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식령은 유엔 제재 사치품 천지 … 한국선수 이용 땐 괜한 빌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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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조선중앙통신은 2014년 1월 1일 김정은 당시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전날 개장한 원산 마식령 스키장을 현지 시찰하는 사진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흐뭇한 김정은의 표정과 함께 눈이 쌓인 슬로프에서 스노모빌을 타고 달리는 이용객들의 사진이 눈길을 끌었다. 그런데 이 스노모빌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북한으로 수출을 금지한 사치품목이었다. 남북이 17일 차관급 실무회담에서 남북 공동 스키훈련을 하기로 결정한 마식령 스키장은 이런 금수 사치품으로 가득 차 있다. 김정은이 역점을 둔 주요 치적 사업에 걸맞게 유럽 기업들의 고가 장비들을 다수 수입했기 때문이다.

캐나다산 스노모빌, 유럽산 제설기 #김정은 치적 자랑 위해 들여와 #‘외화벌이용’ 건설 때부터 제재 타깃 #“마식령서 활강 한국 선수 사진이 #북 제재 회피 묵인 오해 부를 수도”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2014년 공개한 마식령 스키장 사진엔 대북 수출 금지 사치품들이 대거 포착됐다. 왼쪽 시계 방향으로 캐나다 스키두 스노모빌. [사진 조선중앙통신]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2014년 공개한 마식령 스키장 사진엔 대북 수출 금지 사치품들이 대거 포착됐다. 왼쪽 시계 방향으로 캐나다 스키두 스노모빌. [사진 조선중앙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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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안보리가 북한으로 사치품 유입을 금지한 것은 2013년 채택된 결의 2094호에서였다. 북한 지도부가 측근들에게 사치품을 나눠주며 충성을 유도하는 ‘선물 통치’ 행태를 막기 위해서였다. 안보리 산하 대북제재위원회는 결의 이행 지침서에서 ‘북한 일반 주민들이 해당 물품을 살 경제적 능력이 있는지’를 사치품 판단의 기준으로 제시했다. 그러면서 2014년 유엔 통계상 북한 주민 1인당 연간 소득이 696달러(약 74만원)라고 명시했다. 이 정도 수입을 벌어들이는 북한 주민이 구매하기 힘들다면 사치품이란 뜻으로, 대부분 고가품은 여기 해당하는 셈이다. 이 때문에 안보리는 마식령 스키장이 건설될 때부터 주목해 왔다. 정부 당국자는 “마식령 스키장은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해 현금 벌이를 하는 게 당초 계획이었기 때문에 제재의 타깃이 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스웨덴 아레코 분사식 제설기(대당 약 3만7000달러). [사진 조선중앙통신]

스웨덴 아레코 분사식 제설기(대당 약 3만7000달러). [사진 조선중앙통신]

안보리 산하 대북제재위 전문가 패널은 연례보고서를 통해 수차례 마식령 스키장에 있는 사치품들을 구체적으로 지적했다. 주로 북한이 선전을 위해 공개한 사진에서 덜미가 잡혔다. 보고서에 등장한 마식령 스키장의 사치품 종류는 다양했다. 조선중앙통신이 2014년 1월 1일 보도한 스노모빌에는 ‘스키두’라는 브랜드가 찍혀 있었는데, 북한 전문 매체 NK뉴스 등에 따르면 이는 캐나다 BRP의 제품으로 대당 가격이 1만 달러 정도다. 스웨덴 아레코의 분사식 제설기(대당 약 3만7000달러), 이탈리아 프리노스와 독일 피스톤불리의 중장비 제설 차량(대당 약 8만~11만 달러) 등이 찍힌 사진도 공개됐다.

이탈리아 프리노스 중장비 제설차량(대당 약 8만~11만 달러). [사진 조선중앙통신]

이탈리아 프리노스 중장비 제설차량(대당 약 8만~11만 달러). [사진 조선중앙통신]

북한은 국제사회의 감시망이 그리 엄격하지 않았던 건설 초기에 대거 유럽산을 들여오는 방법으로 제재를 피했다고 한다. 하지만 나중에 이 사실이 들통나 제재 조치가 강화됐다. 2016년 1월 공개된 사진에는 마식령 스키장 케이블카에 오스트리아 기업 로고가 찍혀 있는 것이 포착돼 안보리 전문가 패널이 이를 오스트리아에 알렸다. 스위스는 마식령 스키장이 건설 중이던 2013년 아예 자국 기업에 “마식령 스키장 지원을 하지 말라”고 지시했고, 2016년에는 독자 제재를 통해 스키 관련 품목을 대북 수출 금지 리스트에 포함했다. 유엔 안보리도 2016년 채택한 결의 2270호에서 마식령 스키장을 염두에 두고 금수 품목 목록에 ‘2000달러 이상의 스노모빌’을 특정해 올렸다.

마식령 스키장에서 합동 훈련을 할 한국 선수들이 이런 사치품을 이용하는 것이 제재 위반은 아니다. 하지만 금지 사치품이 몰려 있는 마식령 스키장에서 한국 선수들이 활강하는 사진이 전 세계에 보도될 경우 한국이 북한의 제재 회피를 눈감아주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마식령 스키장

마식령 스키장

◆조선총련도 170명 응원단 파견=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선총련)가 평창 겨울올림픽에 170명 규모의 응원단 파견 계획을 세웠다고 일본 교도통신이 18일 전했다. 남북은 지난 17일 판문점에서 차관급 실무회담을 열고 북한 응원단과는 별도로 조선총련 응원단의 활동도 보장하기로 합의했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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