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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Talk] '김치 테러리스트'와 평창 검색대, 승부 결과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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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올림픽 메인프레스센터(MPC) 출입구에 설치된 보안 검색대. [연합뉴스]

평창올림픽 메인프레스센터(MPC) 출입구에 설치된 보안 검색대. [연합뉴스]

소소한 호기심이 발단이었습니다. 평창올림픽 메인프레스센터(MPC)에 김치를 가져다 먹을 수 있을까. MPC 카페테리아에서 컵라면을 먹다 문득 떠오른 궁금증이었습니다. 라면엔 역시나 김치죠.

정답은 미리 알고 있었습니다. 안 됩니다. MPC를 비롯해 모든 올림픽 시설은 사전승인을 거치지 않은 음식물의 경우 원칙적으로 반입 불가입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판매하는 음식(네, 가성비 떨어지기로 악명 높은 그 음식이요^^)이 따로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단지 그 이유만은 아닙니다. 해당 음식 특유의 냄새가 다른 문화권에서 온 취재진에게 거부감을 일으킬 수 있고, 경우에 따라 위생상 문제도 발생할 수 있어서입니다. 4년 전 소치올림픽 당시 현장취재를 다녀온 본지 기자가 반찬통에 김치와 멸치볶음을 담아 MPC에 들어가려다 검색대를 지키던 러시아 군인들에게 시쳇말로 ‘영혼까지 탈탈 털린’ 무용담도 확인했습니다.

도종환 문체부 장관이 지난달 31일 평창 MPC 보안 검색대 관계자들을 격려하고 있다. 송지훈 기자

도종환 문체부 장관이 지난달 31일 평창 MPC 보안 검색대 관계자들을 격려하고 있다. 송지훈 기자

 그래도 직접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평창올림픽의 보안 시스템은 과연 ‘김치남의 음모’를 적발해낼 수 있을까요. 편의점에서 손바닥만 한 김치팩 하나와 즉석밥 두 개를 샀습니다. 그리고 백팩에 담아 MPC 출입구 앞 검색대로 향했습니다. 평소보다 보안 인력이 많고 분위기가 더욱 살벌하다고 느낀 건 오로지 기분 탓이었겠죠. 김치가 담긴 백팩이 제 손을 떠나 엑스레이(X-ray) 투시기 안쪽으로 천천히 들어갔습니다.

평창 보안검색대 통과에 도전한 김치와 즉석밥 삼종세트. 송지훈 기자

평창 보안검색대 통과에 도전한 김치와 즉석밥 삼종세트. 송지훈 기자

 결과는 성공이었습니다. 가방이 무사히 돌아왔으니까요. 하지만 실패였습니다. 책임자로 보이는 보안요원이 한쪽 구석으로 부르더니 “즉석밥은 문제 삼지 않겠다. 다만 김치는 곤란하다”며 “이번 한 번은 눈감아 줄 테니 가급적 식당에 외국인이 없을 때 드시면 좋겠다”고 말했거든요. 가방을 열어보지 않고도 내용물을 다 파악하고 있었던 거죠.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무안했지만, 한편으론 마음이 놓였습니다. 저는 김치를 예로 들었지만, 누군가가 나쁜 의도를 품고 올림픽 관련 시설에 위험한 물건을 반입하려 할 때 검색 시스템이 걸러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평창올림픽 MPC에서 보안검색요원들이 출입자들을 대상으로 검색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평창올림픽 MPC에서 보안검색요원들이 출입자들을 대상으로 검색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평창올림픽 기간 중 주요 시설 안팎에 운영되는 보안 검색대는 보행자용과 차량용을 합쳐 100여 곳에 이릅니다. 전문보안업체 관계자와 자원봉사자를 비롯한 민간 검색 요원 2400명이 주축이고, 경찰 및 군 병력 500명가량이 가세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합니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테러 방지 훈련 및 시설 점검 작업도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고 하네요. 이들이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소화한다면 평창올림픽의 주요 목표 중 하나인 ‘안전올림픽’이 실현되겠죠.

지난해 12월 평창올림픽 개폐회식장에서 열린 대테러종합훈련 도중 대테러요원이 인질극을 벌이는 테러범을 제압하고 있다..오종택 기자

지난해 12월 평창올림픽 개폐회식장에서 열린 대테러종합훈련 도중 대테러요원이 인질극을 벌이는 테러범을 제압하고 있다..오종택 기자

그나저나 적어도 MPC에서는 적당히 잘 익은 김치를 곁들여 컵라면을 먹긴 어려울 것 같네요.

평창=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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