낱말 뜻에 따른 용례 거의 없다|「출판 저널」, 학계의 비판 분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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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국어 사전에 낱말의 뜻에 따른 용례가 거의 없다는 것이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예문이 없는 사전은 단어장에 지나지 않고 결국은 문장 속에서 어휘를 부정확하게 사용하는 주된 원인이 된다.
수업은 「받고」 강의는 「듣는」 것이지만 흔히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는다」고 쓰는게 사전에 예문이 없어 저지르는 단적인 잘못의 예.
영국의 옥스퍼드 사전을 「사전 중의 사전」으로 일컫는 이유는 바로 철저한 용례주의 때문이다. 옥스퍼드 사전에는 우리말 「김치」의 용례가 시대별로 7가지나 나와 있지만 정작 국어 사전에는 「김치」란 낱말이 언제부터 어떻게 쓰여왔는지 전혀 언급이 없다.
이같은 비판은 내년 3월부터 시행되는 새 「한글 맞춤법」과 「표준어 규정」에 맞춰 현행 국어 사전의 개편이 불가피해짐에 따라 학계·문단 등에서 더욱 커지고 있다.
출판 전문 정보지 「출판 저널」 17호 (10일자)는 이 문제를 특집으로 꾸몄다.
고려대 김인환 교수 (국문학)는 『사전의 낱말 풀이는 통시적 측면에서 다뤄져야 한다』며 『예컨대 「사랑」이란 낱말을 풀이한다면 몇 세기·무슨 문헌의 어떤 문장 안에 처음 나타나서 그 다음 세기엔 의미나 형태가 어떻게 바뀌어 현재에 이르렀는가를 하나하나 예문과 함께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강대 유재천 교수 (신문 방송학)는 『글을 쓸 때마다 정확한 어휘 구사를 위해 늘 사전을 벗하지만 용례가 제대로 없어 활용도가 아무래도 떨어진다』고 했다.
또 연세대 윤석범 교수 (경제학)는 『옥편·영어 사전 등에는 비교적 자세한 어원·용례 등의 설명이 있으나 국어 사전은 그렇지 못해 화가 치밀 정도』라며 『우리말에 많은 외래어가 끼어 드는 이유도 용례의 부실 때문인 것 같다』고 지적했다.
소설가 김주영씨는 『국어사전이 우리말의 논리적 해설에는 상당한 발전이 있어 왔지만 우리 고유의 토속어·생활어 등의 발굴·정리엔 상대적으로 미흡해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또 『어떤 현상에 딱 들어맞는 합당한 우리말을 낱낱이 수록, 이를 풍부한 예문과 함께 실음으로써 맛깔스런 우리말 발전에 사전이 주역을 맡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동 문학가 이오덕씨도 『지금 중국 만주 지방의 동포들이 쓴 문학 작품들, 소설 「임꺽정」, 그밖의 고전들을 두루 살펴서 진짜 살아있는 우리말이 쓰인 책의 사용 문장과 함께 사전에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대 이병근 교수는 간혹 용례가 있다 하더라도 뜻풀이에 걸맞지 않은 경우가 있어 역시 문제라고 밝혔다.
어떤 사전의 「금방」이란 낱말의 풀이를 보면 ▲금방=이제 방금, 바로 이제, 지금 막 등으로 돼있고 「피사의 사탑은 금방 넘어질 것만 같다」라는 예문이었다.
이를 뜻풀이에 나온 말로 바꾸면 「피사의 사탑은 이제 방금 넘어질 것만 같다」, 「피사의 사탑은 바로 이제 넘어질 것만 같다」 「피사의 사탑은 지금 막 넘어질 것만 같다」와 같이 어색한 표현이 된다고 지적했다. 즉 비슷한 뜻의 정의와 용례 사이에 불일치를 보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교수는 사전 자체에 대한 이론과 편찬의 실제적인 방법을 연구하는 사전학의 정립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이헌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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