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달을 팝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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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1일 오후 5시30쯤 경북 영덕군 영덕읍 창포리 창포초등교 운동장. 등산객과 젊은 연인, 아이 손을 잡은 부부 등 2000여 명이 등산복 차림으로 속속 모여들었다. 6시쯤 참석자들은 마사토가 깔린 농로를 따라 삿갓봉(해발182m) 능선에 설치된 풍력발전단지로 향했다. 30여 분 만에 풍력발전단지에 도착하자 어둑어둑 해가 지고 구름 사이로 달빛이 비쳤다. 일부 참석자는 개인용 불꽃놀이 기구를 흔들고 노래를 부르며 즐거워했다. 이어 영덕 해안마을에서 전래한 민속놀이 '월월이청청'이 공연되자 등산객들은 손뼉을 치며 동참했다. 참가자들은 영덕에 유배돼 20편의 시를 남긴 고산 윤선도의 시비도 둘러봤다.

11일 ‘동해안 달맞이 영덕 야간 산행’에 참가한 관광객들이 풍력발전단지 아래를 지나고 있다. 이 행사는11월까지 매달 한차례씩 열린다. [영덕군 제공]

하산길에는 색소폰 연주와 오징어잡이 배 집어등이 환히 비치는 동해의 풍경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해맞이공원과 해안도로를 거쳐 창포초등교로 이동할 때는 오징어잡이 배에서 미리 준비한 불꽃놀이가 펼쳐졌다.

영덕군이 이날 처음 실시한 '달맞이 야간산행'의 모습이다. 보름을 전후한 토요일 일몰 시간부터 동해안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관광상품이다. 회사원 김미아(34.영덕읍 우곡리)씨는 "가족.연인이 즐길 수 있는 환상 코스였다"고 말했다.

경주의 '달빛 신라 역사기행'에 이어 시.군이 앞다퉈 보름 전후의 야간 관광상품을 내놓고 있다. 머무는 관광객 유치를 위한 이른바 보름달 마케팅이다.

영덕의 달맞이 야간산행은 창포초등교에서 삿갓봉~풍력발전단지~해맞이공원을 거쳐 창포초등교로 돌아오는 왕복 6.7㎞ 코스(2시간). 영덕군은 이 길에 마사토를 깔고 유도등.주차장.화장실을 갖춰 산행에 지장이 없게 했다.

문경시는 4월 8일부터 10월 21일까지 매월 2회씩 14회에 걸쳐 '문경새재 과거길 달빛 사랑여행'을 운영한다. 문경새재는 조선시대 과거길에 오른 선비들이 청운의 꿈을 안고 지나던 길이다. 이 프로그램도 토요일 오후 4시부터 5시간 동안 달빛 아래 문경새재 1~2관문까지 왕복 6㎞를 걸으며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곁들여 이벤트를 체험할 수 있다. 장승공원에서 소원빌기, 과거길 숙박지인 조령관에서 주먹밥과 도토리묵 먹기, 사랑하는 사람에게 편지쓰기가 진행되고, 조선시대 경상감사 이.취임식이 열린 교귀정에서 바이올린이 연주된다.

이는 12년째인 경주 신라문화원의 달빛 신라 역사기행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이 역사기행은 낮에는 경주 최씨 고택.양동마을 등을 답사하고 밤에는 탑돌이.강강술래 등을 하며 신라의 달밤에 흠뻑 취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대구=황선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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