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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세금 아끼려다 혁신 멈춘 애플, 그 뒤에 누가 있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2면

메이커스 앤드 테이커스

메이커스 앤드 테이커스

메이커스 앤드 테이커스
라나 포루하 지음
이유영 옮김, 부키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고리대금업을 하는 샤일록은 금융업자, 무역상인 안토니오는 실물경제 사업가로 볼 수 있다. 이를 다시 미국 경제에 대입하면 샤일록은 세계 금융의 심장인 월가를, 안토니오는 제조업자가 모인 메인가라고 할 만하다.

월가와 메인가의 갈등은 뿌리 깊은데, 동시에 상호의존적이다. 한쪽 없이는 나머지 한쪽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신간은 월가의 금융업자야말로 샤일록의 후예라는 시각에서 쓰인 책이다. ‘메이커스(makers)’, 만드는 자는 메인가, ‘테이커스(takers)’, 가져가는 자는 월가를 뜻한다. 메인가가 경제를 성장시키는 반면 월가는 과실을 거저 따먹는 자라고 비판했다.

애플을 대표적인 사례로 들었다. 애플은 100조원 넘는 현금을 조세회피처를 포함해 전 세계에 분산 보관한다. 세금을 아끼기 위해서다. 이 돈을 미국으로 가져가려면 상당한 세금을 내야 한다. 월가의 금융 전문가들은 애플의 절세를 돕는 대가로 막대한 보수를 챙긴다. 애플의 혁신이 멈춘 것은 기술 개발보다 절세에 집중했기 때문이라는 게 저자의 지적이다.

주주 자본주의도 문제 삼는다. 과거 기업이 돈을 벌면 주주·경영진은 물론 직원과 거래업체까지 골고루 혜택을 봤다. 직원들의 두둑해진 급여 봉투는 지역경제의 활기로 이어졌다. 하지만 주주 자본주의가 득세하면서 생산보다 주가 상승이 기업의 지상과제가 됐다는 게 저자의 지적이다. 기업은 설비투자나 연구개발보다 자사주 매입 등을 통해 주주들의 배를 불리는 데 몰두한다. 기업의 주주가 대부분 월가의 금융회사여서다. 이들의 관심은 오직 주가 상승, 장기적인 안목의 기업 투자는 뒷전이다. 저자는 “미국의 기업은 이제 더 이상 기업이 아니라 금융으로 탈바꿈하고 말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여기에서 멈췄으면 좋았을 것이다. 금융업 전체를 샤일록 같은 악당으로 매도하지만, 그게 양극화 등 문제의 해법이 될 수는 없다.

주정완 기자 jw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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