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가있는이야기마을] 부적절한 만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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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토요일, 보충수업을 땡땡이 치고 친구와 함께 극장에 갔다. 동시상영을 하던 다른 한 편이 미성년자 관람불가인 게 꺼림칙했지만 우리는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는 후미진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탑건'이 끝난 뒤 팝콘 한 봉지씩 사들고 들어오니 막 다른 한 편의 영화가 시작되고 있었다. 고등학생이 보기엔 야하다 싶은 성인 영화였는데 야한 장면이 나올 때마다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영화를 봤다.

이윽고 영화가 모두 끝나고 화장실에 갔다. 그런데 여자화장실 앞에 어떤 남자가 서성대고 있었다.

'여자 화장실 앞에서 웬 청승이람?' 그 남자의 얼굴을 무심코 쳐다본 친구와 나는 순간 놀라 뒤로 넘어질 뻔했다. 바로 우리 학교 학생과 선생님이 아닌가. 더구나 무섭기로 악명 높은 체육 선생님. 상황 수습을 못하고 허둥대는데 그만 선생님과 시선이 딱 마주치고 말았다.

'이제 죽었구나'라고 생각하는데 여자화장실에서 한 여성이 나오더니….

"자기야, 오래 기다렸지?"

우리는 또 한 번 놀라고 말았다. 그녀 역시 우리 학교 영어 선생님이 아닌가. 선생님은 우리보다 더 놀라고 당황하신 듯 제대로 말씀을 잇지 못했다. 우리들의 인사에 "어머, 너희. 여긴 어쩐 일이니" 하며 말을 더듬는데 체육 선생님이 끼어들었다.

"아니? 영어 선생님께서 여긴 웬일이십니까? 저는 학생단속차…."

순간 영어 선생님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몹시 불쾌하고 실망스럽다는 표정이었다. 영어 선생님은 몹시 화를 내며 밖으로 나갔고 눈치를 보던 체육 선생님도 황급히 뒤를 따랐다.

며칠 뒤 영어 선생님의 결혼 발표가 있었고 뜻밖의 소식에 우리 둘을 제외한 전교생 모두 놀랐다. 물론 상대는 체육 선생님이었다. 사실이 들통날까 허둥대던 체육 선생님과 달리 당당하게 교제 사실을 밝히며 결혼을 선언한 영어 선생님이 어찌나 멋져 보이던지….

강정미(36.주부.인천시 가정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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