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쿠조노 교수 "문 정부, 위안부 합의 민심 설득하는 리더십 발휘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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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합의 후속조치 논란, 한·일 전문가에게 듣는다 -오쿠조노 히데키 교수

 “일본 정부가 과격한 언행으로 반응하면 한국 국내여론을 틀림없이 자극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움직일 수 있는 폭을 좁히는 꼴이 된다. 이는 일본의 국익과도 결코 맞지 않다.”

일본의 대표적인 한·일 관계 전문가인 오쿠조노 히데키(奧薗 秀樹·53) 시즈오카현립대 교수의 진단이다.
 오쿠조노 교수는 12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위안부 문제로 (한·일 관계) 전체가 소비돼 버리는 사태를 박근혜 정부에서 겪었다. 어리석은 실패를 되풀이해선 안된다”고 한·일 양국 정부에 강조했다.

  그는 아베 정부에 “문재인 정부가 과거정권에서 부족했던 민주적 프로세스를 밟는다는 시각에서 국내 여론을 설득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또 한국 정부엔 “문 대통령이 민심을 설득하고 이끌어가는 지도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오쿠조노 히데키 시즈오카현립대 국제관계학연구과 교수 ※사진=본인제공

오쿠조노 히데키 시즈오카현립대 국제관계학연구과 교수 ※사진=본인제공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새 방침을 평가한다면?
국내 여론이나 피해자 할머니에 대한 배려, 대일관계 배려 사이에서 굉장히 고심 끝에 나온 결론이었다는 점은 짐작할 수 있었다. 문제는 내용인데, 한마디로 말하면 정말 모순이 넘친다. 파기나 재협상 요구는 하지 않겠다면서도 문제해결이 안된다는 모순된 2가지가 병기돼있다. 무엇보다 10억엔의 처리방안이다. 피해당사자들의 명예와 존엄을 회복하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의미로 만든 재단이다. 합의의 핵심축이라 할 수 있을만큼 중요한 요소다. 이를 한국 정부 예산으로 충당하고 일본과 용처를 협의한다는 것은 합의 자체에 손을 대겠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가 받아들이기 굉장히 힘들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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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일본 측에 공이 던져진 상태다. 일본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일본 정부 입장에선 한국 측의 발표는 굉장히 화가 나는 내용이다. 다만 위안부 문제 하나 때문에 한·일관계가 심각하게 악화되는 사태를 받아들일만한 여유가 없다. 때문에 감정적인 표현을 쓰지 않고 있는 것이다. 과격한 언행으로 반응하면 한국 국내여론을 틀림없이 자극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움직일 수 있는 폭을 좁히는 꼴이 된다. 이는 일본의 국익과도 결코 맞지 않다. 문 대통령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사드, 원전 문제에서 대선 공약과 다른 결단을 내렸다. 위안부 합의도 마찬가지다. 일본 정부는 문 정부가 지난 정부에서 부족했던 민주적 프로세스를 밟는다는 시각에서 인내심을 갖고 지켜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한국이 취해야 할 입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위안부 문제를 박근혜 정부를 부정하는 적폐청산의 흐름 속에서 처리하는 것은 이 문제를 평행선으로 가게 만든다. 결과적으로 피해 당사자들이 방치되어버리는 사태가 될까 우려된다. 문재인 정부가 촛불민심에 의해 탄생한 정권이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다시 한번 호소하고 싶다. 문 대통령은 ‘피해자 중심주의’를 강조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모든 분을 만족시킬 수 있는 결론은 얻지 못할 것이다. 촛불민심이 탄생시킨 정권이지만 그 민심이 정권의 발목을 잡으면 문 대통령이 하려고 하는 외교정책을 하지 못하게 될 위험이 있다. 그러나 동시에 민심을 설득하고 이끌어가는 지도력을 발휘하는 것도 민심대통령이기에 가능한 역할이다.
일본 국민들은 위안부합의 문제를 어떻게 보고있나. 또 양국 국민들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
정말 걱정스러운 건 이번 일로 한국을 협력 파트너로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에서조차 정부간의 약속을 국내상황이 달라졌다고 저버린 한국에 대한 불신감이 커졌다는 점이다. 특히 불과 2년전 비공개 교섭 내용을 일방적으로 공개한데 대한 충격이 크다. 이를 회복하려면 굉장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정부 관계가 어려울 때일수록 지방자치단체 간 교류나 학생교류 등 풀뿌리 단계에선 교류가 더 활발해져야 한다. 국민감정이 악화됐다 해서 모든 면에서 관계가 정체되는 일은 막아야 한다. ‘투 트랙’ 전략은 양국 모두에 필요하다. 한일관계의 프레임을 굳건히 하고, 할 수 있는 건 해야 한다. 그 다음에 과거사 문제를 구체적으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방향으로 가야한다.
대북공조도 중요한 과제다.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
북한의 위협만이 한·일관계를 지탱해주는 역설적인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북한은 문 정권이 남북관계를 주도하고 싶어한다는 걸 뻔히 알고 타이밍만 보고 있었다. ‘우리 민족끼리’ 를 강조해 한국 국내여론과 주변국을 자극하고 있다. 여기에 휘둘려선 안된다. 북한문제는 이미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핵ㆍ미사일 문제가 있기 때문에 국제문제로서의 의미가 더 크다.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도 북한문제의 당사자다. 한국이 북한문제에 남다른 열의를 갖는 것은 당연하지만 관련국과 긴밀한 협조 하에 관리해줘야 한다. 한·일관계를 냉전시대에서처럼 안이하게 봐선 안된다. 한·일관계가 깨진다는 것은 한·미·일 협력구도가 깨지는 것이기도 하다. 한·일관계 중요성은 다면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올해는 '김대중ㆍ오부치 한일파트너십 공동선언' 20주년이 되는 해다. 한·일관계를 어떻게 이끌어나가야 할까?
공동선언은 일본 자민당과 한국 진보정권 사이에서 맺어진 선언이다. 지금과 같은 구도다. 공동선언의 정신을 이어받아 새로운 20년을 바라보는 공동선언을 낼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오쿠조노 히데키 시즈오카현립대 국제관계학연구과 교수 ※사진=본인제공

오쿠조노 히데키 시즈오카현립대 국제관계학연구과 교수 ※사진=본인제공

 오쿠조노 히데키(奧薗 秀樹·53)

△현 시즈오카현립대 국제관계학연구과 교수, 현대한국조선연구센터 부센터장 겸임
△아사히신문, NHK 기자
△규슈대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한국 동서대학교 국제학부 부교수

도쿄=윤설영 특파원 snow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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