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비판했다간···'文의 남자'도 걱정한 '문빠 현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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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의 남자’도 지적한 “SNS 병리현상”…문파는 양날의 칼?

지난해 5월 9일 당선이 사실상 확정된 상황에서 서울 광화문에 나온 지지자들과 악수를 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의 모습 [중앙포토]

지난해 5월 9일 당선이 사실상 확정된 상황에서 서울 광화문에 나온 지지자들과 악수를 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의 모습 [중앙포토]

 요즈음 더불어민주당 의원 중에 공개적으로 청와대를 비판하는 의원은 거의 없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을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의원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원래 집권 초기 여당이 그렇고,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고공행진을 하는 이유도 있지만 자칫 비판을 했다가 문 대통령의 열혈 지지층으로부터 역공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 11월 문 대통령 지지층을 향해 쓴소리를 했다가 안희정 충남지사가 ‘적폐’로 몰린 적이 있다. 안 지사는 당시 서울 성북구청 강연장에서 “처음부터 ‘닥치고 따라와’ 구조로 가면 잘못된 지지운동이다”라고 말했다. 반대 의견을 허용하지 않는 일부 강성 지지층의 태도를 지적한 발언 이후 안 지사의 페이스북은 ‘안희정이 적폐세력’ ,‘꼰대’ 등 비판 글로 도배됐다.

 스스로는 ‘문파(文派)’ 또는 ‘문꿀오소리’(꿀먹이오소리처럼 문 대통령을 비판하거나 공격하는 사람을 지구 끝까지 쫓아가 물어뜯는다는 뜻)라고 규정하고, 반대 편에선 ‘문빠’라고 칭하는 이들은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중심으로 위력을 발휘한다.

 그동안 여권에선 이들의 행동을 만류하는 일에 소극적이었다. 지난해 4월 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직후 문 대통령은 열혈 지지층의 행동에 대해 “우리 경쟁을 더 흥미롭게 만들어주는 양념 같은 것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 10일 신년 기자회견 때는 비판적 기사를 쓰는 기자를 향한 악성 댓글에 대해 “기자들도 그런 부분에 대해 좀 담담하게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너무 예민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오히려 이 질문을 했던 기자는 온라인에서 ‘신상 털이’를 당했다.

대선을 앞둔 지난해 4월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당내 경선에 참가했던 경쟁자들과 함께 맥주를 마시며 화합을 다짐하고 있다. 왼쪽부터 최성 고양시장, 이재명 성남시장, 문 대통령, 안희정 충남지사. 신인섭 기자

대선을 앞둔 지난해 4월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당내 경선에 참가했던 경쟁자들과 함께 맥주를 마시며 화합을 다짐하고 있다. 왼쪽부터 최성 고양시장, 이재명 성남시장, 문 대통령, 안희정 충남지사. 신인섭 기자

 이런 상황에서 17일 귀국한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 열성 지지층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 걸 정치권은 주목하고 있다. 문 대통령의 핵심 측근으로 통하는 그는 이날 서점에 배포된 자신의 책 『세상을 바꾸는 언어』에 “(지난해) 선거 상황에서 강력한 결집력을 지닌 온라인 지지자들은 문 대통령에게 무척 고마운 분들이었지만 그 가운데 극히 일부는 인터넷 공간에서 지지 성향이 다른 네티즌들에게 배타적 폐쇄성을 드러내기도 했다”며 “미안한 얘기지만, 한편으로 큰 부담이었다”고 적었다.

 이른 오전부터 인천공항에 몰려든 취재진이 이 내용에 관한 질문을 하자 양 전 비서관은 “대선 때 일을 갖고 얘기 했던 원론적인 얘기”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지난 대선 경선 때 (민주당에서 문 대통령과) 함께 경선했던 안희정 충남지사, 이재명 성남시장, 최성 고양시장, 다 좋은 분들이었는데 너무 열기가 끌어오르다 보니까 같은 당 안의 우리 식구들을 향해서도 과도한 공격이 있지 않았느냐”며 “그게 우리 당뿐만이 아니고 전체적으로 보면 SNS가 발달해 있는 우리 사회의 SNS적(的) 병리현상으로 본다. 거기에 대한 일반론적인 이야기를 한 것”이라고 부연했다. 특정 집단을 향한 말이 아닌 일반론이라고 설명했지만 권력 핵심층 내부에서도 극성 지지층에 대한 걱정이 있다는 걸 우회적으로 토로한 것으로 해석됐다.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통하는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 17일 오전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통하는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 17일 오전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당 내에선 여전히 극성 지지층의 문제점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목소리는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사석에선 이들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민주당 관계자는 “지금이야 청와대나 우리 당에게 우군일 수 있지만 나중에는 결국 더 큰 부담을 줄 수 있다”며 “의원들이 건전한 비판을 안 하는 분위기가 결국엔 부작용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문 대통령의 열혈 지지층이 민주당 입장에선 ‘양날의 칼’과 같다는 얘기다.

 최근에는 온라인 공간에서 전과 다른 흐름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5월 문 대통령 취임 이후 주요 포털사이트에 걸린 기사에는 정부에 우호적인 댓글이 상단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 암호화폐 규제 논란, 평창겨울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논란 등을 겪으면서는 비판적인 내용이 베스트 댓글이 되는 사례도 잦아지고 있다. 온라인에선 이러한 현상을 놓고 “문 대통령의 주요 지지층인 20~30대가 동요했다”거나 “그동안 열혈 지지층에 가려져 있던 비판 여론의 흐름이 일부 드러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허진 기자 b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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