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자의 V토크] ⑫기업은행의 리베로 듀오 노란-최수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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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K기업은행 리베로 최수빈(왼쪽)과 노란은 입단 동기다. 화성=김효경 기자

IBK기업은행 리베로 최수빈(왼쪽)과 노란은 입단 동기다. 화성=김효경 기자

여자배구 IBK기업은행에서 가장 많이 코트 안과 밖을 드나드는 선수는 누구일까. 정답은 리베로 노란(24)과 최수빈(24)이다. 노란은 디그(스파이크를 받아내는 것) 전담이라 기업은행 서브일 때 투입되고, 최수빈은 리시브에 집중해 상대 서브일 때 들어가기 때문이다. 서브권이 바뀔 때마다 두 선수가 교체된다. 어찌보면 경쟁자이지만 팀 승리를 위해 뭉친 두 사람이 최수빈과 노란이다.

리베로(libero)는 이탈리아어로 '자유인'이다. 수비 전문 포지션에 리베로란 이름이 붙은 건 말 그대로 교체를 자유롭게 할 수 있어서다. 다른 포지션의 6명은 세트당 1번 선발 선수가 나갔다가 교체된 선수와 다시 자리를 바꾸는 것(최대 12회)만 가능하다. 그러나 리베로는 어느 선수와도 교체할 수 있고 횟수 제한도 받지 않는다. 노란과 최수빈은 한 경기에서 손바닥을 수십 번 마주치며 자리를 바꾼다.

최수빈은 IBK 이적 후 리베로로 뛰고 있다. [사진 한국배구연맹]

최수빈은 IBK 이적 후 리베로로 뛰고 있다. [사진 한국배구연맹]

공교롭게도 둘은 프로 입단 동기다. 김연경을 배출한 배구명문 한일전산여고(현 수원전산여고) 출신 노란은 3라운드 3순위(전체 13번)로 IBK기업은행에 입단했다. 일신여상 레프트 최수빈은 같은 해 1라운드(전체 6번)에서 KGC인삼공사에 지명됐다. 지난달 26일 3:2 트레이드로 기업은행으로 이적한 최수빈을 챙기는 역할도 동기생인 노란이 돕고 있다. 노란은 "생활적으로나 멘탈적으로나 수빈이를 챙기려 노력한다. 수빈이가 리베로 포지션을 전문적으로 하는 건 처음이기 때문에 힘들 것이다. 윈윈(win-win)하자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최수빈도 "둘 다 도움받고 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노란은 "우리 팀은 매년 선수들이 많이 바뀌는 편이다. 원래 있던 선수들이 도와주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수비 전문 선수 리베로는 다른 선수들과 다른 유니폼을 입는다. 1월 27일 화성에서 열린 흥국생명전에서 빨간색 유니폼을 입은 노란과 파란색 유니폼을 입은 최수빈. [사진 한국배구연맹]

수비 전문 선수 리베로는 다른 선수들과 다른 유니폼을 입는다. 1월 27일 화성에서 열린 흥국생명전에서 빨간색 유니폼을 입은 노란과 파란색 유니폼을 입은 최수빈. [사진 한국배구연맹]

하지만 운명의 장난처럼 둘은 출전시간을 나누는 관계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이정철 IBK기업은행 감독이 발목 부상 여파가 있는 최수빈을 리베로로 기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감독은 "란이가 수비를 잘 해주고 있어 안정감이 있다. 리시브 쪽만 좋아지면 안정된 경기력이 나올 것이다. 사실 수빈이가 정통 리베로가 아니기 때문에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한다. 현재로선 둘이 나가는 게 베스트"라고 설명했다. 프로선수인 만큼 노란과 최수빈도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노란은 "아쉬운 점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팀이 중요한 순간이니까 서로 장점을 더 발휘하는 쪽이 낫다고 본다"고 했다. 최수빈도 "내가 할 말이다. 나쁘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서브 리시브를 하고 있는 노란. [사진 한국배구연맹]

서브 리시브를 하고 있는 노란. [사진 한국배구연맹]

노란은 5년 동안 '기다림'의 시간을 보냈다. 노란이 입단한 2012-13시즌 IBK기업은행은 국가대표 리베로 남지연을 영입했다. 자연히 노란은 5시즌 동안 백업 역할을 했다. 원포인트서버와 제2리베로를 번갈아 맡았다. 올시즌 초반에도 김혜선과 채선아가 먼저 기회를 잡았다. 노란은 "사실 힘들 때도 많았다. 경기에 못 나갈 때가 제일 힘들었다. 그래도 '보고 배우면서 기다리자'는 생각이었다"고 웃었다. 남지연이 올시즌을 앞두고 김수지의 FA 보상선수로 흥국생명에 가면서 기회의 문이 열렸다.

최수빈도 크게 다르지 않다. 15-16시즌까진 백목화-이연주의 백업으로 가끔 코트를 밟는 정도였다. 비교적 단신(1m75㎝)인 까닭에 많은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러나 지난해 두 선수가 인삼공사를 떠나면서 주전으로 우뚝 섰다. 하지만 올시즌 발목 부상 여파와 한송이 영입으로 인해 입지가 좁아졌다. 그러나 트레이드로 다시 한 번 기회를 얻었다. 최수빈은 "트레이드 얘기를 들었을 때 '리베로가 되겠구나'란 생각을 했다. 감독님도 '할 수 있다'고 격려해준다. 시즌 중에 포지션을 바꿔 어려운 점도 있지만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수빈은 KGC인삼공사 시절엔 레프트로 뛰어 공격에 참여했다. [사진 한국배구연맹]

최수빈은 KGC인삼공사 시절엔 레프트로 뛰어 공격에 참여했다. [사진 한국배구연맹]

IBK기업은행은 2라운드까지 5승5패에 그쳤다. 하지만 3라운드 4승1패, 4라운드 4승1패를 거두며 상승세를 타고 있다. 5라운드 첫 경기에서도 흥국생명을 상대로 3-0 완승을 거둬 승점 3점 차까지 추격했다. 최수빈에겐 낯선 상황이다. 인삼공사 시절엔 꼴찌만 세 번 했고, 챔프전은 한 번도 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수빈은 "IBK기업은행에 합류한 뒤 개개인 실력이 좋아 놀랐다. 계속 이기는 게 너무 좋다. 상위권 팀이라 무조건 승리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분명 있지만 행복하다"고 했다.

2016-17시즌 우승을 차지한 IBK기업은행. [사진 한국배구연맹]

2016-17시즌 우승을 차지한 IBK기업은행. [사진 한국배구연맹]

최수빈과 달리 노란은 6시즌을 IBK기업은행에서만 뛰었다. 매년 챔프전에 나서 3회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창단 멤버인 김희진 다음으로 팀에서 오래 뛰어 우승경쟁은 익숙하다. 그럼에도 큰 경기에 대한 부담은 어쩔 수 없다. 노란은 "이겨야 할 팀은 이겨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다. 압박감을 얼마나 떨쳐내는지가 중요하다"며 "기업은행은 선배든 후배든 모두 자기 목소리를 내면서 함께 간다. 그래서 좋은 성적이 나는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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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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