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표절·대필 뿌리뽑는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1면

서울대 정운찬 총장은 15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학계가 깊이 자성해야 한다"며 "이르면 7월 부정행위 고발창구를 만들고 내부고발자가 불이익을 받지 않게 하겠다"고 밝혔다. 정 총장은 "'연구윤리' 강의를 대학원의 필수과목으로 개설하겠다"고 덧붙였다. 서울대는 연구 부정행위를 제보했다는 이유로 지도교수 등 상급자가 보복할 경우 이를 가중처벌하는 조항도 둬 제보자의 신분을 보장하기로 했다.

고려대는 표절을 확인할 수 있는 '리포트 표절 검사 프로그램'을 이번 학기부터 적용, 젊은 세대의 연구 부정을 뿌리뽑기로 했다. 과학기술부 측은 "생명공학연구원.한국과학기술원.전자통신연구원.표준과학연구원이 서울대가 세우려는 '연구진실성위원회'와 비슷한 기구의 설치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본지의 관련 기사는 삽시간에 학계 커뮤니티에 전해졌다. 석.박사 학위자의 60%가 회원으로 가입해 있다는 인터넷서비스 '브레인넷' 관계자는 "중요한 기사라고 판단해 국내외 회원들에게 e-메일을 보내 읽도록 했다"며 "15일 오후 현재 7000여 명의 석.박사가 기사를 봤다"고 말했다.

아주대 독고윤(경영학) 교수는 "표절을 문제삼으면 '교수화합을 왜 깨려 하느냐'고 하지만 그것은 화합이 아니라 야합"이라며 "전 국민에게 표절이 얼마나 나쁜 행위인지 알리는 캠페인을 벌일 생각도 있다"고 밝혔다. 연세대 남형두(법학) 교수는 "비록 늦었지만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이므로 윤리운동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다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대 이정민(언어학) 교수는 "이번 기회에 학계나 학교에서 엄정하게 벌 받을 건 받도록 하는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익명을 요구한 대학원생 오모씨는 "교수가 요구한 논문 대필을 거부했다가 논문 심사에서 여러 번 떨어졌다"며 "중앙일보 기사를 읽고 나만이 이런 불이익을 당한 게 아님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국책연구원의 한 연구위원이 "K학회 부회장이 작성한 2000년 보고서 내용이 1998년 연구보고서와 30쪽 분량이나 똑같다"고 제보해 오는 등 취재팀에 연구 부정을 입증할 정보.자료를 제공한 교수.연구원도 많았다.

교수.연구원뿐 아니라 학술진흥재단 등 연구지원기관이 주도적으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상주대 이광호(자동차공학)교수는 "지원기관이 저자 수와 논문저널의 영향력 지수를 고려해 점수를 산정한다면 무임승차한 논문으로 연구과제를 따내는 일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허귀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