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北 핵미사일 공포로 38분간 패닉 상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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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38분간 지상 낙원인 하와이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13일 오전 8시 7분(현지시간) 하와이에 미사일 공격 경보가 발령됐다. 하와이 주민들과 관광객들은 “탄도미사일이 하와이를 위협하고 있다. 즉시 대피처를 찾아라. 이건 훈련이 아니다”라는 휴대전화 비상경보 메시지를 받았다.

13일 하와이 주민과 관광객 등에게 일제히 전송된 ‘탄도미사일 공격 대피 긴급 경보’ [트위터 캡처=연합뉴스]

13일 하와이 주민과 관광객 등에게 일제히 전송된 ‘탄도미사일 공격 대피 긴급 경보’ [트위터 캡처=연합뉴스]

13분 뒤 하와이 주정부가 트위터를 통해 “하와이에 대한 미사일 위협은 없다”고 밝혔지만 이 메시지를 접하지 못한 상당수는 여전히 패닉에 빠져 있었다. 휴대전화 메시지를 통해 경보가 취소된 것은 경보 문자 발송 후 38분이 지난 뒤였다. 그제서야 주민들은 경보 발령이 실수로 인한 것임을 확인하고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미사일이 위협, 훈련 아니다” 경보 발령 # 직원 실수로 경보 버튼 잘못 눌러 오발령 # 주민들 욕조로 대피, 관광객 지하주차장으로 # # 주지사 긴급 기자회견 열고 사과 성명 # 일각선 美 미사일 방어시스템 구멍 우려 # “제대로된 미사일 훈련 없었다” 지적도 #

이날 CNN 등 주요 언론들은 주민과 관광객들에게 이 ‘공포의 38분’은 죽음까지 남은 시간으로 인식됐다고 묘사했다. 그러면서 최근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으로 인해 하와이 주민들이 느끼는 위협 강도가 크게 고조됐다고 전했다.
실제 북한이 지난해 11월 시험발사한 ‘화성-15형’은 미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북한과 7000㎞ 정도 떨어져 있는 하와이를 사정권에 두고 있다.

특히 지난해 9월엔 이용호 북한 외무상이 사상 최대의 수소탄 실험을 태평양상에서 할 수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하와이 당국은 지난달 1일 북한의 핵미사일 공격에 대비해 30여 년만에 주민대피 훈련을 실시하기도 했다.
이날 경보 발령 직후 주민과 관광객들은 긴급히 대피할 곳을 찾기에 분주했다. 고속도로 H-3에는 텅빈 차량만이 남았고 해변 관광객들은 호텔 지하주차장으로 피신했다.

미사일 공격 경보가 사실이 아님을 알리는 전광판 [로이터=연합뉴스]

미사일 공격 경보가 사실이 아님을 알리는 전광판 [로이터=연합뉴스]

하와이 주의회 매트 로프레스티 의원은 CNN 인터뷰에서 “아침에 경보를 받고 공포에 떨면서 아이들과 함께 욕조 속으로 대피해 기도를 했다. 나중에 잘못 발령된 경보란 것을 알고 매우 화가 났다”며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 본토에 거주하는 주민들도 미사일 경보 발령에 대비해 무엇을 해야하는지 미리 파악해 두는 것이 필요하다. 대피할 수 있는 시간은 불과 10~15분 밖에 되지 않는다. 비상식량과 약품 등을 미리 챙겨놓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와이 비상관리국(HEMA) 소속 직원인 번 미야기에 따르면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해 하와이를 타격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20분 밖에 되지 않는다.

하와이 주정부 비상관리국(HEMA)의 모습 [AP=연합뉴스]

하와이 주정부 비상관리국(HEMA)의 모습 [AP=연합뉴스]

하와이에서 열리고 있는 미 프로골프(PGA) 소니 오픈에 참가한 선수들도 공포에 떨었다. 미 골퍼 존 피더슨은 트위터에 “욕조의 매트리스 밑에 아내와 아기가 있다. 제발 미사일 위협이 사실이 아니길 빈다”고 썼다.

오발령이 확인된 후 데이비드 이게 하와이 주지사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미사일 경보가 잘못 발령된 것은 주정부 비상관리국이 작업교대 중 경보 시스템을 점검하다가 빚은 실수”라며 “버튼을 잘못 누른 탓”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고통과 혼란을 일으킨 데 대해 사과한다”고 말했다. 비상관리국은 “실수가 재발하지 않도록 한 사람이 맡던 경보발령을 두 사람이 맡도록 조치했다”고 밝혔다. 미 연방통신위원회(FCC)는 잘못된 경보 발령 원인을 찾기위한 진상조사에 착수했다.

미사일 경보 발령에 백악관도 비상이 걸렸다. 외신들에 따르면 경보 발령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플로리다주 웨스트팜비치 골프장에 있었다. 잘못된 경보라고 확인됐을 무렵 트럼프는 골프장에서 마라라고 별장으로 돌아왔다.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관련 내용을 보고했고 트럼프는 그에게 정부 대응 임무 맡겼다고 한다. 정부 관계자는 “실제 위협이 없었기 때문에 군사적 대응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날 하와이 미사일 경보 사태는 오발령으로 판명됐지만 일각에선 트럼프 정부의 미사일 대처 능력에 대해 우려했다. 미 정치전문지 폴리티코는 “미국의 미사일 대응 계획이 구체적으로 검증되지 않았다”며 “지난해 7월까지 국토안보부 장관으로 일했던 존 켈리 현 백악관 비서실장이 미사일 대응 훈련 실시를 추진했는데 백악관으로 옮기는 바람에 무산됐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결국 지난달 미사일 대응훈련이 실시되긴 했지만 차관급이 주도한 훈련으로 실효성이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폴리티코는 또 정부 고위관계자를 인용해 “미국은 30년간 이런(장관급) 훈련을 하지 않아 내각이 뭘해야 할지 잘 모를 수 있다”는 말도 전했다.

12일 미 플로리다주 웨스트팜비치 공항에 내려 인사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AFP=연합뉴스]

12일 미 플로리다주 웨스트팜비치 공항에 내려 인사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AFP=연합뉴스]

기술적 측면에서도 미국의 ICBM 방어 체계에 대한 의구심이 적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폭스뉴스에서 북한의 핵ㆍ미사일 위협을 언급하면서 “적 미사일의 97%를 공중에서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이번 오발령 사고로 인해 그 신뢰성은 더욱 떨어졌다.

미국의 ICBM 방어 시스템의 핵심 역할은 캘리포니아 반덴버그 공군기지와 알래스카 포트 그릴리가 맡고 있다. 여기에 배치된 지상발사요격미사일(GBI)이 적 ICBM을 대기권 밖에서 요격하는 것이 시스템의 골자다. 1999년부터 2017년까지 실시한 요격시험 18회 중 성공한 것은 10차례에 그쳤다. 성공률은 56% 정도다.

AP통신은 “핵탑재가 가능한 B-2 등 전략자산이 배치된 괌과 태평양사령부가 있는 하와이는 북한 미사일의 최우선 타깃이 될 수 있다”며 “이번 하와이 오발령을 계기로 미사일 방어 체계에 대한 전반적인 재점검을 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익재 기자 ij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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