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터 낙마에 "어리석은 일" 들고 일어선 워싱턴 전문가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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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 주한 미국 대사에 내정됐다가 갑작스럽게 낙마한 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

차기 주한 미국 대사에 내정됐다가 갑작스럽게 낙마한 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

빅터 차 주한 미국 대사 내정자(전략국제문제연구소 한국석좌)의 낙마가 워싱턴에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한반도와 관련된 싱크탱크 관계자는 물론 정치인, 전직 관료들까지 일제히 "잘못된 결정"이라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평소 '대북 강경 제재파'로 분류됐던 빅터 차와 정책관이 달랐던 이들까지도 여기에 가세하고 나섰다.

싱크탱크, 전직 관료, 정치권 "전쟁 반대가 결격사유 되나" #"트럼프가 '한반도 전쟁 경로' 설정했음을 보여주는 것" 우려도

로버트 갈루치 전 미국 국무부 북핵 특사

로버트 갈루치 전 미국 국무부 북핵 특사

로버트 갈루치 전 국무부 북핵특사는 1일 본지에 "그를 20년 이상 알아오며 지성과 판단력, 북한 이슈에 대한 분석력을 항상 존경해왔다"며 "최근 한반도 관련 뉴스칸에는 '나쁜 뉴스'들만 가득 차 있다"며 트럼프 행정부의 조치를 비난했다.

한반도 전문가인 패트릭 크로닌 신안보센터 소장은 본지에 "그의 낙마는 한·미 관계에 있어 큰 차질을 몰고 올 것"이라며 "차 교수는 (주한 미국대사로 부임했으면) 굉장한 대사가 됐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조너선 크리스톨 세계정책연구소(WPI) 연구원은 '트럼프의 어리석은 결정'이란 제목의 CNN 기고문에서 "그의 낙마 이유가 '코피 전략'에 반대했다는 것이라고 하지만 난 다른 이유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TV나 한 페이지짜리 요약 메모를 통해 정보를 습득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차 석좌 수준의 복잡성이나 뉘앙스를 감당하지 못한다"고 꼬집었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연구원.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연구원.

차기 대사 후보군으로도 거론되는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본지에 "1994년 이래 한반도가 어느 때보다 군사충돌에 접근한 지금 1년 넘게 주한 대사가 공석으로 있는 건 불행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래리 닉시 한미연구소 연구원은 "낙마 이유가 '코피 전략' 때문이었다면 이는 한국과 미국 사이에 심각한 이슈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핵확산 방지단체인 플라우셰어펀드의 조 시린시오네 대표도 "이번 빅터의 낙마는 트럼프 대통령이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 침공이 상대적으로 소박하게 보일 정도의 '한반도 전쟁 경로'를 설정했음을 보여준다"며 "큰 재앙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민주당을 중심으로 미 정치권도 반발했다.
마지 히로노 상원의원(하와이)은 트위터를 통해 "백악관이 대북 선제공격에 대한 정당한 우려를 이유로 빅터 차 교수를 낙마시킨 건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또 긴장을 완화하려는 외교적 노력을 저해했다"고 비난했다.
이 밖에 "전쟁에 반대하는 것이 대사 결격 사유가 되는 시대를 맞이하고 말았다"(태미 덕워스· 민주 일리노이주)는 우려도 쏟아졌다.

한편 백악관 린지 월터스 부대변인은 31일(현지시간) "대사의 신원 조회 과정은 길고 철저하다"며 "(새로운) 후보가 정해질 때까지 서울에 오랜 경험이 있고 존경받는 대사대리(마크 내퍼)가 있다"며 당분간 대사대리 체제가 계속될 가능성을 내비쳤다.

워싱턴=김현기 특파원 luc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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