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현안엔 원리적 답변 일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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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노태우 대통령은 21일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의 국정운영 소신과 국민적 관심사인 현안에 대해 두루 언급하고 권위주의를 청산하고 민주화를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새로운 스타일의 회견방식을 통해 다시 한번 입증하려 애썼다.
대통령의 위치와 권위를 지나치게 높게 설정, 웬만한 물음은 권위의 손상으로 치부해버리거나, 약간이라도 답변이 거북한 것, 또는 정부·여당에 불리한 질문은 「사전조정」으로 원천봉쇄하고 일방적 홍보의 수단으로 대통령 기자회견을 「이용」해오던 종래의 방식과 비교할 때 진일보한 변화를 보였다.
특히 국민적 관심사를 추궁하는 언론과 대등한 위치에서 왕복의 대화를 하겠다는 뜻에서 단상의 책상 앞에 앉아 자기가 하고싶은 교시적 얘기들을 일방적으로 장시간 설명하고 「각본성」질문에 답하는 종래의 구도를 탈피한 것도 특이했다.
노 대통령은 또 국민이 궁금해하는 문제, 묻고자하는 현안을 피하지 않고 답변함으로써 적어도 대통령이 국민일반의 감각과 동떨어진 장막 속에 있지 않느냐는 우려를 줄였으며 아울러 앞으로 국민적 관심사가 있을 때마다 이렇게 자주 회견할 뜻을 밝혔다.
그러나 스타일면에서의 진일보에 대해 지나치게 의미 부여를 하는 것이 꼭 옳으냐는 데 대해서는 다른 견해가 있을 수 있다.
왜냐하면 회견내용이 얼마나 솔직·진지하고 국민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는가에 대해서는 평가가 많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대통령의 답변은 현장모면의 기지나 재치보다 두고두고 그 진의와 실천강도를 평가해야할 대목이 많기 때문에 취임 불과 두 달만에 나온 그의 회견을 스타일면에서만 평가한다는 것은 균형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회견내용을 자세히 들어보면 노 대통령 자신이 지금까지 여러 곳에서 얘기했던 것을 모자이크한 인상도 있으며 현실적인 면보다 이상 쪽의 수사를 군데군데 써 관심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현실적인 난관들을 너무 쉽게 보거나 간과했다는 지적을 받을 부분도 있다.
예컨대 지난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빚어졌던 폭력을 지나치게 일방적으로 해석, 국민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선에서 얘기했으며 당면한 총선의 난맥상에 대해서는 당선된 후에도 문제삼을 뜻을 비추는 정도로 그쳤다.
전반적으로 볼 때 노 대통령은 정국과 경제전망을 비교적 낙관하는 듯한 인상을 주였으며 자신이 민주화 실천을 착실히 하고 가당찮은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면 국내문제는 큰 어려움이 없다고 보는 것 같다.
그래서 노 대통령은 새마을 비리의 수사확대, 제5공화국과의 단결문제, 광주사태 등 국민이 다양한 시각을 갖고 지켜보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원론적인 답변으로 일관했고 대신 자신의 수범자세를 강조했다.
새마을사건과 관련, 전두환 전 대통령 내외와 친·인척에 대해서도 계속 수사할 것이냐는 질문엔 『부정·비리 척결에 성역이 있을 수 없다』고 했고, 5공화국에서의 대형 부정사건에 대한 재 수사 용의에는 『법에 의해 처리할 것이며 사법당국이 알아서 할 것』이라고만 했다.
또 광주사태의 재조사와 책임문제는 민화 위의 건의를 받아들이는 것이 국민적 합의사항이라는 자신의 광주연설을 원용해 거부의 뜻을 밝혔다.
항간에 화제가 되고 있는 민정당의 다수의석 확보에 의한 내각제 개헌기도 설에 대해서는『일부세력이 전략적으로 선거에 이용하기 위해 퍼뜨린 말이며 이 시점에서는 거론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만 밝혔다.
노 대통령은 엄정한 법의 감행과 질서의 확립을 통해 자신의 힘과 약속이행 능력을 보일 뜻을 밝혔는데 이 같은 대통령의 의지가 당장 불법타락 선거를 어떤 선에서 제동을 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노 대통령은 오히려 자신의 시대적 사명이 당장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현안의 원만한 해결보다 남북관계의 변화, 즉 임기 내 통일문제에 있어서의 전기 마련에 더 비중을 두고 있음을 비췄다.
노 대통령은 남북협력과 평화통일을 임기 중에 열어갈 것이라는데 강한 자신감을 보여 뭔가 구체적 복안이 있음을 시사했다.
이렇게 볼 때 이번 회견에는 노 대통령이 회심의 구상을 밝히는데 보다 총선을 앞두고 「좋은 말」과 좋은 이미지를 한번 더 강조함으로써 여당의 득표 전략에 긍정적 영향을 주었으면 하는 속셈도 상당히 담겨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정수행을 하는 대통령직과 집권당의 총재를 겸하고 있는 노 총재의 특수한 입장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전육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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