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아메리카 퍼스트’ 본색 확실히 드러낸 트럼프…한국산 세탁기 ‘관세폭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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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삼성ㆍLG 등 외국산 세탁기와 태양광 패널에 대해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를 발동키로 한 것은 ‘아메리카 퍼스트’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1년만에 본격적으로 보호무역을 앞세운 ‘무역전쟁’을 선포한 셈이다.

미 무역대표부 세이프가드 발동 #ITC 권고안보다 더 센 관세폭탄 #다음 타깃은 중국, 무역전쟁 선포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22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수입 세탁기와 태양광 제품에 대해 세이프가드를 발동키로 최종결정했다고 밝혔다. 세이프가드가 실제 발효하기까지는 통상 2주 정도 걸린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  [연합뉴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 [연합뉴스]

미 국제무역위원회(ITC)가 백악관에 올린 세탁기 관세부과 권고안과 비교할 때 별다른 차이가 없어보이지만 실제로는 가장 강력한 무역보복 조치로 둔갑했다.

삼성과 LG전자를 비롯한 수입산 가정용 세탁기에 대해 TRQ(저율관세할당) 기준을 120만대로 설정하고, 첫해에는 120만대 이하 물량에 대해선 20%, 이를 초과하는 물량에는 50%의 관세를 부과하도록 했다. ITC 권고안에는 120만대 이하 물량에 대해 무관세 안이 포함돼 있었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20% 관세안을 빼 든 것이다.

다음 해인 2년차의 경우 120만대 이하 물량에는 18%, 초과물량에는 45%를 부과한다는 점에서 보다 강력한 권고안과 차이가 없다. 그러나 3년차에는 120만대 초과 물량에 대해 40%의 관세를 매기고, 120만대 미만 물량에 대해선 권고안의 15%에서 16%로 1%포인트 올렸다.

미국 전자매장에 전시된 세탁기들. [중앙포토]

미국 전자매장에 전시된 세탁기들. [중앙포토]

 특히 ITC 권고안에 있던 ‘메인드인 코리아 제품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세이프가드 조치에서 배제한다는 문구가 사라졌다. 결국 한·미 FTA를 무시한채 한국산 완제품이건 부품에 대해 모두 '관세폭탄'을 매기겠다는 심산이다. 국제무역기구(WTO)에 제소를 해도 어느 정도 승산이 예상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창원공장에서 수출용 세탁기를 만드는 LG전자에게 타격이 큰 편이다.

삼성과 LG전자는 연간 300만대의 세탁기를 미국에 수출하고 있다. 관세폭탄을 맞게 된 120만대는 양사를 합쳐 3분의1을 넘는 만큼 가격경쟁력을 잃을 수 밖에 없다.

이같은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삼성은 현재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서 공장가동에 들어갔고, LG는 테네시주에서 공장 건립중이다. 그러나 한국산 부품을 조달한다 해도 첫해 5만개 이상에 대해서는 50%의 관세를 부과하기 때문에 품질을 인정받은 납품업체와의 동반 미국진출이 시급한 상황이다.

삼성과 LG전자는 현지공장 운영에 필요한 부품 조달에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로 부품은 세이프가드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 또한 거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7일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예전보다 강경한 어조로 한국제품을 공격해 이같은 보복조치를 예고했다. 그는 당시 “한국이 한때 좋은 일자리를 창출했던 우리 산업을 파괴하며 세탁기를 미국에 덤핑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서부지역 최대의 전자제품 전문 유통업체 프라이스에 전시된 LG 세탁기 [LG전자 제공]

미국 서부지역 최대의 전자제품 전문 유통업체 프라이스에 전시된 LG 세탁기 [LG전자 제공]

미국 정부는 또 중국과 한국 등에서 수입한 태양광 제품의 경우 2.5기가와트 기준으로 그 이하에는 관세를 부과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이를 초과하면 1년 차 30%, 2년 차 25%, 3년 차 20%, 4년 차 15%의 관세를 각각 부과하기로 했다.

태양광 제품은 미국 시장에서 공급이 모자라는 상황인데도 미국산 제품 사용을 강요하는 세이프가드여서, 당분간 미국시장에서 태양광 발전은 암흑기를 맞을 전망이다.

한국은 말레이시아와 중국에 이어 3위 수출국으로 작년 약 13억달러 상당의 셀과 전지를 미국에 수출했다. 금액 기준으로 수입 태양광 시장의 15.6% 수준이다.

라이트하이저 대표는 “대통령의 행동은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의 노동자와 농민, 목장주, 기업가들을 지킬 것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명확히 한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의 다음 목표는 미국을 상대로 최대 무역수지 흑자를 내고 있는 중국이 될 전망이다. 그는 “중국의 지적재산권 침해에 큰 벌금을 부과하겠다”고 공공연히 얘기해왔다.

지지율 하락과 각종 스캔달에 시달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위기 타개책의 일환으로 자신의 행보를 무역전쟁으로 옮기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뉴욕=심재우 특파원 jwsh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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