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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한국산 세탁기에 관세 폭탄 … 정부 “WTO 제소할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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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미국의 국산 세탁기와 태양광 제품에 대한 ‘세이프가드 ’ 발동에 대한 민관 합동 대책회의가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한국무역보험공사에서 열렸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왼쪽 셋째)은 이날 모두발언을 통해 ’규범을 위반할 여지가 명백하다“며 유감을 표하고 ’WTO에 제소하겠다“고 밝혔다. [최승식 기자]

미국의 국산 세탁기와 태양광 제품에 대한 ‘세이프가드 ’ 발동에 대한 민관 합동 대책회의가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한국무역보험공사에서 열렸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왼쪽 셋째)은 이날 모두발언을 통해 ’규범을 위반할 여지가 명백하다“며 유감을 표하고 ’WTO에 제소하겠다“고 밝혔다. [최승식 기자]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무역전쟁’의 활시위를 당겼다. 취임 첫해 ‘미국 우선주의’를 내걸며 보호주의 엄포를 놓았던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2년 차에 들어서자마자 실질적인 첫 제재를 시행했다. 세탁기 등 한국산 제품도 타깃이 돼 ‘관세 폭탄’을 맞게 됐다.

세탁기·태양광 세이프가드 발동 #김현종 “피해국과 공동 대응 협의” #미, 철강·반도체도 규제 조여와 #트럼프 무역전쟁 엄포가 현실로 #삼성·LG, 미 수출 세탁기 연 1조원 #“값 20% 올라 미국 소비자 피해”

미국무역대표부(USTR)는 22일(현지시간) 수입산 세탁기와 태양광 제품에 대해 세이프가드(긴급 수입제한조치)를 발동한다고 발표했다. 한국산 제품도 이번 조치에 포함됐다.

미국은 3년간 가정용 세탁기에 저율관세할당(TRQ) 기준을 적용한다. 매년 120만 대까지는 상대적으로 낮은 관세(1년 차 20%, 2년 차 18%, 3년 차 16%)를 물리지만 이를 초과하는 물량에는 두 배가 넘는 관세(1년 차 50%, 2년 차 45%, 3년 차 40%)를 부과한다. 세탁기 부품에도 별도 TRQ가 적용된다.

태양광 셀은 연 2.5GW(기가와트) 이하는 무관세지만 이를 초과하면 ▶1년 차 30% ▶2년 차 25% ▶3년 차 20% ▶4년 차 15% 관세를 물린다. 태양광 모듈은 전체 수입 물량에 대해 연도별로 태양광 셀과 같은 관세율을 적용한다.

관세 폭탄

관세 폭탄

미국이 세이프가드를 발동한 건 2002년 한국산 등의 철강에 최대 30%의 관세를 부과한 이후 16년 만이다. 한국산 세탁기 등에 대한 이번 조치는 예견된 일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7일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한때 좋은 일자리를 창출했던 우리 산업을 파괴하며 세탁기를 미국에 덤핑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미국의 보호무역 공세가 심화할 거라는 점이다. 미국을 상대로 가장 많은 무역수지 흑자를 낸 중국이 주 타깃이 될 전망이지만 대미 흑자 폭이 큰 한국도 피해 가긴 어렵다.

실제 미국은 지난 11일 철강 수입에 관한 무역확장법 232조 보고서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출했다. 중국을 겨냥했지만 한국산 철강 역시 규제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 또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미국에 반도체 저장장치인 SSD(솔리드 스테이트 드라이브)를 수출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관세법 위반 여부를 조사하기로 했는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대상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과 연계해 무역장벽을 쌓을 거라는 우려도 있다. 심상렬 광운대 국제통상학부 교수는 “이번 세이프가드는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무역 정책이 한국의 수출에 직접적으로 악영향을 끼친 사례”라며 “미국은 보호무역 조치를 통해 한·미 FTA 개정 협상 과정에서 우위에 서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세계무역기구(WTO) 제소와 보복관세 부과 등으로 대응하기로 했다. 김현종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23일 민관 합동 긴급 대책회의를 주재하며 “이번 조치는 WTO 규정에 위반될 소지가 명백하다”며 “미국을 WTO에 제소하겠다”고 말했다. 김 본부장은 또 “다른 세이프가드 조치 대상국과 공동 대응하는 방안을 적극 협의할 계획”이라며 “동시에 미국에 양자 협의를 즉시 요청하고 적절한 협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미국 제품에 대한) 양허 정지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양허 정지를 한다는 건 한국이 미국산 제품에 부여하는 무관세 및 관세 인하 혜택을 철회하고 보복관세를 매기겠다는 의미다.

중국도 이번 조치에 반발하고 있다. 왕허쥔(王賀軍) 상무부 무역구제조사국장은 이날 성명을 내고 “이번 세이프가드는 무역구제 조치를 남용한 것으로 중국은 강력한 불만을 표시한다”고 밝혔다.

미국의 세이프가드로 직격탄을 맞은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세탁기 가격이 20%정도 오르게 돼 최종 피해는 결국 미국 소비자가 보게 될 것”이라며 유감의 뜻을 밝혔다. 양사가 미국에 수출하는 세탁기는 연 200만 대 이상으로 금액 기준으로 10억 달러(약 1조700억원) 규모다.

정인교 인하대 대외부총장은 “상대적 약자인 한국으로선 WTO와 같은 다자 체제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며 “미국의 보호무역 정책으로 피해를 보는 다른 국가와의 공조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 부총장은 “앞으로 철강·반도체 등의 기업들도 피해를 볼 수 있는 만큼 민관이 협력해 대응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뉴욕=심재우 특파원, 하남현·최현주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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