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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 판사들 줄조사…곧 결과 발표

중앙일보

입력

이른바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을 조사중인 추가조사위원회(위원장 민중기 부장판사)가 최근 이 문건을 보관한 것으로 의심되는 현직 판사들을 불러 조사한 것으로 15일 확인됐다.

12일 전ㆍ현직 행정처 판사 조사 #이르면 이번 주 조사결과 발표 #인사모 문건들 '발견설' 난무 #어떤 결과 나와도 후유증 클 듯

추가조사위 내부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는 이날 “추가조사위가 해당 문건이 들어있을 것으로 의심되는 PC를 사용한 법원행정처 심의관 2명과 이규진(고등법원 부장판사ㆍ차관급)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을 대면 조사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두 심의관은 지난 12일, 이 전 상임위원은 지난 5일 추가조사위의 대면조사에 응했다. 추가조사위는 감찰ㆍ수사권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판사들이 진상조사에 협조하는 차원에서 대면 조사에 응했다고 한다. ‘블랙리스트’에 관여한 것으로 의심받아온 사람 중에 지난 3월 사직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조사하지 않았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이른바 '판사 블랙리스트' 논란과 관련해 추가조사위원회에 전권을 위임했다. [연합뉴스]

김명수 대법원장은 이른바 '판사 블랙리스트' 논란과 관련해 추가조사위원회에 전권을 위임했다. [연합뉴스]

 추가조사위가 지난해 12월 26일 법원행정처에 보관 중이던 해당 PC를 ‘강제 개봉’한데 이어 핵심 관련자 조사까지 마치면서 이르면 이번 주 안에 최종 조사결과를 발표할 것으로 관측된다. 최근엔 해당 PC에서 국제인권법연구회 내 소모임인 ‘인권보장을 위한 사법제도 모임(인사모)’의 활동 내용을 법원행정처가 별도 관리한 문건이 나왔다는 얘기도 돌았다.

법관들도 추가조사위 발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일부 판사들은 “특정 학술모임에 속한 판사들의 성향이나 이름을 담은 보고서가 있기만 해도 사실상 블랙리스트로 봐야 한다”며 블랙리스트 존재를 기정사실로 여기기도 한다. 반면 “이미 지난해 진상조사위원회가 ‘인사모 관련 공동학술대회 대책 문건’이 작성됐다고 밝힌 만큼, 이 문건이 PC에서 나온다 해도 블랙리스트로 보기 어렵다”는 판사들도 적지 않다.

주광덕 자유한국당 의원이 지난 2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질의하는스  모습 [연합뉴]

주광덕 자유한국당 의원이 지난 2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질의하는스 모습 [연합뉴]

 이와 관련해 주광덕 자유한국당 의원은 이날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 추가조사위! 무엇을 내놓을 것인가’라는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주 의원은 “김 대법원장과 추가조사위가 자신들의 실수를 덮기 위해 ‘무리하게’ 실체도 없는 문건을 블랙리스트라 들고 나오지 않을까 싶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은 지난해 법원 내 최대 학술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의 ‘대법원장 권한 제한’ 관련 세미나를 법원행정처 간부가 축소하라고 압력을 넣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시작됐다. 당시 이 연구회 소속인 이모 판사는 법원 진상조사위에서 “법원행정처 PC에 비밀번호가 걸린 판사 뒷조사 파일이 있다고 들었다”고 진술하면서 논란이 더 커졌다.

진상조사위는 지난해 4월 이 의혹은 ‘사실무근’이라고 발표했지만, 이 연구회 회원들은 재조사를 강하게 요구했고 김명수 대법원장은 이를 받아들여 지난해 11월 재조사를 지시했다. 이후 재조사를 진행할 법원 추가조사위원회가 꾸려졌지만 법원 내부에서부터 공정성 시비가 생겼다. 추가조사위 위원 6명 중 절반가량이 이 의혹을 처음 제기한 이 판사와 같은 연구회 소속이란 점에서였다.

조사 절차를 두고도 시비가 일었다. 추가조사위는 블랙리스트가 들어 있다는 의혹을 받는 임종헌 전 행정처 차장과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전ㆍ현직 기획조정실 심의관이 사용했던 PC의 하드디스크를 해당 판사 동의 없이 강제로 개봉했다. 법원 내부에서도 헌법상 프라이버시권 침해, 형법의 비밀 침해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추가조사위는 이를 강행했다.

판사 뒷조사 의혹을 진상조사 중인 재조사위원회가 이르면 이번 주 중 최종결과를 내놓을 전망이다. 사진은 대법원 전경. [연합뉴스]

판사 뒷조사 의혹을 진상조사 중인 재조사위원회가 이르면 이번 주 중 최종결과를 내놓을 전망이다. 사진은 대법원 전경. [연합뉴스]

조사결과 발표 후에도 후폭풍은 거셀 전망이다. 이미 존재가 확인됐던 ‘인사모 관련 공동학술대회 대책 문건’이나 유사한 동향 분석 문건을 ‘블랙리스트’로 규정할 경우 법원 내에서 이를 수긍하지 않을 가능성도 높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블랙리스트라 하면 최소한 판사들의 이름과 성향이 적시되고 인사와 관련한 의견이 들어있어야 한다”며 “단순 동향 문건을 ‘블랙리스트’로 부른다면 형사법적으로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추가조사위가 판사 뒷조사 의혹을 입증할만한 물증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김명수 대법원장이 무리하게 추가조사를 진행했다는 책임론을 피하기 어렵다. 최악의 경우 관련 고발 사건 수사를 위해 검찰이 사상 처음으로 사법부에 대한 강제수사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검찰은 ‘판사 블랙리스트’ 관련 고발 건에 대해 “원칙대로 수사한다”는 입장을 밝혀 왔다.

현일훈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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