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수단의 슈바이처' 故 이태석 신부 뜻 따라 의사된 ‘울지마 톤즈’ 소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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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태석 신부에게 헌정하는 학사모   (부산=연합뉴스) 김재홍 기자 = 15일 오후 부산 부산진구 인제대 의과대학 1층 강당에서 열린 제34회 부산 인제의대 학위수여식에 참석한 아프리카 남수단 톤즈 출신 유학생 토마스 타반 아콧(33) 씨가 강당 옆 이태석 신부 기념실을 찾아 이 신부의 동상 위에 학사모를 씌우고 있다. 이 신부의 주선으로 한국에 온 토마스 씨는 이날 인제대 의대를 졸업했다. 그는 훌륭한 외과 전문의가 돼 남수단으로 돌아가는 것이 목표다. 2018.1.15   pitbull@yna.co.kr/2018-01-15 15:29:40/ <저작권자 ⓒ 1980-2018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이태석 신부에게 헌정하는 학사모 (부산=연합뉴스) 김재홍 기자 = 15일 오후 부산 부산진구 인제대 의과대학 1층 강당에서 열린 제34회 부산 인제의대 학위수여식에 참석한 아프리카 남수단 톤즈 출신 유학생 토마스 타반 아콧(33) 씨가 강당 옆 이태석 신부 기념실을 찾아 이 신부의 동상 위에 학사모를 씌우고 있다. 이 신부의 주선으로 한국에 온 토마스 씨는 이날 인제대 의대를 졸업했다. 그는 훌륭한 외과 전문의가 돼 남수단으로 돌아가는 것이 목표다. 2018.1.15 pitbull@yna.co.kr/2018-01-15 15:29:40/ <저작권자 ⓒ 1980-2018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남수단의 슈바이처’ 고(故) 이태석 신부가 생전 아꼈던 아프리카 남수단의 작은 마을 톤즈 소년이 한국에서 의사가 된다.

지난 15일 부산 인제대 의과대학을 졸업한 토머스 타반아콧(33)의 얘기다. 토머스는 이날 치러진 인제대 의대 제34회 학위수여식에서 동료 학생 107명과 함께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낭독했다. 인제대 의대는 이 신부가 졸업한 모교다.

아프리카 남수단의 작은 마을 톤즈 아이들과 고(故) 이태석 신부. 뒷줄 왼쪽에서 두번째 초록색 티셔츠를 입고 색소폰 든 소년이 어린시절의 토머스[중앙포토]

아프리카 남수단의 작은 마을 톤즈 아이들과 고(故) 이태석 신부. 뒷줄 왼쪽에서 두번째 초록색 티셔츠를 입고 색소폰 든 소년이 어린시절의 토머스[중앙포토]

10대 시절 토머스는 고 이태석 신부가 미사를 집전할 때 곁에서 돕는 복사단원(천주교에서 사제의 미사 집전을 돕는 평신도)이었다. 생전 이태석 신부는 “신부님처럼 의사가 되어서 아픈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어린 토머스의 꿈을 가벼이 여기지 않았다. 이 신부는 수단어린이장학회를 꾸리고 후원자들에게 편지를 직접 보내 도움을 요청했다.

토머스는 “우리가 공부해서 신부님의 뒤를 잇기를 간절히 바라셨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 신부의 노력 덕분에 2009년 12월 토머스와 2명의 친구가 한국 유학길에 올랐다.

의사가 되기까지의 길은 험난했다. 1년 반 동안 연세대 한국어학당에서 공부한 뒤 2012년 인제대 의과대학에 입학했다. 그는 “어학당에서 열심히 공부했기 때문에 한국어에 자신이 있었지만, 의대에서 쓰는 한국어는 다른 나라 말 같았다”며 “무릎을 ‘슬관절’이라고 하는 식으로 한자어가 많이 들어간 의학 용어를 익히느라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지금의 그는 기자와 막힘 없이 전화 인터뷰를 할 정도로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다.

【부산=뉴시스】 하경민 기자 = 고 이태석 신부가 남수단 톤즈에서 미사를 봉헌할 당시 신부를 돕는 복사를 맡았던 청년이 한국에서 6년 간의 의과대학 생활을 마치고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했다. 15일 부산 부산진구 읜제대 의과대학 강당에서 열린 &#39;제34회 학위수여식&#39;에 참가한 토마스 타반 이콧(33)씨가 동료 학생 107명과 함께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고 있다. 2018.01.15. yulnetphoto@newsis.com

【부산=뉴시스】 하경민 기자 = 고 이태석 신부가 남수단 톤즈에서 미사를 봉헌할 당시 신부를 돕는 복사를 맡았던 청년이 한국에서 6년 간의 의과대학 생활을 마치고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했다. 15일 부산 부산진구 읜제대 의과대학 강당에서 열린 &#39;제34회 학위수여식&#39;에 참가한 토마스 타반 이콧(33)씨가 동료 학생 107명과 함께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고 있다. 2018.01.15. yulnetphoto@newsis.com

한국 학생들보다 몇 배는 더 노력해야 했지만 그를 돕는 손길도 많았다. 토머스는 “이 신부님의 모교인 인제대와 의대의 교수님들, 수년 동안 지원해준 수단어린이장학회에 정말 감사하다”라며 “도와주신 분들의 뜻을 잊지 않고 훌륭한 의사가 돼 보답하겠다”고 밝혔다.

토머스는 “의대 교수님들이 매 학기가 마친 뒤 방학이 되면 특별 보충 수업을 열어 지난 학기 수업을 복습할 수 있도록 해주셨다”며 “누구나 쉬고 싶은 때에 없는 수업을 만들어 가르쳐주신 교수님들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땐 매운 음식을 잘 먹지 못해 과자로 끼니를 때우기도 했다”는 토머스는 이제 “얼큰한 찌개를 가장 좋아한다”며 웃었다.

그는 한국에 와서 의학 공부를 하며 고 이태석 신부님의 깊은 마음을 헤아리게 됐다고 한다.

“한국에서 의사가 되었다면 훨씬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었겠죠. 그런 삶을 포기하고 신부님이 되어서 머나먼 톤즈에서 사람들을 돕는 건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길이 아니란 걸 느꼈습니다. ‘하느님이 다 돌보지 못하는 곳을 대신 돌봐달라고 보내주신 천사였구나’ 생각합니다.”

그는 “8주기인 지난 14일 신부님을 모신 담양 천주교공원묘원을 찾아 신부님께 제가 드디어 의대를 졸업한다고 말씀드리고 왔다”며 “졸업식 날 함께하셨으면 얼마나 행복해하셨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라고 말했다.

아프리카 남수단의 작은 마을 톤즈 아이들과 고(故) 이태석 신부[중앙포토]

아프리카 남수단의 작은 마을 톤즈 아이들과 고(故) 이태석 신부[중앙포토]

얼마 전 의사 국가고시를 치른 그는 “합격하면 부산백병원에서 인턴으로 수련하고, 외과 전문의가 되어 남수단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그는 “아직도 간단한 치료조차 받지 못해 목숨을 잃는 사람들이 많다”면서 “신부님의 뒤를 이어 병들고 아픈 이들을 돌보고, 희망을 주는 의사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이에스더 기자 etoi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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