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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콩고 도우려다 … 국제 논쟁 부른 한국 전자투표 시스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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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9호 07면

아프리카서 ‘선관위 스캔들’

터치스크린 방식의 전자투표 시스템의 한 종류(왼쪽). 경찰이 지난달 21일 조제프 카빌라 대통령 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대를 해산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터치스크린 방식의 전자투표 시스템의 한 종류(왼쪽). 경찰이 지난달 21일 조제프 카빌라 대통령 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대를 해산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자원의 저주’에 빠진 아프리카 국가인 콩고민주공화국(DR콩고)에서 한국의 전자투표 시스템이 국제 논쟁의 한복판에 섰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사실상 예산을 전액 지원하는 ‘세계선거기관협의회(AWEB)’가 관련 한국 기업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다가, 서방 국가들의 우려 표명 때문에 DR콩고 당국과의 협력을 중단하는 일도 벌어졌다. 중앙선관위는 내부 감사를 통해 이 과정을 들여다보고 있다.

선관위가 예산 전액 주는 AWEB #한국 기업 전자투표기 수출 도와 #“문맹률 높아 선거 결과 조작 가능” #미국·프랑스 등 서방서 악용 우려 #“독재국가에 투표기 수출 부적절” #AWEB, 현지 선관위와 협력 중단

DR콩고는 자원 면에선 ‘지질학적 불가사의’로 불릴 정도로 부국이지만 민주주의 전통에선 빈곤한 나라다. 1960년 벨기에로부터 독립한 이후 지금껏 독재와 내전으로 점철됐다. 조제프 카빌라 현 대통령은 2001년 내전 와중 암살당한 부친인 로랑 카빌라 대통령에 이어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다. 당시 내전으로 400만 명이 숨졌다.

현행 헌법에 따르면 그의 임기는 2016년 말로 끝났다. 그럼에도 물러나지 않자 퇴진 시위가 벌어졌고 이 과정에서 1000여 명 이상이 숨졌다. 가톨릭교회가 중재에 나서 야권과 합의하에 대선을 2017년 12월 19일로 미뤘다. 카빌라 대통령이 지금껏 자리를 지키자 반발이 거세졌다. 벨기에는 물론 서방 국가들이 나선 배경이다. 당국은 다시 올 12월 23일 대선을 치르겠다고 약속했다.

AWEB과 M사의 터치스크린 방식의 전자투표 시스템이 등장한 건 이 대목이다. 선관위 사무총장 출신인 김용희 AWEB 사무총장은 “DR콩고의 선관위(CENI) 위원장이 미국·캐나다 등을 돌며 투표기 회사를 접촉하다 한국까지 왔다. ‘도움을 줄 수 없겠느냐’고 해서 공적개발원조(ODA) 시범사업으로 하려고 했다”고 전했다.

만만치 않은 선거이긴 하다. 인구가 8000만 명인데 200여 종족이 240여 개 언어를 쓴다. 공식어인 프랑스어를 이해 못하는 사람들이 절반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종족별로 출마자가 있다. 이러다 보니 투표용지가 50페이지가 넘는다. 김 총장은 “기존 방식으론 선거 비용이 우리 돈으로 4000억원 넘게 들지만 M사의 전자투표 시스템이면 1500억원에 가능하다”고 말했다. AWEB은 2015년 키르기스공화국의 선거를 도운 바 있다.

시범사업 아이디어는 그러나 AWEB 내부 논의 과정에서부터 논란이 됐다. A씨의 증언이다. “터치스크린 투표 시스템과 데이터지원센터를 ODA 사업으로 하겠다고 했다. 전자투표 시스템을 작동하기 위해선 전기가 있어야 하는데 도시를 벗어난 지역 대부분에선 전기 공급이 잘 안 된다고 했다. 문맹률도 높았고 터치스크린을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스크린을 넘겨 가며 투표하게 한다는 게 가능하겠느냐는 우려도 컸다.” 전자투표 시스템이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였다. 결국 외교부·기획재정부 등 논의 과정에서 7억2000만원 상당의 데이터센터 사업만 지원하기로 했다.

그러자 CENI가 전자투표 시스템을 구매하겠다고 나섰다. AFP통신은 “국가 예산의 10%에 해당하는 5억 달러(5400억원 상당)를 배정했고 여기엔 논란 많은 ‘투표 기계’(전자투표 시스템) 구입도 포함됐다”고 보도했다. 지난달 1차분 8대가 건네졌다. 대선을 위해선 6만 대가량 필요할 것이란 추산이다. AWEB은 ‘기술적 지원’을 했다. 김용희 총장은 “기왕에 한국 기업의 것이 들어가면 사고 없이 작동해야 되지 않겠나 해서 CENI에 기술적 조언을 했다. 전기가 없다면 배터리를 쓰고, 승복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니 종이투표를 병행하라는 등등이었다”고 말했다.

이후 DR콩고 내 야당과 서방 국가들이 발칵 뒤집혔다. 기존 방식대로 해도 선거를 제대로 치를 수 있을지 걱정하던 판에 갑자기 ‘최첨단 투표 기계’를 들여온다고 해서다. DR콩고 주재 벨기에 대사관은 중앙SUNDAY의 관련 e메일 문의에 “여기 킨샤사(수도)에서 투표기가 논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전기 부족과 문맹률 우려에 더해 ▶선거 결과가 조작될 수 있으며 ▶CENI가 과거에 횡령한 전력이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CENI는 2011년에도 부정선거 논란에 휩싸였다.

이 같은 우려가 외교 통로를 통해 한국 정부에도 전달됐다. 카빌라 정권은 “배터리만 있으면 한국 정부 제품이 오히려 선거 관리에 간단하다. 올해 안에 선거를 치르려면 이 방법밖에 없다”고 주장하지만 우리 외교부도 손놓고 있기엔 부담이었다. 더욱이 정부와 무관치 않은 AWEB이 관련된 사안이었다. 지난해 말 김용희 사무총장이 직접 DR콩고에서 서방 외교관들과 만나 ‘난상토론’을 벌이도록 조치한 이유였다.

끝내 벨기에는 물론 미국·프랑스·캐나다 등 서방 외교관들의 카빌라 정권에 대한 불신을 극복할 순 없었다. 한국 외교부는 이에 따라 AWEB의 CENI와의 협력 관계를 끝내도록 조치했다. 김 총장이 “서방의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협력을 중단한다”는 서한을 보냈다.

이와 관련, 선거 전문가들 사이에선 “우리나라에서도 우려 때문에 전국 선거에서 사용하지 않는 전자투표 시스템을 독재 국가에 수출한 건 문제” “선거 관련 국제 기업들의 스크럼을 깨고 수출하려는 한국 기업을 도운 것”이란 주장이 맞서고 있다.

이런 가운데 2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도 AWEB에 대한 우려가 나왔다. 지난해 12월 엘살바도르의 인터넷 언론인 크로니오가 “한국이 AWEB을 통해 선거 부패를 아프리카·중남미 국가에 수출한다”는 보도가 계기였다. AWEB이 선거 자문 형식으로 M사의 수주를 돕고 있다는 취지다. 김대년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은 “관련 내부 감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용희 AWEB 사무총장은 “우리의 진출로 수입원이 없어진 국제 기업들의 비방”이라며 “가짜 뉴스”라고 반박했다.

고정애·임장혁 기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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