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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금호타이어 살리겠다는 채권단, 나 몰라라 두손 놓은 노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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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윤정민 산업부 기자

윤정민 산업부 기자

금호타이어 채권단이 18일 금호타이어 차입금 만기를 1년 연장해 주기로 했다. 외부 자본을 유치해 회사를 정상화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지난달 임금도 못 받은데다 ‘앞으로 몇 달 더 월급이 밀릴지도 모른다’는 흉흉한 소문에 시달려 온 금호타이어 직원들로서는 오랜만에 들려온 좋은 소식이다. 이날 오후 만난 한 금호타이어 직원은 “설 연휴도 다가오는데, 다행히 상환 기한이 연장됐다”며 “월급을 받아서 고향에 갔으면 좋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위기에 빠진 회사에 다니고 있는, 한 직장인의 소박한 바람이었다.

차입금 만기 연장돼 한숨 돌렸지만 #구조조정 등 경영정상화 첩첩산중 #노조 측 “현재 위기는 경영진 잘못” #회사 측 자구안 거부, 파업 예고

그러나 잔인하게도 금호타이어의 봄은 아직 멀기만 하다. 채권단은 지난 9일 “충분하고도 합당한 수준의 자구 노력이 선행되지 않으면 경영정상화가 불가능하다”고 강력히 경고했고, 이날 차입금 만기 연장에도 전제 조건을 뒀다. 노사의 동의서가 포함된 경영정상화 계획을 바탕으로, 한 달 안에 채권단과 회사 간 약정이 체결돼야만 상환을 늦출 수 있다는 것이다. 노사가 신속하게 자구계획안에 동의하지 않으면, 만기 연장은 없던 일이 되고 만다.

일단 회사 측은 자구안을 내놨다. 회사의 현실과 경쟁력을 고려해 최우선으로 필요한 목표인 영업이익 1483억원(영업이익률 5.5%)을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경영개선 기간 중 임금 동결 ▶임금체계 개선(통상임금 해소) 및 조정 ▶임금 피크제 시행 ▶복리후생 조정 등을 노조에 요청했다. 회사 관계자는 “노조의 협조 없이는 채권단이 원하는 수준의 자구 노력을 이행하기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노조는 힘을 보탤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지난 8일 김종호 대표가 노조를 설득하기 위해 직접 광주공장에 내려갔지만, 노조는 바로 다음날 지역 언론과 기자 간담회를 열고 “회사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또한 24일엔 자구계획안 철회와 구조조정 저지를 위해 파업을 하고 상경투쟁을 벌일 예정이다.

노조가 이처럼 강경하게 나오는 이유는 한마디로 “잘못한 게 없으니 희생도 양보도 없다”는 것이다. 현재의 위기는 경영진이 만든 위기이며, 노조는 잘못한 것도 없이 그동안 희생만 강요받았기 때문에 더 이상은 양보할 수 없다고 한다. 구조조정은 불가하고, 돈이 없으면 중국 공장을 정리하라는 주장도 펼치고 있다.

결국 지켜보는 사람들의 답답함만 커지고 있다. 금호타이어의 위기가 길어질수록 지역 경제의 타격도 커지고 직원들도 힘들 수밖에 없다. 게다가 애가 타는 사측도 노조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과거 경영진의 잘못된 판단이 위기의 큰 이유라는 것도 알고 뼈저린 반성도 하고 있지만, 노조도 책임에서 완전히 벗어날 순 없다는 것이다. 회사 측은 “노조는 과거 워크아웃 기간에도 파업을 벌였고, 2014년 12월 겨우 워크아웃을 졸업한 뒤에도 2015년 39일간의 역대 최장기 파업을 강행하며 회사를 더욱 어렵게 했다”고 주장한다. 자칫 진흙탕 싸움의 조짐까지 보이는 것이다.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노조 주장처럼 언제 다시 필요해질지 모를 중국 공장을 단숨에 정리하는 것도 회사 입장에선 내리기 힘든 결정이다. 결국, 뻔히 알지만 실행은 못 하고 있는 일을 해야 한다. 대화와 양보와 타협이다. 과거 잘못을 묻는 것도 좋고 반성하는 것도 좋지만, 현재 없이 미래가 없는 것도 분명하다. 파업과 상경 투쟁으로 회사를 살릴 수 없다는 건 노조도 알고 있을 것이다. 노조에 책임을 지라는 것이 아니다. 다만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다.

윤정민 산업부 기자 yunj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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