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합의 주역들 수상한 낙마, 이번엔 싱가포르 대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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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대사 귀임 이유 ‘갑질’? 위안부 합의 관련자 줄줄이 비운

 2015년 위안부 합의 당시 외교부 동북아국장으로 한·일 국장급 협의의 한국 측 수석대표를 맡았던 이상덕 주싱가포르 대사가 ‘갑질’ 의혹으로 외교부 감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1일 확인됐다. 이 대사는 지난달 29일 갑작스럽게 귀임했으며, 외교부는 “개인적 사유”라고만 설명했다.

[사진 연합뉴스]

[사진 연합뉴스]

 정부 소식통과 관계 부처 등에 따르면 지난해 말 총리실이 아시아 지역 일부 공관을 대상으로 실시한 암행감찰에서 이 대사의 언행 등을 문제 삼았다. 직원들을 함부로 대하고 남성 우월적인 발언을 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총리실은 판단했다고 한다. 외교부 감사관실에서는 이를 전달받아 이 대사에 대한 감사에 착수했다.

 하지만 감사 대상이라고 해도 이 대사에 대한 갑작스러운 본국 소환은 이례적이다. 그간 해외 공관 갑질 감사의 경우 통상 외교부 감사관실이 현지 조사 등을 통해 사실관계를 상당 부분 확정한 뒤 사실상 마지막 단계에서 당사자를 본국으로 불러들였기 때문이다. 이 대사의 경우 현지 조사 등 본격적인 외교부의 감사가 아직 진행되지 않았다.
 또 3~4월쯤 정기 공관장 인사가 있는데 이 대사만 먼저 불러들인 것도 석연치 않다. 정부 소식통은 “청와대가 사안을 심각하게 보고 있어 일단 소환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중앙일보는 이 대사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연락을 시도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이 대사의 조기 귀임을 비롯해 공교롭게도 위안부 합의에 관여했던 이들의 ‘인사 불운’이 이어지고 있다. 이 대사의 후임으로 동북아국장을 지내며 위안부 합의 후속조치를 맡았던 정병원 국립외교원 교수는 최근 공무원 품위유지 의무 위반으로 경징계를 받았다. 그가 “여성은 열등하다”고 발언했다는 언론 보도 때문이었는데, 외교부는 맥락상 정 교수의 발언이 성차별적 의도라고 보기 힘들다면서도 징계를 결정해 부내에서 반발이 일었다. 구명을 위한 청원서가 수십장 접수됐지만,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징계 의지가 강했다고 한다.

 위안부 합의 당시 주일대사관 공사로 이병기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야치 쇼타로(谷内正太郎) 일본 국가안전보장국 국장 간의 협의를 실무 지원했던 김옥채 주후쿠오카 총영사도 최근 교체가 확정됐다. 김 총영사는 국정원 출신으로 2016년 10월 부임해 1년 3개월 만에 물러나게 됐다. 통상 2~3년을 재직하는 공관장 임기에는 한참 모자라다.

 정부는 위안부 합의를 검증하면서도 당시 업무를 담당한 실무자들에게 책임을 묻는 일은 신중히 하기로 방침을 세웠다. 지난 정부에서 방침과 지시대로 일한 공무원들에게 책임을 지게 하면 공무원들이 업무에 소극적으로 임할 것을 우려해서다. 실제 위안부 합의 태스크포스(TF)에서도 실무 담당자와 같은 특정인의 책임 문제를 거론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례적 인사 조치가 이어지면서 우연으로만 보기는 힘든 것 아니냐는 뒷말이 무성하다. 외교 소식통은 “외교부는 아니라고 하지만, 현 정부의 위안부 합의에 대한 입장 등을 감안할 때 이 정도 되면 사실은 문책성 조치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박유미 기자 yumi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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