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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빠진 한국 스마트시티 … 스마트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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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29일 발표한 한국형 스마트도시 계획안 중 일부. [자료 4차산업혁명위원회]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29일 발표한 한국형 스마트도시 계획안 중 일부. [자료 4차산업혁명위원회]

문재인 정부가 정보통신기술(ICT)·사물인터넷(IoT) 등 첨단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스마트시티 사업에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었다. 그러나 이날 정부가 발표한 스마트시티 방안은 추진 기간이 짧고 현실성이 떨어져 정부의 ‘보여주기식’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4차위)는 29일 “5년 내 세계 최고 수준의 스마트시티를 조성하겠다”며 “스마트시티 국가 시범도시로 세종시 연동면 일대와 부산시 강서구 세물머리 지역에 조성 중인 에코델타시티 두 곳을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부산·세종시 2곳 시범도시 선정 #정부가 사실상 사업 주체로 나서 #민관 협력 중시하는 미국과 대조 #민간 자본 끌어들일 전략 없어 #“보여주기식 행정 우려” 지적

세종시 연동면 일대에는 에너지관리시스템(EMS)이 구축되고 전력 중개 판매 서비스가 도입된다. 부산시 강서구 에코델타시티에는 드론 운항 구역과 통합 재해관리시스템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이날 발표한 스마트시티 전략은 4차위가 지난해 11월부터 김갑성(4차위 산하 스마트시티 특별위원회 위원장) 연세대 교수를 중심으로 국토교통부·기획재정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6개 유관 부처가 모여 약 석 달 만에 구상해 낸 방안이다. 정부는 하반기에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을 받아 스마트시티 후보지를 추가로 선정한다.

스마트시티

스마트시티

장병규 4차위 위원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민관이 협력하는 스마트시티를 만들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정부 발표안은 “전형적인 ‘톱다운’ 방식의 정부 추진형 도시 발전 계획”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민관 협력 스마트시티’라는 콘셉트를 전면에 내세웠지만 모든 주요 스마트시티 사업의 추진 주체는 정부 부처들이다. 정부가 당초 스마트시티를 설치하기 위해 후보지로 검토한 39곳이 모두 정부 소유의 공기업 사업지다. 손병석 국토부 제1차관은 “국민이 스마트시티 성과를 이른 시일 내에 체감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기업·대학교 등 민간 투자를 활성화하겠다”고 했지만 기업 자본을 끌어들일 전략과 예산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

장 위원장은 “부산·세종시 두 곳이 선정됐다는 얘기를 나도 어제 저녁에 통보받았다”고 말했다. 정부 부처들이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기 위해 급하게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미국 정부는 처음부터 스마트시티 선정을 앞두고 원하는 도시 78곳을 경쟁에 부쳤다. 2015년 각 도시들은 기업·대학교와 협력하면서 도시별 사회문제·특징과 연계한 현실성 있는 발전안을 미 교통부에 제출해 심사를 받았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의 스마트시티 관련 과제와 목표, 실행방안. [미국 교통부]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의 스마트시티 관련 과제와 목표, 실행방안. [미국 교통부]

샌프란시스코는 ‘카셰어링 등 공유경제 기반 서비스로 시민들의 교통 접근성을 높인 도시’를, 디트로이트는 ‘미시간주 내에 있는 자동차 기업들과 협력해 생계형·서비스형 등 교통 이용 패턴을 세분화하겠다’는 방안을 냈다. 18개월간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선정된 8곳의 도시는 지난해부터 정부 지원을 받아 스마트시티 구축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에 비해 올해 안에 스마트시티 계획을 모두 수립하고 내년부터 부지 조성에 들어가 2021년 말에 입주할 예정이라는 우리 정부의 계획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정부가 스마트시티에 도입한다고 약속한 ▶자율주행 대중교통 ▶혁신창업 구역 ▶제로에너지 특화단지 등은 전 세계 정부·기업들이 기술을 확보하고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여전히 난항을 겪고 있는 난제들이다. 한국형 스마트시티의 특징으로 문재인 정부의 캐치프레이즈인 ▶사람 중심 ▶혁신성장 동력 ▶지속가능성을 그대로 옮겨놨을 뿐 한국 실정을 고려한 발전 방안은 없다는 비판도 나온다.

스마트시티 연구를 전문으로 하는 이정훈 연세대 정보대학원 교수는 “스마트시티를 기술 기반의 도시 개발로만 이해하기보다는 전반적인 산업 생태계를 혁신하는 데 방점을 찍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에서는 2015년부터 백악관·교통부·국가과학기술위원회(NITRD) 등 국가 기관들이 스마트시티로 전환하기 위해 들어가는 예산과 발전 방향에 대한 연구가 수년째 진행 중이다. 스티븐 골드스미스 하버드 케네디스쿨 교수는 이달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2018 소비자가전전시회(CES)에서 “스마트시티는 거버넌스(협치)와 기술 이슈가 복잡하게 얽힌 어려운 과제”라며 “미시간주처럼 민간기업·대학·주정부가 힘을 합쳐 연방정부와 긴밀하게 의사소통을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정훈 교수는 “기업과 시민들이 어떻게 참여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하선영·김태윤 기자 dynami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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