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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의 향기

이모티콘과 북에서 온 손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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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전수경 화가

전수경 화가

이제야 마음이 놓인다. 카톡이 왔다. 열심히 내 수업을 들었지만 몇 번의 결석으로 후한 점수를 받지 못했던 학생이다. 서로 말 못할 어색함을 남긴 채 우리는 종강을 맞았다. 그가 한 학기 동안 나의 수고를 인정하며 안부를 묻는 짧은 메시지, 그 곁에 해맑게 웃는 오리가 눈에 띄었다. 나는 즐거운 방학이 되라는 메시지와 함께 동그란 얼굴의 사자가 고양이를 다독이는 그림을 붙여 보냈다.

대화의 보조수단으로 시작된 이모티콘이 점점 중요해진다. 구구절절 열 마디 말보다 상황에 맞는 한 개의 이모티콘이 소통을 훨씬 원활하게 한다. 이모티콘은 ‘감정(emotion)’과 ‘아이콘(icon)’의 합성어다. 1980년대 미국의 카네기멜론대 학생이 컴퓨터 자판의 특수부호를 조형적으로 구성하여 표정을 만든 것이 그 출발이다. 기호형의 단순한 이모티콘이 다양한 인물과 동물의 형상을 지닌 캐릭터로 확장되면서 온라인에서 나를 대신하는 아바타의 역할까지 한다.

내가 애용하는 이모티콘은 카카오프렌즈다. 위로의 아이콘 라이언을 중심으로 복숭아 모양의 어피치, 부잣집 도시견 프로도, 변덕스러운 오리 튜브 등 8명의 캐릭터다. 이들은 희로애락의 인간 본성을 드러내는 표정과 몸짓을 한다. 그들은 서로 다투고 사랑하고 투정부리고 기뻐하며 특수한 상황을 만들어낸다. 마치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이 죄다 인간의 속성을 지닌 채 그들만의 질서 속에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과 닮았다.

엄밀한 의미에서 이들은 이모티콘이라기보다 캐릭터 혹은 아바타에 해당한다. 내 고민을 묵묵히 들어 주는 선배의 메시지를 받으면 나는 그를 라이언으로 착각할 정도다. 온갖 번민 속 현실에서 앙증맞은 도상의 팝업으로 예기치 않은 위안을 얻는다. 차마 말로 옮기지 못한 메시지를 이에 의존해 용기를 내어 전달한다. 이들은 소소한 즐거움을 제공하고 현실을 해소하는 가상의 세계로 이끈다.

호조, 라이언과 그의 친구들.

호조, 라이언과 그의 친구들.

아이콘이란 말은 상(像)을 뜻하는 그리스어 에이콘에서 유래한 용어다. 유사물이란 뜻이다. 미술사에서는 동방교회에서 발달한 예배용 화상으로 성모마리아, 그리스도, 성인들의 그림과 조각상을 지칭한다. 현대에 와서는 신에 버금가는 이상적인 모습이라는 의미로 영웅이나 인기인을 일컫는 상징을 뜻한다.

인격을 가진 이미지에 대한 끌림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인지 모르겠다. 대상이 무엇이든 좋아하는 것에 대해 누구나 상을 만들어 그것을 열망하는 것 같다. 사랑에 빠질 때 상대를 이상화하여 기대했다 실망하기도 한다. 어쩌면 자신의 반쪽을 잃은 상실감 혹은 신상이 내려진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서 아이콘을 염원하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점을 이용해 대중문화의 아이돌 산업이 과열되고 우상정치가 생겨나기도 한다. 종종 겉모습에 시선이 팔려 문제의 본질과 그 실체를 놓치게 되기도 한다.

북한에서 한 여성 고위관계자가 왔다. 자신의 업무를 볼 뿐인데 휴전선을 넘기 전부터 연일 그의 신상과 외모에 대한 관심들이 쏟아졌다. 어제는 종일 그가 포탈 검색어 순위 1위를 달렸다. 한 언론에서는 그를 “북한에서 파견한 얼굴”이라고 했다. 머리 모양, 옷, 구두의 형태와 종류까지 연신 그녀를 부각하는 말들과 사진들이 반복되었다. 남북 간의 대치와 대북제재 국면에서 온 손님이기에 그에 대한 관심은 당연하다. 그 언론의 표현대로 현송월을 아이콘이 아닌 북한에서 파견한 이모티콘 정도로 보는 게 어떨까 싶다.

신은 충고했다. 그 어떠한 형상도 만들지 말라고. 종교를 떠나 이 말은 실체를 가리는 이미지의 작용에 주의하라는 당부다. 이모티콘, 아이콘, 아바타, 이들은 인터넷 혁명과 함께 각 분야의 중요한 개념이 되어왔다. 이들은 한편 늘 실체와 대비된다. 이들은 삶의 활력과 위로를 주지만 현실에 실재하는 인격이지는 않다. 깜찍한 매력이 넘치지만 과도한 이모티콘은 믿음이 가지 않는 법이다. 상(像)이 품은 양면성은 항상 분별과 조화를 요구한다.

전수경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