인 자격으로 선거운동을 하는 것까지 못하게 하는 건 선거운동의 자유라는 개인의 기본권을 중대하게 제한하는 것이라고 봤다.

"언론인 선거운동 금지는 위헌" 2년 전 헌재 결정 이유는

지난해 12월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이 소송 선고를 위해 자리에 앉고 있는 모습. [중앙포토]

지난해 12월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이 소송 선고를 위해 자리에 앉고 있는 모습. [중앙포토]

2016년 6월 30일 헌법재판소 재판관 9명 중 7명이 위헌 결정을 내린 요지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선거운동을 하면 안되는 '언론인'이 누구인지 법률에서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헌법재판소는 "방송·신문·뉴스통신·잡지·인터넷언론사 중 어느 범위로 한정될지, 외형적 사항과 매체의 실질적 컨텐츠 중 무엇이 고려될지, 선거의 공정성을 훼손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매체는 무엇으로 판별할지에 대해 대강이라도 예측할 수 있는 기준 자체가 없다"면서 "(언론사 종사자 중) 경영·관리·취재 업무에 어느정도까지 관여하는 자까지 언론인에 포함될 것인지, 객원기자와 같은 경우에도 이에 해당할 것인지 등 구체적으로 판단할 자료가 존재하지 아니한다"고 봤다.

다른 하나는 '언론인은 선거운동을 하면 안 된다'는 건, 우리 헌법이 보호하는 선거운동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판단이다. 헌법재판소는 결정문에서 "언론인의 선거운동을 금지한 것은 언론인의 선거 개입으로 인한 부작용과 폐해를 방지하기 위한 것인데 그런 문제는 언론매체를 통한 활동, 즉 언론인으로서의 지위를 이용하거나 그 지위에 기초한 활동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면서 "반면 정치적 중립성이 요구되지 않고, 정당 가입도 허용되는 언론인에게, 언론매체를 이용하지 않고 업무 외적으로 개인적 판단에 따라 선거운동을 하는 것까지 전면적으로 금지할 필요는 없다"고 썼다. "다른 나라의 입법례를 보더라도, 언론인의 선거운동을 전면적으로 제한하고 위반시 처벌하는 제도는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도 이같은 판단의 근거가 됐다.

지난 2일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는 김어준 딴지일보 발행인과 시사인 주진우 기자. 두 사람은 이날 혐의 중 일부가 유죄로 인정돼 벌금 90만원을 선고받았다.[연합뉴스]

지난 2일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는 김어준 딴지일보 발행인과 시사인 주진우 기자. 두 사람은 이날 혐의 중 일부가 유죄로 인정돼 벌금 90만원을 선고받았다.[연합뉴스]

헌재 결정 이후 재판이 다시 열렸고, 검찰은 두 사람이 언론인이라서 문제 삼았던 공소 내용을 취소했다. 남은 혐의는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 집회를 열고, 선거운동을 하기 위해 확성기를 사용한 것 등이었다.

재판부는 "김 발행인과 주 기자는 특정 정당이나 선거사무소 구성원으로 활동한 것이 아니고 종래 진행해왔던 언론활동의 연장 선상에서 '토크콘서트'를 열었고, 발언 내용은 특정 후보자를 지목한 것이 아니라 새누리당이 추천한 후보자 전체를 대상으로 한 것이고, 그 발언도 '토크콘서트'라는 형식을 취해 낙선운동이라는 성격이 비교적 희석될 수 있었다"면서도 두 사람의 언행 중 일부는 법에서 금지되는 선거운동이 맞다고 봤다.

"각하(이명박 전 대통령)를 내일 투표로 끌어내야지 죄를 물을 수 있어요" "가슴이 있다면 당나라당(한나라당) 안 찍어" "언론사들이 김용민 후보를 낙선시키려 해요. 거꾸로 김용민 후보가 당선되면 그들 모두를 이기는 겁니다" 등 발언이 유죄로 인정됐다. 재판부는 "형식상으로는 투표를 독려하는 발언이었지만 새누리당이 추천한 후보자 낙선뿐 아니라 김용민의 당선을 도모하기 위한 선거운동으로 평가함이 상당하다"고 봤다.

하지만 같은 내용의 토크콘서트라도 김용민 후보자가 출마한 '노원구 갑'에서 연 것은 유죄로, 그 외의 지역에서 연 것은 무죄로 인정됐다. 재판부는 "노원구 갑 이외의 장소는 김 후보자에 대한 선거 결과와 직접적인 관련성이 낮다"고 봤다. 모인 사람 중 상당수가 노원구 갑 선거구민이 아닐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법률상 처단형의 범위가 벌금 5만~600만원인데 벌금 90만원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피고인들은 당시 정권에 대하여는 소수자 내지 약자로서의 지위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과 정권을 상대로 그 비위와 실정을 드러내기 위한 언론활동을 활발히 하였고 그러한 소수자 내지 약자로서의 언론활동이 민주주의의 달성과 발전에 기여하는 측면이 있음 또한 평가되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문현경 기자 moon.h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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