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감자' 대체복무제, 인권위 드라이브로 급물살 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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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전자공학과 84학번인 홍영일(53)씨는 대학원생 때 '여호와의 증인'이 됐다. 병역특례 연구원으로 대기업 입사가 예정됐던 그는 훈련소에서 집총을 거부해 군 교도소에서 2년을 보냈다. 여호와의 증인 신도인 홍씨의 아들(22)도 병역거부자다. 군대 대신 감옥에 갈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홍씨는 "양심을 지킨다는 이유로 감옥에 간다는 상황 자체가 안타깝다. 최근 대체복무가 사회적으로 논의돼 기대를 걸고 있다. 더 긴 복무기간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권위, 대체복무제 도입을 위해 적극적 행보 #문 대통령 "병역거부 인정 위한 기준과 대안 제시해야" #여론은 우호적으로 변하나 여전히 '뜨거운 감자'

지난해 세계병역거부자의 날을 맞아 광화문에서 열린 옥중기자회견. [중앙포토]

지난해 세계병역거부자의 날을 맞아 광화문에서 열린 옥중기자회견. [중앙포토]

사회적으로 '뜨거운 감자'로 불리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군 대체복무제를 두고 사회적 여론이 팽팽한 가운데 국가인권위원회가 대체복무제 도입을 위해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 11일 오후 국가인권위원회 이성호 위원장은 인권위 접견실에서 병역거부 형사소송과 국민청원을 대리하는 김진우ㆍ오두진 변호사를 만났다.

김 변호사는 "항소심을 많이 맡고 있는데 헌법재판소 판결이 임박한 걸로 알려진 이후 재판부도 섣불리 유죄 판결을 내리지 않는 추세"라며 "국제 인권 기준에 부합하는 대체복무제가 필요하다고 건의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인권위도 "적극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인권위는 올해 신년사를 통해서도 병역거부 문제 해결 의지를 보였다.

지난해 12월 7일, 인권위는 문재인 대통령 특별보고를 통해 사형제 폐지와 함께 양심적 병역거부 인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사형제 폐지, 병역거부 인정 등 국제인권원칙에 따른 기준과 대안을 제시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정부와 헌법재판소, 대법원은 대체복무제 도입의 전제 조건으로 '국민적 합의'를 내세웠다. 최근 여론 조사 추이를 보면 대체복무제도에 대한 거부감을 줄어들고 국민적 합의는 늘고 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병역거부 관련 최근의 여론조사는 지난해 1월 인권위가 발표한 '국민인권의식조사'다. 성균관대 산학협력단이 2016년 5~12월 만15세 이상 국민 1504명을 상대로 한 조사에 따르면 "양심적 병역거부를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은 46.1%로 2005년(10.2%)에 비해 4배 이상이 됐다. 같은 해 한국앰네스티가 한국갤럽에 의뢰한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72%가 양심적 병역거부를 "이해할 수 없다"고 답했지만 동시에 70%가 "대체복무제 도입에 찬성한다"는 의견을 보였다.
 '국민인권의식조사'를 진행한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우호적 여론이 다수라고 할 순 없지만 2005년, 2011년, 2016년 세 차례 조사로 장기 여론이 대체복무제 허용으로 흐르고 있다. 촛불 정국을 거치며 인권의식과 여론은 전향적으로 변했다. 지금 조사하면 더 높은 수치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2014년 병무청이 리서치앤리서치에 맡겼던'입영 및 집총거부자 국민여론조사'에서는 대체복무제 핵심 문제인 복무 기간에 대한 응답이 담겼다. 19세 이상 성인 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한 이 조사에서 대체복무 복무기간에 대해 응답자의 35%는 “현역병의 1.5배”가 적당하다고 답했다. “2배”라는 답은 21.3%, “2.5배 이상”이라는 응답은 10.8%였다. 반면 “현역병과 동일해야 한다”고 답한 사람은 30.9%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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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 등이 대체복무제 도입을 위한 병역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지만 일각에서는 대체복무제 도입이 합리적 병역기피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고등군사법원장 출신의 김흥석 변호사는 "병역기피 수단이 될 가능성이 있고, 국가 안보도 고려해야 한다"면서 "어느 범위까지 대체복무를 허용할 것인지도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장기적으로 대체복무제를 허용할 수 있지만 군복무에 대한 유인책 강화와 군 처우 개선 논의, 군 복무 단축 이슈와 함께 대체복무제도 단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여성국 기자 yu.sungk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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