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퍼마켓서 통장 개설 … 일본 "된다" 미국 "안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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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기업이 은행업을 하면 되나, 안 되나-. 미국과 일본이 산업자본의 은행업 진출을 둘러싸고 정반대의 정책을 펴고 있다. 일본은 제한을 풀어 기업들의 은행업 진출을 허용하는 반면, 미국은 산업자본과 금융자본 사이의 벽을 확실히 지키려는 움직임이다.

◆예금 받는 일본 기업=일본 금융청은 4월부터 일반기업도 은행 업무를 할 수 있도록 허용키로 했다고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 신문이 12일 보도했다. 단, 법인을 상대로 한 은행 영업은 계속 금지할 방침이다.

이번 조치가 시행되면 앞으로 수퍼마켓이나 편의점 등에서도 손쉽게 예금계좌를 개설할 수 있게 된다. 또 아파트 모델하우스 등에서 매매 계약과 동시에 분양업체나 건설사와 직접 주택담보 대출 계약도 할 수 있게 된다. 은행이 끼어들 여지가 줄어드는 셈이다.

금융청은 여행사.협동조합.호텔.자동차매매상 등 500여 개 회사가 은행 대리점 영업을 준비 중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들 기업은 대부분 개인 고객들과 직접 접촉하는 서비스 분야에 강점을 지니고 있어 진입 초기부터 소매금융에 상당한 경쟁력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된다.

◆"월마트 은행업 안 된다"=미국에선 세계 최대 소매체인인 월마트가 유타주에 소매금융업을 하는 산업대출회사(ILC)를 설립해 은행업에 뛰어들려고 하자 반대의 목소리가 강해지고 있다.

미 의회 의원 30여 명은 최근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사장에게 서한을 보내 "'월마트 은행'은 대출시장을 장악해 소규모 은행을 해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의원들은 편지에서 "매장이 수천 개에 달하는 월마트가 은행 간 경쟁에서 불균형을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도 8일 지방 은행가 모임에 참석해 "법률적 허점으로 인해 산업자본이 은행과 유사한 금융업을 할 수 있게 돼 있다"며 "이런 허점은 산업자본과 은행을 분리해야 한다는 의회의 원칙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ILC에 대한 감독도 은행업 못지않게 철저히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실상 월마트의 은행업 진출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미국은 현재 기업(산업자본)의 은행 소유를 금하고 있지만 ILC는 은행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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